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의 심술

02 무력감과 답답함...속절없는 기다림

by 쫑무다리

잘 알다시피 2020년은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강타했던 한 해였다. 우리나라에서도 코로나19 확진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상황이었다.


모든 병원이 코로나19 방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었고, 자유롭게 환자를 면회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는 장모님께서 수술한 병원도 마찬가지였다.


수술 다음 날. 10분 남짓이긴 했지만, 병원 측의 배려로 아내와 나는 장모님을 뵐 수 있었다.


"내가 오늘 점심에 친구들이랑 아주 맛있는 장어구이를 먹었는데, 나중에 같이 오자."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건강하셨던 분이 몸에 온갖 장치를 부착하고 중환자실에 누워계신 사실이 너무도 믿어지지 않았다.


이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장모님 빨리 일어나세요."라는 말밖에 할 수 없다는 것에 대한 깊은 좌절감이 느껴졌다.


잠깐 장모님을 뵙고 다시 주치의 선생님을 만나야 했다. 급한 수술은 마쳤지만, 추가적인 시술을 진행해야 하는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주치의 선생님은 전날 수술에서 출혈 부분은 잡았지만, 혈관이 부풀어 오른 상태에서 잘못하면 뇌혈관이 터질 수 있으므로 이를 방지하기 위해 뇌동맥류를 정상 혈류로부터 차단하는 코일 색전술을 실시해야 한다고 했다.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그 자리에서 바로 하겠다고 했다. 다음 날 시행된 코일 색전술도 무사히 마무리됐다. 이제는 장모님이 다시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오는 일만 남았다.


"예전에 장모님이랑 비슷한 연배, 비슷한 상황으로 수술했던 환자가 있었는데 잘 회복한 사례가 있습니다."


"일단 기다리면서 상태를 지켜보도록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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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의 시간이 흐르기 시작했다.


일주일이 지나 보름이 다 되어가고 있었는데 장모님은 여전히 중환자실에 계셨다.


수술은 잘됐고 경과가 좋을 수 있으니 조금만 기다려보자던 주치의 선생님의 자신감도 시간이 갈수록 조금씩 줄어드는 듯 보였다.


"조금만 더 기다려보자." "아직 가능성은 있다."고 했지만, 주치의 선생님의 입에서 긍정의 단어보다는 부정의 단어가 많아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또 다른 문제는 코로나19였다. 병원 면회가 전면 금지된 상황에서 장모님의 상태가 어떤지 매일매일 바로 옆에서 확인하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었다.


그렇게 기약 없는 기다림의 시간만 흘러갔다. 장모님도 중환자실에서 일반병실로 옮겼을 뿐 우리가 기대했던 극적인 상황은 일어나질 않았다.


"장모님 빨리 일어나세요."


"이제 그만 집에 가셔야죠."


"아직 장모님이랑 하고 싶은 게 많은데... 빨리 털고 일어나셔서 예전처럼 같이 여행도 다니고, 소주도 하고 그러셔야죠."


면회 때마다 장모님이 좋아하셨던 노래도 들려드리고, 예전에 같이 여행 갔던 곳에서 찍은 사진도 보여드렸다.


말씀은 못 하셨지만, 이따금 눈물도 흘리시고, 나와 아내를 바라보는 눈빛을 보고 있으면 나와 아내를 알아보시는 것 같았다. 말을 하고 싶어도 못하고, 움직이고 싶어도 움직일 수 없었던 장모님도 그 상황이 얼마나 답답하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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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아내의 기대와는 달리 장모님의 병원 생활은 길어져만 갔다. 그리고 그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도 제한적이었다.


간호사실에서 장모님의 병원 생활에 필요한 물품이 있다는 연락을 받으면 그것을 준비해 병원에 전달해 주는 일과 주치의 선생님과의 면담을 위해 전화를 기다리는 일뿐이었다.


매일 곁에서 장모님 상태를 보고 싶었던 아내는 그렇게 할 수 없다는 좌절감에 눈물로 하루하루를 보내야만 했다.


코로나19라는 엄청나게 강한 녀석이 만든 심술을 이겨낼 수 없다는 무력감과 답답함은 나와 아내를 너무 힘들게 했다.


그렇게 속절없이 기다림의 시간만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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