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과 만날 때, 몇 명이 모일 때 가장 즐거운지 더불어 고민해보자
영상 콘텐츠는 수많은 장르들로 표현할 수 있는데, 이 장르들의 특징을 규정하는 방식 역시 셀 수 없는 장르의 종류만큼이나 다양하다. 만약 보는 이를 웃기려는 목적이라면 예능이나 코믹물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고, 실제 있었던 일을 드라이하게 전달하려는 목적이라면 어김없이 뉴스 물이라고 호칭을 달 수 있을 것이다.
이렇듯 내러티브의 구조나 스토리텔링의 방식이 장르를 규정하는 주요 요소이지만 슈퍼 히어로가 등장하면 히어로물, 독수리 오 형제나 파워 레인저가 등장하는 드라마 타이즈 콘텐츠는 특별히 전대물이라고 부르는 등, 소재에 따라서 장르명을 정하는 경우도 많다.
내가 생각하기에 장르명을 규정하는 특별한 케이스가 있는데, 해당 콘텐츠에 등장하는 인원에 따라서 장르가 명명되는 것이다. 단 한 명의 배우가 무대 위에서 홀로 연기를 펼친다면 절절한 모노드라마를 본 것이다. 두 명이 시종일관 어떤 주제에 대해서 얘기를 한 것을 담은 것을 대담이라고 한다. 카메라 감독님에게 '대담 물' 촬영을 의뢰한다면 여지없이 촬영 날 두 명이 어떻게 앉아서 얘기를 나눌 것인지 구체적으로 물어볼 것이다. 그런데 일정 인원수를 넘어가면 별도의 명칭이 없어지기도 한다. 의자에 앉아서 얘기하는 형식으로만 한번 한정해 보자. 세 명이 어떤 주제에 대해 얘기하는 콘텐츠와 네 명이 얘기하는 콘텐츠를 따로 부르는 말은 없다.
음악에는 듀오(2명), 트리오(3명), 쿼텟(4명), 퀸텟(5명) 등 엄격한 인원수에 따른 장르(?) 명칭이 있긴 하다. 음악에는 인원수가 늘어남에 따라 악기 구성이 늘어나고, 악기 구성이 늘어나는 것은 음악 표현의 가능성이 넓어짐을 의미하는데 듀오에서 퀸텟, 그리고 식스텟(6명) 등으로 한 명이 늘어날 때마다 달라지는 그 표현 가능성의 차이는 거의 퀀텀 점프의 수준에 준하기 때문에 별도의 명칭이 붙었을 것이다. 유의미한 차이가 있어야 별도의 명칭이 생긴다는 일반 법칙이 있다? 만약 그렇다면 앞서 예를 들었던, 세 명이 얘기하는 콘텐츠와 네 명이 얘기하는 콘텐츠는 '인원에 따른 유의미한 차이가 따로 없어서 아마도 별도의 장르 명칭이 있지는 않은 것 같다'라고 이해하면 될까.
하지만 과연 그런가? 두 명이 어떤 주제를 가지고 얘기를 나누는 형태의 콘텐츠와 세 명 또, 네 명의 콘텐츠는 단순히 '한 명이 더해져 얘기를 나누게 된다'를 넘어서는 참신한 서사가 등장하지 않을까는 기대가 든다. 친구들도 2명이 딱 만나는 것보다 3명, 4명이 만나는 게 훨씬 재밌다. 일단 2인 대담에서 나타날 수 있는 내러티브 유형의 가능이라곤 '대립'과 '협치' 정도이다. 둘이 날 서서 토론하는 형태 혹은 힘을 합해 주거니 받거니 하는 형태일 것이다. 하지만 이에 한 명이 더해져 세 명이 보여줄 수 있는 이야기 전개의 지평은 매우 다를 것 같다. 또 다른 비유를 오버해 덧대자면 점-> 선-> 면-> 입체로 이어지는 차원의 변화가 보여줄 수 있는 의미들의 가능성의 차이에 준할 것 같기도 하다.
