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5시 25분 어두워지기 시작한다.
너무 빨리 저녁이 찾아온다.
밤이 쉬이 오도록 버려두면 안 될 거 같아
벌떡 일어나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른다.
"잠깐 올라갔다 올게요"
건물 안에서 바깥공기를 느낄 수 있는 곳.
서늘하다. 병원 10층 옥상이다.
담에 붙어 혼자 있는 나무를 보고
사진을 찍는다.
중간중간 부서진 낡은 의자 위에 올라서본다.
옥상에서 저 아래 세상을 한번 보기 위해서다.
올라섬에도 여의치가 않다.
뒤돌아서 오른쪽 끝 좁은 나선형 계단을 쳐다본다.
그 끝에는
쇠문이 하나 있고 자물쇠로 굳게 닫혀 있다.
저문을 열면 천국으로 향하는 걸까?
거대한 낭떠러지일까?
대체 뭐가 있는데?
경사지고 좁은 계단 끝까지 올라가 본다.
일단 자리를 잡고 앉았다.
앉아도 흔들리는 불안은 남아있다.
주위를 둘러본다.
빌딩들과 그 뒤로 배경이 된 검은 산
다시 오른쪽으로 돌아보면 도시의 네온사인과
넓은 도로 속 수많은 차들의 불빛
더 오른쪽으로 돌리면
산속에 콕콕 박혀있는 아파트들의
불빛이 듬성듬성 밝혀지고 있다.
오늘도 늦은 시간까지 직장에 머물러야 한다.
장소를 옮겨보면 몸을 움직이면
이곳 바깥공기를 흡입할 수 있는 곳에 오면
글이 나올까 싶어 잠시 올라왔다.
창밖을 바라보다 어둠이 짙어지기 전에
가봐야겠다 하고
사진도 찍어보고 올라보지 않은
계단도 오른 것이다.
개폼을 잡아봐도 나는 이 추위를 감당 못하겠다.
안녕 옥상아, 나를 불안에 떨게 하는 너 계단아!
(잡지 마라 추워 디지겠다.)
나의 감성들을 깨우려 했지만
나의 모든 피부 세포들의 선잠만 깨우고
달래지도 못하고 도망치듯
무거운 철문을 열고 후다닥 내려온다.
유니폼만 입은 채로 느껴진 추위는
따뜻한 국물을 불렀고
식당가는 대신 컵라면에 뜨거운 물을 붓는다.
아찔했던 기억만 소환당했다.
1층에서 전화가 왔었다.
원무과 실장님이다.
출근해서 오래되지 않았으니까
8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나 보다
환자 한 명이 10층에 있는데
계단 꼭대기에 올라가 앉아 있다 한다.
담배 피우러 갔다가 깜짝 놀랐다고
난 그곳에 10층 정원과 이어진
계단이 있는 줄도 몰랐다.
환자복을 입고 있다 하니 입원 환자가 맞다.
올라갔다.
작은 옥상 끄트머리에 좁은 계단이 있다.
하늘로 닿는
경사도 보폭도 큰 편이라 후들거리며 올라갔다.
환자에게 다가가
내려가자 하는데 좀처럼 말을 들어줄
기미가 안 보인다.
좁은 계단 꼭대기에 손잡이도 엉성한 그곳에
미동 없이 앉아 있다.
간호사가 올라왔음에도 별로 놀라지도 않는다.
나는 환자 옆에 앉았다.
좁고 긴장된다.
내려가고 싶지 않다 한다.
산모였다. 아기 낳은 지 며칠 안된
섣불리 말을 시키지 않았다.
그냥 옆에 오래 앉아 있었다.
다른 얘기도 거의 하지 않았고
그렇게 있다가 40분 정도 흘렀을까
같이 내려왔다.
아무 서사도 없었고 나만 식겁한 거였다.
자칫 사고로 이어질 수 있었고
그 아침에 환자는 왜 그랬는지
그냥 거기 조금 앉아 있겠다 해서
나도 같이 앉아만 있겠다 했었다.
감성 한 조각 얻어 보려다
아찔한 기억만 한 조각 소환하게 됐다.
많이 묻지 않길 잘했다.
자신도 그 행위가 어디서 비롯된 건지
이해하지 못했을 거라 여겨진다.
'나도 묻지 않을 게요
잠시 앉았다 같이 내려가기만 합시다'
나는 그거면 됐었다.
감성이고 기억이고 옥상은
"옜다 겨울이나 받아라."
나는 받을 수가 없다.
나의 겨울은 매년 12월 1일에 시작되기 때문이다.
뭔가 있을 거라 생각하겠지만
없다.
12월이 오면 쨍한 서늘함과 함께
소망, 새로움, 설레임, 꿈 이런 단어들이
맘에 훅 들어오기 때문이다.
겨울을 지금 이대로 받을 수 없는 것은
가을을 쉬이 보낼 수 없는 까닭이기도 하다
'늦가을'이란 이름을 존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