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먼지 Dec 30. 2023

결혼을 앞둔 사람들에게

기버를 만나거나, 기버가 되거나.

"쟤 또 다치면 어쩌려고 저래?"
남편 가게에 무겁고 부피 큰 물건을 같이 들어주시려고 시아버지가 일산에서 지하철을 타시고 우리가게가 있는 경기광주까지 와주셨다.
이 겨울에 자꾸 건방지게 연락하는 것도 송구한데 뭘 드리면 돈이나 더 모으라며 손사래치시는 시아버지께
오늘은 짜장면 맛집이 있으니 꼭 중식먹으러 가자며 꼬신 건 성공했다.
(지난 번 쌀국수는 아버님 스타일이 아니라서 패스)

"아버님 드실만 하세여?"
"응. 여기 미미향보다 탕수육이 맛있네?"
이건 최고급 칭찬이다.

아버님과 어머님은 고향이 포천이신데, 학교 졸업때마다 꼭 미미향이라는 중국음식점에서 자장면을 드셨다고 했다.

어머님 생신에 시누언니식구와 같이 모두 1박2일로 놀러가서 미미향 음식을 먹었을 때 정말 맛있었는데.

지금 그 탕수육보다 미미향보다 짜장박사가 맛있다고 하셨다.
오, 우리동네 으쓱으쓱.

간짜장2 곱배기로
짜장1
미니탕수육1 을 해치웠다.

다음에 어머님이 같이 오시면 탕수육 사이즈업을 꼭 해야지.

"장갑 좀 끼고 해."
밥을 먹고와서 일하는 남편이 다칠까 걱정하다가 말을 안듣는 남편을 시아버지도 타이르신다.
"너 그러다가 진짜 팔이라도 다치면 어떡할라 그러냐."
남편은 그냥 웃으며 외면하는데 아버님은 심각.
아들 몸 닳는 게 손녀들 재롱보다 더 중요하신 분이라는 건 결혼 전부터 알고 있었기에 나는 딱히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왜냐하면
(1)낚시 가서 이끼 밟으면 미끄러우니 제발 사놓은 워커를 좀 신으라고 해도 절대 안 가져갔다가 넘어짐
그렇게 넘어지고 나서 잘 갈아신음
(2)오래 서있으면 힘드니 의자를 꼭 차에서 가져가라고 하면 양손 무거워서 싫어서 안 가져간. 그리고 한참 후에 가져다 달라고 전화옴.
(3)간식 친구들이랑 먹으라고 싸주면 무겁다고 싫다고 안 가져가서는 가서 배고프다함
(4)손다칠것같으니 장갑을 끼던지 공구를 조심해서 다루라고 하면 그냥 안 듣다가 피봄

이걸 8년을 본 나는 저이를 다그쳐서 뭘 할 생각이 없다. 괜히 잔소리한다고 싸움이나 나지
"에휴 내비두세여. 저오빠 다치면 그냥 쉬어야지..."
"아니 쉬면 어떡해 돈을 벌어야지.."
"아니 다쳐서 일못하면 내가 먹여살리든지 해야죠~"
"아이 어떻게 그러냐!"
"아니 어차피 둘중 하나는 일해야죠~제가 먹여살릴게요!"

아버님의 파안대소를 보았다.

어떻게 집에서 남자가 노냐~~하는 눈치셨다.

"저 원래 비혼주의였거든요 아버님??근데  이 사람하고 결혼을 할지 말지 정할 때 기준이 있었어요."

아버님은 의외라는 듯 나를 쳐다보셨다.

"이 분이, 팔다리가 모두 없어져도 내가 이 남자를 무슨 일을 해서도 먹여살리겠다는 생각이 들면 하겠다. 그런데 그게 돼서. 그래서 결혼한거에요."
"오.."

남편은 아버님 옆에서 싱글벙글이다.

이그 저 웬수쓰.
결국 아버님을 보내고 당근나눔에 쓸 케이블 타이를 자르다가 본인 손에 피를 보고 말았다.

"...넌 진촤.....하아..손 뭐 끼랬지!"
대일밴드 찾아서 뜯고 있는 내게
"...소독 먼저 해줭.피나."
ㅋ......알겠다.

남편이 귀여우면 아직은 둘이 살만하다고 한다.

그래서 아직 살고있다.
결혼식 때보다 18kg는 늘었어도
극T분석이 밀려오면 오함마로 뇌를 깨부수고 싶어져도
극효율충의 참모습에 혀를 내두르는 날이 많아도

오히려 처음과 지금이
겉과 속이
나를 끝까지 갈 동반자로 믿어주는 마음이

모두 한결같은 이 남자와
가진 건 쥐뿔없어도
결혼하길 잘한것같다.

돈??
없다.
명예??
없다.
행복??
개만땅!!!!

이 녀석들 때문인가. 매일 행복하다

같이 있어서 다행이라는 느낌.
이 편안함이 8년만에 극한상황에도 흔들리지 않을 시몬스침대같은 강한 스프링을 만들어 준 것 같다.