구체적인 내용을 보면 도움이 될 것이다. 3인 대화 콘텐츠로 대표적인 것은, 먼저 <썰전> 유형이 있다. JTBC의 간판 프로그램 중 하나였던 <썰전>은 모더레이터 역할을 담당하는 김구라를 중심으로, 특정 주제에 대해 날카로운 대립각을 펼치는 2인이 치열하게 토론하는 콘텐츠다. 특히 김구라 + 유시민 + 전원책의 조합은 역대 출연자 조합 중 최고로 흥미로웠는데, 실제 종편 시사 교양물로는 굉장히 높은 10%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이 3인 조합이 흥미로웠던 이유는 유시민과 전원책이 가지고 있던 본연의 지적 대화를 기반으로 하는 교양물 패널의 역할과 일명 '아재 개그'로 통합되는 엔터테이너의 역할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다는 점, 그리고 모더레이터 김구라가 이 두 가지 면을 동시에 가지고 있기에 그런 두 출연자의 역할을 증폭시키는 촉매가 되었다는 점이라고 생각된다.
시사 교양 패널로의 유시민 전원책은 한 치의 양보도 없는 논리 전개로 살벌한 토론 배틀을 선보였다. 이때 김구라는 때로는 촌철살인의 질문으로 패널의 전투력을 고취시키기도(?)하고 일반적인 전개로 안정적인 토론이 진행되도록 돕기도 한다. 오랜 기간 시사를 주제로 한 콘텐츠(그 퀄리티나 우아함은 둘째 치고서라도...)를 진행한 전력이 드러나는 면모다. 전원책의 아재 개그와 유시민의 대중문화에 대한 놀라운 이해도가 뒤섞인 유머 대화에서 김구라는 <썰전>을 바로 <라디오스타>의 분위기로 만든다. 그때 전원책과 유시민은 토론을 멈추고 대화합의 장을 만든다. 이렇게 두 가지 패턴이 반복되며 진행되는 이 시청률 10% 프로그램은 실제로 정말 재밌다.
그런데, 결국에 <썰전>이 보여준 메타적 내용은 2인 대담의 확장판에 준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김구라의 존재가 없어도 이들은 토론하거나 화합하는 대화를 전개해 나갈 것 같다. 3인 콘텐츠는 2인 콘텐츠와 전혀 다른 입체적인 내러티브가 등장하리라고 기대했던 것에 비하면 조금 실망스러운 상황이다.
3인이 대화로 펼치는 뭔가 엄청 정말 진짜 신박(?)한 구조의 콘텐츠는 없을까? 다른 예시를 찾아보자. <썰전>과 같은 'Un-scripted' 콘텐츠가 아닌 'Scripted' 콘텐츠를 고려하면 3인 대화의 흥미로운 예시를 찾을 수 있다. 두 경찰과 한 명의 범죄자의 조합이 경찰차 안에서 펼치는 영화 속의 3인 대화 장면을 보자. <Cop out>이라는 제목의 영화이며 유튜브에서 경찰차 속 3인 대화 신을 쉽게 검색해 볼 수 있다.
구도만으로도 유사한 수많은 레퍼런스 장면들이 떠오른다. 영화 <세븐>에서 마지막 6, 7번째 죄악이 밝혀지는 곳으로 향하는 두 형사 브래드 피트와 모건 프리먼, 범죄자 '존 도' 역의 케빈 스페이시가 활약한 장면도 떠오른다. 아마 <투캅스>와 같은 고전 경찰 영화에도 분명 있었을 것 같다.
아무튼 <Cop out>에서는 세 인물은 각각 입체적인 처지들을 가지고 있다. 먼저 브루스 윌리스와 조수석의 트레이시 로건은 같은 경찰이지만 인종이 다르고 말투나 처한 처지나 나이대, 성격이 서로 상극인 콘셉트다. 후석에 앉은 잡범은 두 경찰을 모두 조롱한다. 무관심했던 트레이시 로건보다 브루스 윌리스의 약점을 철저하게 놀림거리로 만든다. 하지만 이내 격정적인 성격의 트레이시 로건과 실질적으로 대립하는데 이때 브루스 윌리스는 희미한 웃음을 지으며 감정적인 동조를 한다. 적과 아군이 뒤섞인 입체적인 'Tri-pod' 식의 대립은 마지막 'Knock Knock' 농담을 받아주는 것에 대해 세 명의 침묵이 흐르며 감정적으로 날을 세우는 장면에서 완성된다. 별것도 아닌 농담, 그리고 그걸 받아 줄 이유가 없지만 받아 줄 준비를 하는 브루스 윌리스, 그걸 막는 자체가 우스운 일이지만 거기에 불같은 성격을 투자하는 트레이시 로건, 이들의 대립을 존중하며(?) 대답을 조심스레 기다리는 젊은 잡범 숀 윌리엄 스콧의 태도는 쓰리샷의 프레임 안에서 한데 뒤섞여 명장면을 만들어 냈다.
