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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먼지 Jan 14. 2024

보육원 자립청년 지원, 할거면 똑바로 해

지리멸렬한 탁상행정 속 멀어지는 선진국이야기

늦은 새벽 치킨을 먹고 소화가 안돼서 누워있다가,
기존에 알지 못했던 "현실"을 위해 싸우는 삶을 다룬 기사 한편을 읽고나서 나는 오늘도 이 지구는 멸망의 길로 나락을 걷고 있는 건 아닐까, 라는 생각에 빠졌다.


나의 부모님, 그리고 그들이 수많은 빚에 허덕이고 부친의 폭력을 견디다못해 결국 타의로 떠난 제주.

나와 오빠를 데리고 제주에서 떠나와 육지에서의 삶을 살며 눈치주는 사람 없이 눈칫밥먹는 기이한 어린 시절을 보내게 했던 엄마에 대한 원망은

이 기사를 보면서 단1도 남아있지 않았다.


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 하나로도 그녀는 나에게 감사한 엄마였다는 것을 알았으니.

엄마가 조금만 더 영악한 여자였거나 생활이 더 여의치 않았거나, 폭력과 방탕의 남편을 견디지 못하고 다른 선택을 했다면 나 역시 보육원에서 자랐을 수도 있으니까.


실제로 엄마는 7남매 중 3명인 삼촌 둘과 막내이모는 외할머니가 모두 돌보지 못해 보육원에서 자라다가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엄마와 같이 살았다고 했다.


삼촌들과 이모들 모두 형제간 우애가 뜨끈하니 아직도 큰누나 큰언니인 엄마를 살뜰히 챙기는 모습에 나 역시 그들이 조카에게도 준 사랑을 그들이 너무 늙어버리기 전에 나누고자 작은 정성을 가끔 표현한다.


그래서인지 보육원 자립청년의 현실 기사가 완전히 남이야기같지가 않다.



입력2023.12.26. 오전 10:35  수정2023.12.26.

https://naver.me/5mBLOqlj
윤근영 기자,연합뉴스 발췌



-- 실종아동 가족들의 고통은 어느 정도인가.

▲ 대부분의 부모가 생업을 포기하고 아이를 찾기 위해 전국을 다닌다. 재래식 화장실, 맨홀 안을 뒤지기도 하고, 광주리장사를 가장해 집집이 방문해 혹시 자기 자식이 있는지 살피기도 한다. 상당수 가정의 가계는 파탄 나고, 80% 정도는 이혼한다. 실종된 아이한테 미안한 마음에 옷 한 벌 제대로 사 입지 못하고, 겨울에 난방도 하지 않는 부모가 있다. 부모는 자녀가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고 하지만, 실종 아이 부모는 그렇게 할 수도 없다. 웃지도 못하고, 울지도 못하는 삶을 견뎌야 한다. 정신적 고통이 너무 커서 알코올에 빠져 사는 사람도 있다. 나는 우리 아이가 혹시 잘못됐더라도 여기보다 좋은 세상에 갔을 것으로 생각한다. 이런 신앙적 관점은 내가 하루하루 삶을 버티는 데 큰 도움이 된다.

-- 본인은 외동딸 희영이가 10세 때 사라진 이후 아이를 찾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나.

▲ 전국을 미친 듯이 돌아다녔다. 윤락가도 뒤졌다. 보육시설, 장애인시설 등 각종 시설 3천 곳에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그런 아이가 없다는 답장은 2∼3곳에서만 왔다. 거의 모든 시설이 답장조차 안 한다.

-- 보육시설은 협조를 잘 안 해주는 편인가.

