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부터 내린 비가 게으른 아침을 허락하니
출근길은 어둠이 다 걷히지 않았습니다.
비는 계속됩니다.
제가 있는 이곳은 가을이 여태 남아서 진행 중입니다.
남쪽이라 그런지 노란 은행들이 이제야 빛을 발하기도 합니다.
출근길 샛노란 은행들은 예술입니다.
지난밤 둘째 딸에게 말했습니다.
"엄마는 머리 감는 게 너무 싫어, 출근하래? 머리 감을래?
하면 출근할 거라고."
"그건 아니다 엄마."
이 아침에 이 풍경으로 초대하기 위함이라 말해봅니다.
그래서 막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했나 봅니다.
휴가를 반납하고 출근했습니다.
(이유는 따로 있었지만)
이 비가 그치면 추워진다고 하니
마지막 화려한 춤을 추는 단풍들입니다.
몸부림이 심해서인지
잎을 떨궈내고 얼마 남지 않은 이파리를 붙들고 있는
가난한 철학자 같은 나무들이 줄지어 있는 구간도 있습니다.
세찬 바람이 후비고 지난 듯합니다.
아침 새로움에 걷히지 않는 어두움은 모순 같지만
비 오는 오늘 풍경은 붙잡고 싶은
가을 아침 일 뿐입니다.
글을 쓰기 시작한 이후
유달리 가을을 많이 말하고 표현해서 인지
가을에 집착하는 것 같습니다.
그만큼 올가을도 집요하게 나를 건드려 왔습니다.
노란 잎들이 거리의 바닥을 메꿔가는 비 오는 아침
계단 복도에서 창 너머의 거리 풍경을,
바닥에 착 붙은 잎들을 사진에 담습니다.
누군가 같은 생각에 잠긴 사람이 있다면
이 아침 풍경을 나눠 가지면 좋겠습니다.
어제저녁 일곱 시가 다 되어 퇴근하는 길은
이미 어둠이 자리를 잡은 시간이었습니다.
하늘과 구름을 올려다보는 게 자연스러워졌습니다.
글을 쓰고 싶게 합니다.
안 하던 짓을 하게 됩니다.
차 시동을 걸고 출발 전
음성 녹음을 켰습니다.
(말로 글쓰기하는 어플이 있다는데 잘 안됩니다.)
짧은 시간이지만 음성으로 글쓰기를 해봅니다.
같은 구름, 같은 하늘은 아니었겠지만
구름과 별들이 거기 있었고
땅에는 꽃들이 피고 지었다.
몰랐던 건 아닌데 글을 쓰며 이 여정들이
새롭게 다가온다.
글을 쓰고 나이를 먹음이
세상에 여백이 남아 있음을 보게 해 준다.
부산 가을밤은 한없이 무르익는다.
거리마다 노란 은행들은 설렘과 차분함을
동시에 가져다준다.
아쉬움도 쌓여 간다.
이 빛깔이 다하면 이 잎들이 떨어지면
한 계절은 물러선다.
오늘은
겨울을 맞이하는 향연일지도 모른다.
긴긴 겨울은 아름다운 가을의 끝을
회오리로 쓸려한다.
이미 제잎을 많이 떨어뜨리고
한때는 무성했노라고 외치는 나무들도
떨고 있다.
그것은 그것대로 아름답다고
나는 표현할 것이다.
실제로 그것은 아름답다.
섬세한 잔가지들이 그대로 남아 있다.
온통 벗어버린 갈색 나무들이
노랗게 무성한 나무들과 함께 있다.
저들은 서로 비교하지 않는다.
주워지는 대로 주시는 대로 흘러가는 대로
비를 맞으며 햇빛을 받아들이며
바람과 더불어 살아간다.
가을의 나무들은 깊이 고뇌한다.
무성했던 잎들을 품고 있다가
더 이상 활짝 필수 없을 때
자신의 잎들을 물들이기 시작한다.
내가 아는 지상의 색들은 노랑. 빨강, 갈색
이런 색 들이지만
천상이 한 스푼 가미되니 더 이상
사람이 만들어낸 색들이 아니다.
땅이 만들어낸 색이 아닌 하늘의 색이다.
잎을 물들이는 동안 나무는 고독했다.
고통의 시간들이 있었다.
아름다운 것들은 참고 인내한다.
오묘한 신의 색들은 봄의 틔움과 여름의 성장과
메마른 겨울을 견디어 낸다 (녹음 끝)
겨울맞이를 준비합니다.
오늘 퇴근길 바람은 변심한 사랑 같습니다.
낯설지만 가는 그 사람 붙들지 않겠습니다.
속마음 들키지 않게 꽁꽁 싸매고 내일은
나와야겠습니다.
2024.1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