<썰전>에서 유시민과 전원책은 대립과 화합을 반복하고, 김구라는 이를 돕는 촉매의 역할을 하며 3인의 콘텐츠를 이뤘다. 이런 1+2 유형이 있다면 <Cop out>은 1:1 대립 조합 3개가 서로 등을 맞대고 팽팽하게 서 있는 모형이 떠오른다. 또 다른 케이스? 정말 재미있는 영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의 절정 부분이다. 좋은 놈 정우성, 나쁜 놈 이병헌, 이상한 놈 송강호가 최후의 장소에서 만나 총질하기 전 대화하는 장면이다.
이 장면은 1:1:1의 모델 같다. 서로 자기의 말만 하며 강렬한 캐릭터를 드러낸다. 앞서 보였던 느낌과는 또 다르게 새롭다. 실제로 이 씬에서 투샷이나 풀샷은 거의 쓰이지 않고 대부분 세 명 각각의 원샷으로 진행이 된다. 거의 모놀로그 3개를 교차로 이어 붙인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그리고, 숨죽여 보게 했던 영화 속의 명장면이 되었다.
결론적으로 뭔가 미묘하다. 3인의 토크 콘텐츠는 2인 대화의 내러티브의 확장이기도 하면서도 'Tri-pod' 느낌의 새로운 것이기도 하다. 애초에 의문을 가졌던 바 대로, 뭔가 장르 명을 새롭게 붙이자니 아쉽고 분명히 다른 점은 있는데 하나로 규정짓기가 어렵다. 하지만 결론은 '2인보다 더 재밌다'는 것. 대립은 더 명확해지고 협력의 내용은 더 찰떡같다. 대화의 티키타카가 더 입체적으로 보이고 위협적인 총의 방아쇠가 언제 당겨질지 가슴이 더 쫄린다.
항상 더 재밌지는 않을 수도 있다. <데스노트> 만화책에서 모든 이들을 손쉽게 죽일 수 있는 노트를 얻은 라이토와 이를 막기 위해 애쓰는 L, 그리고 공권력의 무능함을 스스로 자책하는 형사 국장 소이치로의 3인 토크 장면이 더러 나온다.
형사 국장 소이치로는 라이토의 아버지인데, 자신이 아들 라이토가 결백함을 밝히기 위해 스스로 고육지책을 쓰면서까지 막으려 하고, 라이토는 아버지를 속이면서 L의 감시를 피하면서 또 아버지를 이용해 L을 속이려고 한다. L은 아버지를 또 이용해서 라이토의 속을 떠보려고 하면서도 라이토를 의심하면서 그것을 역으로 이용하려고 한다. 뭔가 복잡하다. 작품 자체는 정말 명작에 흥미로운 소재로 재미있었지만, 이상하게도 이 세 명의 대립이 나올 때마다 뭔가 복잡하고 풀리지 않고 흥이 떨어져 버리는 기괴한 느낌을 받았다. 차라리 라이토와 L의 정면 대결이 좋았고 범인을 잡으려는 아버지와 바로 옆에서 사람을 죽이는 아들의 구도가 좋았던 느낌이 있다. 개인적인 소감이지만.
한 명이 호랑이를 언급할 수 있고 두 명도 마찬가지로 '호랑이가 나타났다!'라고 외칠 수 있지만, 진짜 호랑이가 튀어나온 것 같은 느낌은 세 명이 말했을 때라고 하지 않는가. 3인이 토크로 이루는 콘텐츠에는 뭔가 있다. 기호학적인 고민, 의미론적인 고민들이 덧붙여지면 조금 더 똑똑한 듯 보이는 결론으로 갈 여지가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렇다면 4인은 어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