▲ 보육시설에 직접 방문해서 입소자 파일을 보자고 하면 안 보여준다. 그래도 다시 한번 요청하면 "왜 이렇게 귀찮게 구느냐. 없다고 하면 없는 줄 알면 되지 당신이 뭔데 여기 와서 이러느냐"고 화를 냈다. 파일을 열람해 봐도 아이 사진이 없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일부 보육원은 아이들이 모여 있는 곳에 우리를 데려가 보여주기도 했다. 그렇지만 학교에 간 아이, 학원에 간 아이, 밖에서 노는 아이 등이 많다 보니 그렇게 아이들을 보는 것은 의미가 없었다. 보육시설에 가서 아이를 찾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 보육시설은 왜 성의가 없나.

▲ 아이들이 돈벌이의 수단이기 때문이다. 보육원 아이 한 명에 연간 1억원 정도의 예산이 들어간다. 실종자 부모가 보육원에서 아이를 찾아내면 보육원 입장에서는 수입이 줄어드는 것이다. 그러니 아이를 내줄리 없다.

고아들의 삶
다음은 고아권익연대 조윤환 대표의 인터뷰 내용이다.

-- 본인이 고아 출신인데, 고아들의 삶은 어느 정도 힘든가.

▲ 보육원에 아기들이 오는 경우가 적지 않다, 내가 목격한 바로는 아기들이 이곳에 도착하면 처음에는 큰 소리로 울다 금방 그친다. 울어도 보육사들이 반응하지 않는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깨닫기 때문이다. 조금 성장한 아이들도 처음에 보육원에 오면 눈물을 보이지만 곧바로 중단하게 된다. 울면 두들겨 맞기 때문이다.

-- 보육원 출신들이 극단적 선택을 많이 하는가.

▲ 고아 출신의 극단적 선택의 비율이 일반인보다 훨씬 높다. 작년 8월에 광주의 한 대학교 기숙사에서 18세의 고아 학생이 극단적 선택을 했다. 입학 이후 그는 고아라는 사실을 숨기고 학교 친구들을 만났다. 친구들은 부모로부터 한 달에 50만∼100만원의 용돈을 받았는데, 이 학생이 보육원으로부터 받은 용돈은 월 15만원 정도였다. 그는 친구들과 어울리다 보니 좀 더 많은 돈이 필요했고, 끝내는 자신의 후원 계좌에서 원장 몰래 돈을 빼내 사용했다. 이를 알게 된 원장은 그를 심하게 꾸짖었다. 앞으로 등록금을 포함해 돈 한 푼도 지원해줄 수 없다고 했다.

-- 그 학생은 그 말을 듣고 극단적 선택을 했나.

▲ 그는 더 이상 보육원의 지원을 받을 수 없다고 판단해 심한 좌절감에 빠졌다. 그는 후원 계좌에 남아있는 돈 90만원을 모두 빼내 사용했다. 그 돈은 그 학생 명의의 후원금이었으니 훔쳤다고 볼 수 없다. 자기 돈을 쓴 것이었다. 그 학생은 마지막 소비를 하고는 옥상에 올라가 극단적 선택을 하고 말았다. 그가 남긴 쪽지에는 "읽을 책이 아직 많이 남았다"는 내용의 글이 적혀 있었다. 그때 기숙사 친구들은 여름방학이어서 모두 자기 집으로 돌아간 상태였다. 방학에도 그는 갈 곳이 없었다.

-

갈 곳이 없다.
라는 말이 마음에 남는다.

저 학생은 정말 나쁜 심보를 가졌다고 볼 수 있고, 원장의 후원계좌에까지 손을 대다니 정말 대범한 예비범죄자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 저 아이에게 쓸데없지 않은 감정이입을 내가 가진 오지랖으로 해보면
-저 아이의 부모가 있었다면.?
-그 부모가 아이를 포기하지 않았더라면.?
-따뜻한 마음을 지닌 부모가 든든한 지원과 관심,사랑으로  아이의 울타리가 되어주었다면 어땠을까.?
-풍족한 먹을 것과, 친구들과 나누어먹을 음식을 정성스럽게 만들어주는 엄마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아마 조금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한다.

