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변화는 낯선 말에서부터 시작된다.

: 푸코, 바르트, 레비스트로스, 라캉 그리고 나마스떼

by 발견


사람들은 곧잘 인생의 책을 꼽는다. 비단 책 뿐 아니라 가장 좋아하는 것에서부터 가장 싫어하는 것, 가장 잘하는 것에서부터 못하는 것까지 딱 하나를 잘 추려내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런 부분에 약해서 누군가가 “선생님은 무슨 책을 좋아하세요?” 내지 “선생님 인생 책은요?”라고 물으면 대답을 주저한다. 준비되지 않은 질문을 받은 순간의 당황함과 더불어 그 질문에 꼭 맞는 책의 제목을 대는 일은 쉽지 않다. 대표적인 몇 권을 미리 선정해두면 될 일이라 생각해도 좋지만 질문자의 관심에 부합하는 책의 제목을 말하고 대화를 이어가야겠다는 생각이 앞서면 그 책들의 제목이 입 밖으로 내뱉기 어렵다. 또 같은 책이라도 그 책을 읽던 당시의 상황에 따라 몸이 기억하는 느낌이 달라 지금도 그 책이 내 인생의 책인지에 관해 스스로 의심하기 떄문이기도 하다. 한결 같은 맛을 가진 음식이 누구와 언제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달라지듯 말이다.


중학교 2학년 짝사랑에 가슴 졸이던 때에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고 ‘베르테르가 자살한 이유를 알 것 같아’라며 세상을 다 산 기분에 젖었고 아이를 수유하며 가슴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했을 땐 『트와일라잇』을 읽으며 뱀파이어의 사랑에 대신 설렜으며 결혼 생활이 마음처럼 쉽지 않다고 느껴질 때면 『안나 카레니네』의 첫 문장을 마음으로 읊었다. 하지만 지금 그 책들을 읽는다면 그 때의 느낌과 위안 공감을 얻지 못할 것이며 전혀 다른 감동으로 혹은 실망으로 다가올지도 모른다. 그러니 얼어붙은 영혼의 바다를 도끼로 내려치는 책을 만나는 일은 영혼이 어쩌다 얼어붙게 되었는지와도 관련이 있다. 그 얼어붙은 부분을 내려치는 내용을 담은 책이 독자에겐 도끼와 같은 책이 될 터이다.


물론 내게도 마음 한 켠에 크게 자리 잡고 있는 책들이 있기는 하다. 그 중에 특히 주저하며 꼽는 책이 있는데 유명한 책이기는 하지만 익숙하지는 않으며 감동적인 내용도 아닌 딱딱하기 그지없는 책이어서 입도 잘 떨어지지 않는 책이다. 어쩐지 책 제목을 말하고 나면 상대방이 “아, 그러시구나.” 정도의 반응이 나올 거 같다는 걱정이 앞서 잘 말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책 제목이 아니라 스스로도 그 책을 뽑은 이유를 설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머릿속을 동동 떠다녔지만 쉽게 꺼낼 수 없었던 책의 저자는 "우츠다 타츠루", 제목은『푸코, 바르트, 레비스트로스, 라캉 쉽게 읽기』다. 그런데 놀랍게도 요가를 하며 책 제목을 말할 수 있게 되었고 왜 그것이 내 마음에 크게 자리 잡고 있는지도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숨 들이마시면서 손 머리 위에서 합장, 후 내쉬면서 손 가슴 앞으로."


내가 생각한 요가는 여기까지만 맞았다. 이후 선생님의 동작은 가부좌를 틀고 두 손을 모으는 것이 아니라 머리에서부터 발가락 끝까지를 고루고루 펴나갔다. 물론 수업의 첫날 나는 오른쪽과 왼쪽을 구분하지 못해 옆 사람과 눈이 마주쳤고 몸을 비틀지 못해 두 다리를 뻗고 반듯하게 누워버렸다. 선생님이 다가와 나의 오른 다리를 들어 왼쪽으로 비트는 데 성공했지만 어깨는 하늘에 동동 떠있었다. 첫 수업이니 당연한 거였지만 거울 속의 비친 사람들과 비교되는 내 모습에 주눅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저 가만히 허리를 펴고 등을 세우고 두 발을 모아 앉는 자세도 되지 않는 내가 자랑스러울 이유는 없었다. 애를 쓰며 허리를 펴도 거울 속의 나는 여전히 구부정하다고 생각할 때 선생님이 다가와 살 속에 깊이 숨기고 있던, 평생에 걸쳐 언제 펴 보았을지 기억도 가물가물한 뼈를 툭하고 누르며 말씀하셨다.

