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에 목사님이 여러분 계시는데 그중 한 분이
연말에 떠나신다 한다. 다른 교회로 이동하는 것이다.
소식이 느린 편이다. 몰랐다.
며칠 전 새벽에 그분이 전하는
설교를 듣다 그냥 듣고만 있을 수 없어
도구가 없던 나는 핸드폰에 메모를 시작했다.
보통 새벽은 명료한 게 아니라 비몽사몽일 때도
좀 멍한 상태일 때가 많다.
젊은 목사님은 새벽 같지 않은 목소리와 표정으로
말씀하셨다.
덜 깬 눈과 세수 안 한 얼굴을 들고
마주 보게 하는 재주를 부리셨다.
물론 뒤쪽 자리라 잘 보이진 않을 거라 생각하고
고개를 든 채 말씀을 들었다.
가난했던 어린 시절을 얘기하셨다.
돈이 없어 어느 날 집에 전기가 다 끊겨 버렸다.
전기가 끊기니 보일러도 안 되는 추운 밤이었다.
질흑같은 어두운 밤은 어린아이에게
무섭고 떨리고 춥고 아득한
두 번 다시 맞고 싶지 않은 밤이 되었다.
그때 엄마가 양초를 몇 개 찾아 거실에 켜고
함께 둘러앉아 얘기를 하고 그림자놀이를 하다가
그곳에서 그대로 잠든 밤이었다고 한다
절망일 수밖에 없는 밤.
그러나 밤은 끝이 있는 어두움(적을 수밖에 없었다.)
아침은 올 수밖에 없다고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는 우리에게
새벽별이 우리에게 오셨다고.
말씀하셨다.
그 새벽에 안 하던 메모를 했었다.
그분이 떠나신다 한다.
내심 많이 아쉽고 섭섭하다.
그럼에도
아마 나는 그분과 별다른 인사를
하지 않을 거 같다.
피해버릴 수도 있겠다.
어른이 됐지만 미성숙한 내 모습이다.
오래전 나는 많이 존경했던 목사님이
떠난 후 더 이상 이분들에게 정을 주지 않는다.
그렇다고 존경하지 않는 건 아니다.
금요일밤에 앉아 있는데 한 무리가 들어와서
앞에 옆에 앉는다. 나는 그 친구들에게
"♡♡♡목사님 가신다며? 난 이제 알았다."
했더니 방금 그 목사님과 마지막 성경공부를
하고 오는 길이라 한다.
묻지도 않는데 나는
"섭섭하겠네 그래서 난 정을 못줘. 아니 줄수도
없어." 했더니 다들 웃는다.
앞친구가 뒤를 돌아보며 동그란 눈을 뜨고
내게 말한다
"좀 모자란 것에 정을 주면 된다.
모자란 것은 안 떠난다."
정색하고 내게 조언을 해준다
나는 깔깔 웃었다.
그리고 이어 나도 말했다
"그래서 내가 너한테 정을 줬잖아.
떠나지 마라 알겠지?"
우린 잠시 웃었다.
웃자고 하는 말이기도 했지만 진심이었다.
사람과 이별하기 싫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상대적이어서
서로 마음을 주고받을 수밖에 없다.
많이 정을 주면 그만큼 헤어질 때 힘들다.
내가 헤어질 때 상처를 덜 받기 위해
정을 절제하는 것에
오늘은 어른인 내게 이게 맞는지 물어본다.
진즉부터 이것에 대해 고민을 했었다.
얼마 큼의 정을 줄 것인지 측량할 수 없기에
수치화시킬 수도 없고
미리 이별을 준비하는 것처럼 정 주지 않겠다는
내가 나도 모르겠다.
아님 정이 본래 없는 사람인건 아닌지
괜한 그럴싸한 이유들을 만들어 내는 건 아닌지
말과 다른 나를 발견한다.
말은 시크하고 강하고 툭 던지듯 하지만
마음은 여리고 정이 많고 예민하다.
토요일 아침 많이 울었다.
화장지를 놓고서 눈물 콧물을 쏟았다.
연이동산님은 글과 그림을 아름답게 쓰시는
브런치 작가분이시다.
사실 그리 오래되지 않은 만남이다.
연이동산님은 내 글을 써도 되냐는 동의를
구하셨다. 영광이라 답했었다.
생각지도 않았는데 토요일 아침 '글친구'라는
제목으로 나를 그리셨고 엄마랑 그네 타던 모습을
그려주셨다.
이런 위로를 받는 건 처음이라 처음엔 뭐지 하다가
손으로 얼굴을 가린 후 눈물이 터졌다.
나란 사람은 눈물보다 콧물로 오랫동안 운다.
마음속에 숱한 생각들이 지나갔다.
사람은 그냥 사랑해야 하는 대상임도 깨닫는다
정을 주면 얼마나 줄 거라고 미리 바리케이드를
치는 내가 어리석다.
젊은 목사님이 떠날 때 인사 할 것이다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고 싶어졌다.
아침에 사랑과 위로를 받은 느낌을 오래 간직하고
싶다.
이렇게 내게 사랑을 전해 주신 분
겨울날 따뜻한 붕어빵 한 봉지 건네는 것과는
다른 느낌이다.
일상의 소용돌이 속에서 때로 거친 삶을 거쳐
잠시 한숨 쉴 때 차 한잔과 따뜻한 포옹으로
나를 감싸는 어떤 분을 만난 느낌이다.
잠시 그 품에서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