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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in Dec 28. 2024

아침달의 변신

 아달을 보았다.

정교한 눈썹 같은 모습이었다.

미용실이라도 다녀온  모양이다.

탈춤에서 본 건지 정극에서 본 건지  가느다란  눈썹 같은 달은

새초롬한 모습으로  이미지 변신한 거 같았다.

하루쯤  못 봤는데  낯설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건  무거운 마음이 잠시 스친다.

신호가 바뀌자   여느 날  보다 추운 아침에

병원  현관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12.27일 아침달



연말  오후는  세기말을  사는 듯한  분위기를 풍긴다.

우울하고 스산하다.

도시는 새조차  사라졌다.

바람도 없는  추운 날씨다

창가 실외기옆  비둘기 두 마리는  그렇게 투덜거리더니

어느 날부터 흔적도 없다.


크리스마스도 지나고   연말로  치닫고 있다.

오후에 내린  적막이  도시를 대변하고 있는 거  같다.

차소리도  멀어졌다.

새해라는  그럴싸한  이벤트를  앞두고

얼렁뚱땅 지나는  시간들을  살고 있다.

그렇다고  큰 의미를 부여해 무겁게  살고 싶진 않다.

어차피 지나야 할 시간이고  

시작할 때나  끝나가는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 건 없 


본격적인  추위가 시작되는 구간이기도 하고

이 시간이 지나면  나이 숫자가 바뀌긴 하는데

언제부턴가  숫자를 세보지 않는다.

숫자를 세지 않더라도   주민 등록증에 기록된 데로  

한 살을  더 얹게 될 것이고  

의미를 크게 확대해  좋을게 아무것도 없을 거 같기 때문이다

.

그러고 보니  세기말보다는 세 기초를 살고 있는 중년이다.

오십 대 중반을  넘기고  있다.

어른을 살고 있다.

글을  쓰지 않을 때는  이 시간을  그냥 무리 없이 보냈을 거 같다.

연말연시라는  단어 속에  때로는 바쁘게  정신없이

보냈을 수도 있겠다.


글 쓰는  이로   이 시간을 붙잡고 있는 거 같다.

아쉬워서는 아니고  헤어지기  힘겨워서도  더욱 아니다.

글을  쓰니까  의미 부여?  도 아니고

솔직히 글을 쓰기 위해  잠시 멈춘 시간이다.

단지  그 시간이  한해를  얼마 남기지 않은 어느 오후일  뿐이다.

다시 말하지만   크게 다를 바가  없다.


완연한  겨울 오후는  무심히  왔다가  서둘려 가려할 뿐이다.

풍경에도  변화가 없고  산 위에도  구름 한 점 없는  

시크한 날이다.

글을 매일  쓰고 있지만   별다른  계획이 없는  

내 모습과 닮은 듯하다


한 주 동안  허리가  아파서  그리고  아픔이 가시고 나서는

아끼는 마음으로  새벽시간에  누워 있었다.

다음 주부터는  다시  새벽을  깨울 예정이다.

새벽달을  계속해서 보고 싶기도 하고  

아침 기도를    간절하든  간절하지 않든

이어 가고 싶다.

어미로서  해 온 게  없는 것 같은 내가  

기도하는 그 시간을 지키는 것이

자녀들을  사랑하는 일이라면  그렇게 하고 싶은 마음이다.



한줄기 빛이 또다시 창너머  아파트 측면을  비추고

마지막  밝음을  유지하다  곧 사라질 거 같다.

그러다 보면  하루도  해를 따라가버릴지도 모르겠다.

그러라지 뭐

아쉬울 것도  딱히 없다.

뭘  한 것 도 없지만  안 한 것도 없는 것이

무료하게도 하지만  편안하게도 한다.


저녁을 먹게 되고  마무리를 할 것이고  

내게  주어진   남는 시간이  있다면  책을

읽는 걸로 하자.

세기말  같은 연말을 보내고 있는 어느 오후

내일을 기대해 본다.

내일은 달이 얼마큼  더 갸름해지는지를 보고 싶다.

관심이 없을 땐  몰랐는데

오늘  아침에 본 달도  심히  가느다란  모습이었다.

더  가늘어질 수 있을까

내일은  그렇다고  다시 보름달이 되지는 않을 테고

세기말처럼  연말처럼  더 이상  줄어들 수 없을 만큼

가늘어질 텐가?

별 걱정을  다한다.



조용하고  추운  겨울날이

재빠르게  지나며  저녁이 오기도 전에

어둠의 기운이  세상을  덮기 시작한다.

겨우  5시를  지나고 있는데 말이다..



웃음기 뺀 글을 써보려 했는데  

철학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문학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어둠으로 들어가는  초입에 접어들 뿐이다.


이 해가 이렇게 거침없이 지난다 해도

 내년에는  쓰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

9월에 쓰기 시작한  짧은 글쓰기들이

쓰는 사람으로 발걸음을  내딛기 시작했다면

 다음 해에는  쓰는 이로   머물고 싶다.

누군가에겐 머묾이  책이 되기도 하고

뭔가 집필을 시작하는  과정이 될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저  뭐든 쓰고 있고 싶다.

시도 좋고  일상을 계속  적어가도 좋을듯하다.

다만 쓰는  삶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다.


왜냐면

쓰지 않을 때 나랑 비교해  

내가 근사해졌기 때문이다.

어쩌면  나이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시간 속에 머무는 사람들 풍경들

의미 없이 지나가 버리지는 않는다.

그들은

내속에  들어와 나와  대화하고   나는 그들에게

존중을 표하고  때론 감탄하고  감사한다.


글을  쓰면서 만나게 된  몇몇을 떠올려 본다.

허망하게  관계들이  허물어 질지라도

지지받았던 말들과  위로가 오래 남을 거 같다.


함께  살아간다는  위로를  주었던 분들을

기억하고 싶은  저녁이다.

내일  새벽달은  과연   어떻게  하고  나타낼 것인가?

내가  저를  어떻게 봐주기를 바란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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