나는 누가 나를 무너뜨리려고 건드리지 않는 한은 잘해주는 편이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 남눈치 많이보고 좋은게 좋은거 라는 생각으로 살아와서.
내 기준에 이기보다 이타로 대응하는 모든 인간관계가 꼭 나만 손해보고 끝나는 구조는 아니다.
내가 먼저 내민 손끝에 진심만 있다면,
내가 누리는 세상의 공기가 달라진다.

눈치주는 사람없는 가운데서도 괜한 피해의식과 자격지심에 빠져 허우적거리면서 눈칫밥먹고 자라버린  극내성향쩌라이(쩌리+또라이)이던 내가
누군가에게 진심이 가득 담긴 명이나물, 직접 기른 채소, 농사지은 쌀, 직접 구운 쿠키, 생각 나서 샀다는 면세점 양주, 집얻을 보증금이 없던 시절 무이자로 빌려주는 돈 같은 걸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기 시작한 건,

내가 이기보다 이타로 누군가에게 다가갔을 때 그들이 진심을 똑같이 보여주었기 때문에,
기버라는 게 테이커나 매처일때보더 훨씬 맘이 편하고 기분도 좋을 뿐이다.

세상은

TAKER(테이커)
남에게 받으려고만 하는 이기적인 사람

MATCHER(매쳐)
남이 무엇인가를 줄 때에만 자신도 보답하는 사람

GIVER(기버)
남에게 주려고 하는 이타적인 사람

세 가지 분류의 사람으로 나눌 수 있다고 한다.
이 중 성공 가능성이 제일 낮은 건 기버.
그리고 성공 가능성이 제일 높은 것도 기버란다.

뭔 소리여...


문득 우리 가게에서 열심히 2년간 헌신해준 직원이 한참 밥먹을 때 해준 이야기가 생각났다.
"누나는 뒤져도 부자는 못돼."
"왜냐.!"
"아니 자기들도 없으면서 맨날 밥해주고 퍼주고 다 챙겨주는데 뭔 부자여?있는 새끼들은 안써 돈을~"
이 녀석이 퇴직하던 날, 나는 제주여행을 간다는데 밥한끼라도 잘 먹었으면 해서 2년치 퇴직금에 10만원을 봉투에 넣어 따로 주었다.

가게를 나간 지 3년이 지났어도 뜬금없이 길가다가 생각나서 샀다며 따끈한 토스트를 사올줄 아는 녀석.
그런 좋은 사람들은 테이커존보다는 기버존에 많지 않을까.

"적당히 좀 퍼줘. 나 먹을 것도 없어."
남편은 시부모님걸 먼저 챙기느라 과일중에도 크고 좋은거, 엄마가 보낸 홈쇼핑갈비탕도 몇개, 얼려놓은 고기도 몇개 쟁여 짐을 챙기는 내게 볼멘소리로 말한다.
"내가 다 먹을 수 있는데 엄마아빠가 우리보다 잘 사는데 왜 그렇게 다 챙겨가냐."
"우린 한두번 먹을것만 있으면 돼. 너랑 나랑, 아버님어머님이랑 누가 더 잘사는 거랑 별개로 부모님 살아계실때 좋은 거 챙겨드리는겨. 혼자 처먹으면 살밖에 안찐다....."
그뒤로 그는 내가 집에서 뭘 챙겨담든 잔소리를 하지 않는다.

기버랑 사는 게 힘들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매처성향인 그가 슬슬 기버인 나에게 물들고 있다는 건,
상위로 올라가든 하위에 머물든
그냥 우리가 기버가 되어 사는 세상이 그렇게 비극적이기만 하진 않다는 걸 많은 이웃들의 도움을 받으며 경험해 봐서일것이다.

결혼은 분명 기버가 존버한다.
그건 확신할 수 있다.

이 사람이랑 결혼해서 내가 얻을 것만 생각하는 게 아니라
뭐든 주고 싶고 줄 수 있는 마음을 가지고 가야
오래 간다.

나와 남편처럼 이혼위기를 겪고 서로가 서로를 할퀴는 시절이 불어닥쳐도
매처와 테이커보다
기버는 살아낼 힘을 만든다.

저 사람이 나에게 5부짜리 다이아반지를 사줄 수 있어서,
저 사람이 나에게는 없는 집을 가지고 있어서
그게 제일 매력이 되고 강점이 되어 하는 결혼은

그 물질적인 것이 사라지면 끝이 난다.

내가 오로지 그것만 보고 결혼했으니
유지할 의미가 없어지니까.

그런데 그걸 넘어서서
사랑하는 사람에게 한없이 기버가 될 의지를 가진 사람은 절대 결혼에 실패하지 않는다.
혹 이혼을 하게 되더라도 후회가 남지 않는다.

그저 다 내어주었기에 미련이 없으니까.

나는 결혼을 앞둔 커플들은 자신의 성향이 어떻든 기버랑 결혼하라고 말하고 싶다.
한쪽이 테이커여도 기버를 닮아가게 되는 편이
매처가 테이커랑 살며 테이커로 변하는 것보다 사회를 유지하는 데 큰 도움이 될테니까.

그 사람 집안이
그 사람 재력이
그 사람 직업이 중요하지 않다.

그는 기버인가,
나는 그에게 기버가 되어줄 수 있는가.

이게 결혼의 핵심 아닐까 싶다.

작가의 이전글 곁에 없어도 메리크리스마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