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회사에 대한 감사함 그리고 미안함
2020년 5월 21일 오전 기사보고를 마치고 외교부에서 회사로 들어갔다. 오늘 사표를 제출하기로 마음을 먹었기 때문이다.
사표를 제출하기로 마음을 먹어서였을까? 오늘 만큼은 회사로 향하는 기분이 여느 때와 다르게 느껴졌다. 입구부터 어색한 기분이 들기까지 했다. 하지만 이미 마음을 굳혔기 때문에 심호흡을 크게 한 번 한 뒤 안으로 들어갔다.
저 멀리 부장이 보인다. 그리고 부장과 눈이 마주쳤다. 부장은 '얘가 지금 이 시간에 회사에 왜 들어오지?' 하는 눈초리였다.
"그래 이 시간에 무슨 일로 왔어"
"사표를 내러 왔습니다"
사표를 제출하러 왔다는 나의 말에 부장은 크게 당황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오히려 내가 회사를 그만둘 것이라는 것을 이미 예상한 것 같았다.
"안 그래도 나는 네가 조만간 사표를 낼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어"
"죄송합니다. 지금 상황에서는 제가 회사를 그만두는 게 가장 최선인 것 같습니다"
부장은 "그동안 수고했다"란 말 이외에 별다른 말이 없었다. 그리고 사표와 관련한 서류에 사인을 한 뒤 편집국장과 대표에게 인사를 드리고 서류에 사인을 받으면 된다고 했다.
부장을 떠나 이제 편집국장을 만날 시간이다. 편집국장은 자신이 정치부장이던 시절 나를 영입했다. 정치부장과 국회팀장으로 2년 넘게 호흡을 맞추면서 미운 정 고운 정이 다 든 분이셨다.
편집국장실 문을 두드렸다.
"어! 최 팀장 무슨 일이야"
"사표를 내기로 해서 인사를 드리고 서류에 사인을 받으러 왔습니다"
"사표는 무슨 사표. 잠깐 기다려봐. 최 팀장 상황은 들어서 알고 있어. 지금 나랑 대표실로 가자고"
편집국장은 사표를 내러 온 나를 이끌고 대표실로 들어갔다. 자리에 있던 대표가 환하게 웃으면서 편집국장과 나를 반겼다.
"최 팀장이 사표를 낸다고 들어왔습니다" 편집국장이 대표에게 말을 건넸다.
"에~~ 이 지금 무슨 소리야. 최 팀장이 우리 회사에 와서 그동안 고생만 했는데... 이렇게 하면 내가 미안해서 안돼. 사표 얘기는 없는 걸로 해"
대표는 편집국장과 나를 번갈아 보면서 이렇게 말했다.
"아닙니다. 대표님. 지금은 제가 회사를 그만둘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서요..."
"아니 그러니까... 최 팀장 내 말을 들어봐. 휴직이라는 좋은 제도가 있는데 무슨 사표야. 일단 한 달 휴직을 내는 걸로 해. 나도 지금 최 팀장 상황이 어떤 지 들어서 잘 알고 있어. 일단 한 달 휴직계를 내고 장모님 상황이 좋아지시면 그때 돌아오면 되잖아"
대표는 휴직을 할 것을 권유했다.
"그렇게 되면 외교안보팀장 자리도 한 달이 비게 되는데 너무 죄송해서요..."
"괜찮아. 일단 한 달 휴직처리 해 줄 테니 그렇게 알고 있어. 그리고 한 달 뒤에도 상황이 똑같으면 그때 다시 이야기를 해 보자고"
대표는 그렇게 나의 사표를 받지 않았다.
그리고... 한 달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드라마틱한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다시 한번 회사에 사표를 제출했다. 이번에는 당연히 사표가 수리될 줄 알았는데 반전이 일어났다.
오히려 대표는 2020년 12월 말까지 기다려주겠다면서 휴직 기간을 더 늘려주시는 게 아닌가?
2016년 이직해서 재직한 지 기껏 해봐야 4년이 갓 넘은 직원이 두 번이나 사표를 냈음에도 수리하지 않고 기다려주겠다는 것에 너무나 감사했다. 솔직하게 회사가 나를 이렇게까지 생각해 준다는 것에 대해 너무 감동했다.
하지만 2020년 11월 30일. 회사가 기다려 주겠다는 날짜에 한 달 앞서 사표를 냈고, 이번에는 수리가 됐다.
2020년 11월 30일. 마지막으로 인사를 드리러 간 자리에서 대표와 편집국장은 "기다릴 테니 언제든 돌아와. 최 팀장이 돌아온다면 우리는 언제나 환영이야"라고 말씀해 주셨다.
그렇게 시간이 지났고 2025년이 됐지만, 나는 회사로 돌아가지 않았다. 또한 돌아가지 않은 것에 대한 후회도 없다.
이 글을 빌어 끝까지 나의 상황을 이해해 주셨고, 기다려주셨고, 돌아오라고까지 말씀해 주셨던 두 분께 너무나도 감사드린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또한 2020년 4월부터 11월 30일까지 팀장의 부재 속에서 취재 현장에서 고군분투했던 당시의 외교안보팀원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