"여기, 경추 3번을 세우시는 거에요. "

"아, 아. 네."


'경추 3번이 어디쯤에 있는지 알게 뭐람'의 인생을 살아온 내가 허리를 편다는 것의 의미를 처음으로 깨달은 순간이었다. 혼자서 유레카를 외치는 사이 이어진 선생님의 다음 동작은 당연히 그 어느 것도 제대로 소화할 수 없었다. 벌을 받는 것처럼 엎드리고 일어서기를 반복하는 동안 두 팔은 흔들거렸고 정신은 몽롱해져 갔다. 척추를 앞으로 뽑아내라는 말, 숨을 들이마시고 내 쉬라는 말 그 어느 것도 쉽지 않았지만 경추 3번, 경추 3번을 되뇌이며 허리를 세웠다. 이젠 더 이상 못 버틸 거 같은 순간에는 ‘차일드 포즈’가 찾아왔다. 차일드 포즈는 무릎을 꿇고 엉덩이와 발뒤꿈치가 붙인 채 어깨와 가슴은 바닥에 팔은 앞으로 쭈욱 뻗는 자세다. 유연한 어린들이에게는 특별한 ‘자세’라 할 것도 아닌 자세다. 하지만 나무 막대기에 가까운 나에겐 어린이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일은 무척이나 당황스럽고 어려운 일이었다. 당연히 엉덩이는 발뒤꿈치를 탈출해 하늘로 향해 있었고 어깨는 공중에 대롱대롱 떠 있었다.


한 시간을 버티고 문을 열고 나온 어둑한 길을 따라 걸을 때, 푸코에서 시작해 라캉으로 끝나는 책이 떠올랐다. 그 책은 내게 유레카와 몽롱함 당황스러움과 어려움이 교차하는 책읽기였다. 구조주의라는 말은 낯설었고 당시 한창 유명했던 강신주 작가의 책에 두루 나오는 저자들은 더 낯설었다. 하지만 저자는 탁월했고 나는 낯선 길을 따라갔다. 푸코, 바르트, 레비스트로스, 라캉의 말들과 글들 사이에 우츠다 타츠루의 해석까지를 겹겹이 읽으면서 발뒤꿈치가 탈출해 하늘에 있듯 나름의 오독과 뜻밖의 감동을 받았다. 특히 그의 서문 중 우리가 모르고 있는 이유는 알고 싶지 않아 하기 때문이라는 '한결같이 알고 싶지 않다고 노력한 결과'가 바로 '무지'라는 표현은 심쿵 이상의 의미로 다가왔던 것 같다. 사실 이 책을 읽고 구조주의를 이해하게 된 것도 이름만으로도 쟁쟁한 그들의 이론을 알게 된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우리가 무엇인가를 알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저자의 지적은 내게 큰 도전이 되었다. 그 한결같은 노력으로 쌓아올린 무지에 부끄러움이 일었고 아마도 그 이후로 나는 꽤 오랫동안 꽤 많은 책을 노력해서 읽었다.


요가는 “나마스떼”로 시작해 이 말로 끝난다. 사십 넘게 “안녕하세요?”를 인사말로 삼았던 내게 이 말은 낯선 말이다. 하지만 변화는 낯선 말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바로 그 이유가 내가 이 책을 꼽은 이유가 되었다는 걸 이제야 깨달았다. 낯선 말들 투성이었지만 그리하여 변화가 시작되었다. 제목엔 나오지 않지만 마르크스, 프로이트, 니체와 소쉬르 등 낯선 그들에게도 "나마스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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