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슬픔의 시작
2020년 4월 22일 수요일. 회사 인사가 났다.
다음 주부터 나는 정치부 국회 팀장이 아닌 외교안보부 외교안보팀장으로 불리게 된다.
2020년 4월 24일 금요일. 여느 때와 다름없이 평온한 하루였다. 10년간 정치부 기자로서 일했던 국회에서 마지막 근무만이 남은 날이었다.
"저 이제 국회를 떠나 다음 주부터는 외교부로 출근하게 됐습니다. 그동안 많이 챙겨주셔서 감사했고, 자주는 아니더라도 가끔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동안 친하게 지냈던 의원들과 보좌진들에게 작별인사를 건냈다. 후임 국회팀장이 된 동기에게도 인수인계를 마치고 국회를 떠날 준비를 마무리했다.
열정 가득했던 30대를 이곳에 쏟아서였을까? 그렇게 떠나고 싶었던 국회였는데 막상 떠난다고 생각하니 진한 아쉬움이 밀려왔다.
"잘있어라 국회야. 힘들었지만 보람 있는 10년이었다." 국회출입기자들이 상주하는 건물인 소통관 옥상에서 보이는 국회의 전경을 보며 나도 모르게 이 말이 새어 나왔다.
"선배, 오늘이 국회로 출근하는 마지막 날인데 진하게 한 잔 하고 가셔야죠."
특별히 잘해 준 것도 없는 선배였는데 떠난다니 섭섭하다며 후배들이 퇴근 후 송별회를 열어준다고 한다. 국회 앞 식당에서 저녁을 먹으며 헤어짐의 아쉬움을 달래기로 했다.
모든 업무를 마치고 후배들과 식당으로 향하는 길에 아내로부터 전화가 왔다. 이미 후배들과 저녁을 먹고 간다고 이야기를 했기 때문에 즐겁게 놀다가 들어오라는 전화로 생각했다.
하지만 내 예상은 보기좋게 빗나갔다. 수화기 너머 들려오는 아내의 목소리는 다급했고, 울먹이고 있었다. 순간 뭔가 잘못돼도 크게 잘못됐구나 하는 생각이 머리를 때렸다.
"오빠... 엄마가... 엄마가 쓰러졌어."
"뭐라고? 어머님이 쓰러지셨다고? 그게 무슨 소리야?" 나는 순간 그 자리에서 얼어붙을 수밖에 없었다.
이날 아내와 장모님은 업무차 경기도 시흥에 갔고, 업무를 마친 뒤 근처에서 저녁을 먹기로 했다고 한다. 저녁을 먹기 전 장모님은 화장실에 가셨는데 거기서 쓰러지셨고, 의식이 없어 구급차를 불렀다는 아내의 전화였다.
수화기 너머 아내의 떨림이 온몸으로 느껴졌다.
"일단 침착하고, 오빠가 바로 거기로 갈게. 어디로 가면 될까?"
아내는 어머님이 쓰러지신 곳으로 구급차가 왔고, 근처에 있는 병원으로 간다고 했다. 나는 그 자리에서 후배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바로 택시를 탔다.
택시로 아내가 이야기 한 병원으로 가는 도중 다시 아내로부터 전화가 왔다.
"오빠, 뇌출혈 같다고 하는데 이 병원에서는 수술을 못 한다고 해서 수술이 가능한 병원으로 다시 가야 할 것 같아. 오빠도 그 병원으로 와야 할 것 같아."
"뇌출혈이라니..."
내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상황이 심각한 것 같았다. 택시기사님께 양해를 구하고 아내가 말한 병원으로 방향을 틀었다. 금요일에 퇴근 시간까지 겹쳐 도로에 차들이 엄청나게 많았지만, 감사하게도 택시기사님이 빠른 길만 찾아서 병원까지 이동해 주셨다.
병원 응급실에 도착하니 침대에 누워계시는 장모님의 모습이 보였다. 응급실 의사들의 다급한 움직임도 눈에 들어왔다.
"아... 뭐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구나!"
"지주막하출혈 같은데 상황이 좋지 않다. 신경외과 선생님이 곧 오실 거다. 하지만 수술을 해도 깨어나지 못하실 가능성이 크다."
청천벽력 같은 말이었지만 당직 의사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는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수술을 담당할 신경외과 선생님이 오셨다. 빨리 수술을 해야 한다고 한다. 그래도 시간이 많이 지체되지 않았기 때문에 의식을 회복할 가능성이 50% 정도는 있다고 했다.
아내는 선생님을 붙잡고 "저희 아버지도 뇌출혈로 수술을 하셔서 아직 병원에 계신다. 엄마마저 이렇게 쓰러지면 안 된다. 제발 수술 잘해 주셔서 엄마가 의식을 회복할 수 있도록 해주세요"라고 간절하게 부탁했다.
아내의 말대로 당시 장인어른은 논산의 한 병원에 입원 중이셨다.
장인어른은 몇 년 전 뇌출혈로 쓰러지셨고, 수술하셨지만 의식을 회복하지 못한 채 투병 생활을 이어오고 계셨다. 그렇기에 장모님이 쓰러지셨을 때 아내가 받았을 충격은 가히 엄청났을 것이다.
아내는 수술을 앞둔 주치의 선생님을 붙잡고 의식만 돌아올 수 있게 연신 부탁을 했다.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주치의 선생님은 이 말을 남기고 수술실로 들어갔다.
수술이 시작됐다. 쉽지 않은 수술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수술시간이 5시간이 넘어가면서 '혹시라도 잘못되시는 게 아닐까'하는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제발... 수술이 잘 끝나서 우리 장모님 의식을 회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수술이 끝나고 수술방 문이 열렸다.
"수술은 잘 끝났고, 환자분은 바로 응급실로 올라가셨습니다. 2~3일이 고비인데 경과를 잘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수술이 잘 끝났다는 말에 아내와 나는 물론 병원으로 한달음에 달려오신 친척분들도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장모님 의식도 곧 돌아오실 수 있겠구나 하는 희망도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