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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먼지 Jan 05. 2024

가끔씩, 망가져보는 것도 괜찮아

연말엔 보드게임과 페이스페인팅(?)


뭉치면 재밌다.


여럿이 하는 보드게임이 재미있는 걸 새삼 점점 더 느끼고있다.
누군가는 혼자 하는 게임이 더 좋을 수도 있고
둘이서 하는 일대일 게임도 좋겠지만
나는 원래 두뇌를 많이 써야하는 전략??게임을 좋아하지 않는다.
아마 스타크래프트나 롤같은 게임을 한다면 5분컷이려나..
(남편이 롤쟁이인데 나에게 롤을 절대 알려주지 않는 이유일지도)

일단 집중력이 별로 좋은 편이 아니고,
승부욕이 강하지 않다.
그런 나와는 반대로 남편과 동생은 아주아주 승부욕이 불타오르는 편.
(과거에 둘다 같은 길드로 서든어택이었나 배틀그라운드를 신나게 하면서 제부를 놀렸던 적이 있다)

그 중 남편과 내동생이 꽂힌 건 루미큐브와 할리갈리인데,
나와 제부는 승부욕이 없으니 옆에서 졸릴 때까지 들러리를 하다가 3위 4위를 사이좋게 번갈아가며 하다가 새벽 1시면 잠에 드는데
동생과 남편은 새벽 4시까지 게임을 이어나가는 무서운 종족이다.

졸리고 술에 취해 혀가 꼬부라지고 6과 9를 헷갈릴만큼 정신이 안멀쩡해져도 끝이 나지 않을 게임을.

(루미큐브는 숫자와 색으로 두뇌싸움을 하는 게임이다)

"아 좀 자라고!!!고만 좀 해 4시야..."
"엥???"
둘다 냅두면 아침까지 했을지도 모른다.

새벽 4시가 넘어서 자다 일어나 화장실에 가려던 나는 이제 질린 목소리로 외쳤다.
"야이 또라이들아 안자냐!!!"

도대체가 이해가 안가는 이들의 승부욕. 이걸 지켜보는.나는 지겹고 머리가 아파온다.
그래서 나는 여럿이서 하는 머리 안쓰는 게임.
운에 맡기는 게임을 좋아한다.
그걸 알고 동생이 새 보드게임을 가지고 왔다.

다들 목숨을 걸고 게임을 시작한다

"언니 이게 그 유명한  펭귄트랩 얼음깨기!!!라는겨."

얼음벽돌같은 흰색블록과 파란색블록을 판에 끼워맞춘 후에 룰렛판을 돌려 판에 나온 개수만큼 같이 들어있는 망치로 얼음을 깨는 미션이다.

얼음이 와르르 무너지고 펭귄이 후두두둑 떨어지면!
당첨.

나는 계속 흰 블럭 2개+파란 블럭 1개가 많이 나오고
나머지 사람들은 다 1개씩만 나와서 대환장파티.
결국은
2명씩 3팀으로 부부대항전.
첫판에 펭귄 보내버린 내 친구야. 사랑한다.
 팀전에 꼴찌한 내 친구 부부는 편의점 아이스크림을 샀다. (베스킨라빈스 없어서 슬퍼하던)

"야 이거 묘하게 집중하게 되잖아!!"

그렇게 새벽 2시까지 6명은 잠못들고 게임을 했다.

-펭귄트랩 얼음깨기
-루미큐브
-마피아게임

-바니바니 당근게임

-베스킨라빈스 31

-눈치게임
-노래맞추기
-사진보고 이름맞추기까지.

 남편이 친구들과 펜션여행에서 음악틀고 맞추던 게임이 재미있었는지 연말모임에서도 신이 나게 진행을 하는 게 정말 많이 웃겼다.

연말휴일을 6인이서 보내고 친구부부는 각자 출근과 장사때문에 새벽에 떠나고 우리는 하루 더 묵으며 끝나지 않은 펭귄트랩 얼음깨기를 미친듯이 해나갔다.
동생의 망치질에 펭귄이 뒤집어졌다. 그래서 해당 판은 오래 걸려서 블록이 떨어졌고,

그 다음판부터 우리는 갑자기 뭐에 홀린 것마냥 화장품파우치와 컴싸를 들고 꼴찌에게 한 획씩을 선사하기 시작하여...

"언니 얼굴 망했는데?"

"아 진짜. 안경 누가 했냐."

"이야 역시 얼굴 도화지가 아주 맛집이네 그릴 맛이 난다!!"

제일 얄미운 건 남편인데,

컴퓨터용 싸인펜으로 자아실현을 한 얼굴을 하고 또 마지막판에 걸려서 나가서 편의점 족발을 사왔다.


동생부부가 자기들 집에 마련해준 덕구의 추모공간.덕구룸을 옆에 두고, 2023년 연말을 보냄과 동시에 2024년을 맞이하는 카운트다운 영상에 함께 촛불을 켰다.


"이제 카운트다운 한다!!여기 덕구도 촛불 켜주자."
연말연시 카운트다운이 들어갈 무렵, 사랑하는 막내 덕구의 추모공간, 덕구룸에도 촛불이 켜졌다.
나에게 가장 큰 인생의 보물이었던 너, 덕구야 사랑해
참았던 눈물이 또 마구 쏟아져나왔고,
이 새해를 함께 보낼 수 없다는 사실이 사무치게 마음아팠지만,

"보고싶다, 우리 덕구..."
"언니 언니, 덕구 바뻐~여기서 우리랑 놀아줄 시간 없어. 아마 잠깐 빼꼼 방마다 들러서 생존확인하구 다시 놀러나갈걸?"
그 말에 모두 웃으며 잠에 들었다.

결코 잊지못할 나의 막내아들, 덕구의 사진들
행복하다못해 자지러진 우리의 연말모임
얼음깨기는 펭귄이 변수다
3시간 내내 움직이지 않는 녀석들의 루미큐브.나는 이미 잠들어있다.

2024년 새해도 덕구가 살다 간 견생에
더이상 미안하지 않게

우리는 더 열심히, 치열하게 행복하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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