보육원의 아이들은 마음 의지할 곳 뿐 아닌 자기 몸 의지할 곳조차 쉽지 않은 상황이 많다.
특히 미성년기를 지나고 자립을 준비해야 할 나이가 되어갈 때 가장 극적인 공포와 불안을 느낀다고.

mbn뉴스에 따르면 우리나라  보육원을 떠난 자립준비 청년 5명중 1명꼴로 지자체와 연락이 두절된다고 한다.

우울증이 심해져 병원에 찾아오는 이의 특징은 모두 하나같이 "의지할 곳이 없다"이다.

https://m.mbn.co.kr/news/society/4961556


지원인력조차 너무 미비하다.

보호시설에서 생활하는 아동은 원칙적으로 만 18세가 되면 보호조치가 종료되지만 만 25세까지 보호연장을 할 수 있습니다.

정부는 보호가 종료된 자립준비 청년을 5년간 지원합니다.

자립정착금, 자립수당(월 40만 원), 주거 지원, 의료비 지원, 기초생활보장제도 공제, 취업 지원, 정신건강 지원 등이 대표적인 지원책입니다.

시도 자립지원 전담기관은 1년에 1회 이상 자립준비 청년에게 연락해 진학, 소득, 주거, 기초생활수급여부, 자립정착금 수령 여부 등을 점검하는데, 연락이 두절된 사례가 2021년을 기준으로 20.2%에 달했습니다.


-


자립지원전담인력 1인당 담당인웡 현황

독거노인 돌보는 것만큼 자주는 아니더라도,
거 1년에 한번 이상..이라 보니 의무적으로 정착에 대한 지원여부를 연락한다는 것 자체가 보여주기식 행정의 끝판왕이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든다.

https://n.news.naver.com/article/001/0014428643?sid=102


-인구수 늘려서 세금 넉넉하게 받으려고 애쓰지말고,
-총선 투표율 높이고 표밭가서 어울리지도 않는 서민코스프레 한다고 나대지들 말고,
제발 ,
있는 아이나 좀 잘 지켰으면 좋겠다.

과시용 소비는 하지만 착실한 세금납부는 밥먹듯 거부하며 부의 세습만을 향해 사는 사람들에게 당신들의 그 잘난 힘과 돈을 조금은 선한 사회를 위해 쓰는 것은 어떨지 묻고 싶어진다.
어떤 사회든 다양함이 공존하지 않는 사회에서 약자들이 모두 사라지고 똑같은 부자들끼리 강자만이 남은 사회에서는 과연 누가 내 부로 자식을 키워나갈 것인지를.

먹이고 입히는 것 외에 수많은 경험들을 과연 사라진 이들의 손과 발 없이, 그들의 수고없이 손수 땀흘려 기꺼이 서민의 자리로 내려와 살 것인지를.

금수저와 흙수저는 있을지언정
영원히 죽지않는 생명은 없다.
온갖 기술발전과 막대한 부를 가지고 죽음을 조금 미룰 순 있어도 죽지 않을 방법은 없다.

내 새끼만 배부르면 되지
우리 재산은 우리 가족만을 위해 쓰여져야만 해.
없는 것들한테 보여줘야지 우리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를.
집이 자가냐 전세냐 물어보고 어디 사는지로 친구를 나누는 어린 초딩들까지.
저마다 못된 것들만을 부모한테 보고 배우며 앞날이 창창한 자신들은 신의 선물인 듯 살아가는 존재들이 있다. 남을 발 아래 두는 것이 당연해서 자신이 숨쉬는 공기는 일반 국민이 쉬는 공기와는 다른줄 착각하고 사는 어림도 없는 그저 똑같은 n번째 지구먼지가.

부자들이 철이 드는 대한민국은 금방은 오지 않는걸까.

나라에 망조가 2024년에 들어 국운이 쇠퇴할 거라는 지적이 조금은. 불안하게 들리는 밤이다.

모두들의 밤이
그간 평안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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