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복귀...그리고 한 달

03 아내가 걱정되다

by 쫑무다리

장모님이 수술을 받은 당일 나는 회사에 상황을 설명하고 양해를 구한 뒤 일주일 휴가를 냈다.


하지만 장모님이 회복하시기에 일주일이라는 시간은 부족했다. 일단 회사로 복귀해야 했다.


그렇게도 내가 원했던 외교안보부로 자리를 옮겼는데. 휴가에서 복귀한 이후 외교부가 있는 광화문으로 출근해 업무를 보기 시작했지만 도통 일이 손에 잡히질 않았다.


장모님도 장모님이지만 아내가 너무나 걱정됐다. 아버지에 이어 어머니까지 같은 증상으로 병원에 누워계신 모습을 봐야만 하는 딸의 심정은 얼마나 절망적이었을까. 세상의 어떤 말과 글도 아내의 심정을 대변한다는 게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출근할 때면 현관문까지 배웅을 나오면서 환한 미소와 함께 파이팅을 외쳐주던 아내의 모습은 사라졌다. 대신 침대에 누워 힘없는 목소리로 잘 다녀오라는 인사를 건네는 아내의 모습을 떠올리면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20210628_090923997.jpg 아내의 심정이 한 치 앞을 보기 어려웠던 짙은 안개와 같지 않았을까? 2021년 6월 비오는 어느 날 축령산.

이러한 걱정 속에서도 일은 해야 했다.


내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외교안보 팀장으로서의 업무를 파악하는 것이었다. 정치부에 있을 때는 가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국회에서 벌어지는 일들만 신경 쓰면 됐지만, 외교안보부는 외교부는 물론 통일부와 국방부까지 챙겨야 했다.


외교안보부의 경우 정치부에 비해 업무 강도는 약했지만 챙겨야 할 부처가 3개다 보니 업무량은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외교, 통일, 국방 어느 한 부처도 허투루 할 수가 없었다.


외교안보팀장으로서 오전 7시 30분 출근하면 가장 먼저 그날의 조간신문과 방송 등을 보면서 전날 우리 팀이 놓친 기사는 있는지를 확인했다.


이후 팀원들과 각 부처별 이슈는 무엇인지, 그 이슈에 대한 정부의 입장은 어떠하고, 그에 대응해 우리는 어떤 방향으로 기사를 풀어갈 것인지를 논의했다.


팀원들과의 논의가 끝나면 취합된 의견을 토대로 부장과 마지막 논의를 거치면 그날의 기사 방향이 정해졌다. 여기에 미처 대비하지 못했던 각 부처별 이슈가 실시간으로 터질 경우 담당자를 정해 그때그때 처리하면 됐다.


다만 외교부의 경우는 통일부나 국방부와는 달리 국가별 시차가 있었기 때문에 퇴근 후에도 처리해야 할 업무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때 당시 나에게 있어 외교안보부는 우선순위가 아니었다. 나의 최우선순위는 아내였다.


틈만 나면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일어났는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기분은 어떤지, 밥은 먹었는지 실시간으로 아내의 안부를 확인했다.


비록 몸은 회사에 있었지만, 마음은 아내에게 있었다. 회사에 있는 나는 내가 아니었다. 나의 몸과 마음은 완전히 따로 놀고 있었다. 당연히 팀장의 역할은 소홀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내 상황을 이해해주는 훌륭한 후배들이 곁에 있었기 때문에 별다른 문제 없이 팀을 이끌 수 있었다. 오히려 응원해 주는 후배들이 곁에 있어 힘을 얻을 수 있었다. 지금도 그때 함께했던 후배들에게는 미안함과 함께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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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부터 사표를 쓸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내가 사표를 고민하게 된 가장 첫 번째 이유는 아내였다.


당시 나의 가장 큰 걱정은 '혹시 아내가 해서는 안 될 나쁜 생각을 하면 어쩌나.'였다. 아내는 무기력했고, 의욕이 없었으며, 생기를 잃어가고 있었다.


나는 사랑하는 내 아내를 지켜야만 했다.


두 번째 이유는 장인어른과 장모님께서 건강을 잃어가면서까지 일궈온 사업체가 잘못되는 것을 두고 볼 수가 없었다. 아내 혼자 짊어지기에는 그 짐의 무게가 너무나 무거워 보였다.


장인어른은 자수성가의 표본이셨다. 충남 서산에서 혈혈단신으로 상경하신 뒤 밑바닥에서부터 시작해 작지만 단단한 사업체를 일구셨다.


장인어른이 쓰러지신 뒤에는 장모님과 아내가 장인께서 일군 사업체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했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장모님마저 쓰러진 상황에서 당연히 내가 힘을 보태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건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회사복귀 후 한 달. 장모님의 상태는 진전이 없었고, 무기력한 아내의 모습은 여전했다.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사표를 내자. 아내를 지키자."


그렇게 나는 결단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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