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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돌 Oct 29. 2021

누구나 아름다울 수 있다

소설 <당신이 아름답지 않다는 거짓말>을 읽고

 

  

  페미니즘이 정확히 무엇일까? 이 단어가 주는 크고 작은 두려움이 있다. 페미니즘에 동의하지 않는 누군가에게 공격당할 두려움이 아니라 그 깊이를 잘 알지 못한 채 생각하고 말하게 될까 봐 하는 두려움이다. 이 책을 읽는 것은 내 선택은 아니었다. 하지만 좋든 싫든 접하게 될 학문이고 만나게 될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면 좋은 기회일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고대 미술 작품을 통해서 페미니즘을 고찰한다. 고대 미술과 전해져 내려오는 신화에서 세상에 저주를 내린 빌런은 거의 여자였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로 메두사의 머리, 선악과를 먹은 이브, 판도라의 상자가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것은 이야기라는 점이다. 이 일들이 실제로 있었는지는 우리가 알 방법이 없다. 그저 아주아주 옛날부터 이 이야기들이 사실인 것처럼 전해져 내려왔다는 점이다. 글쓴이의 생각은 이렇다. 이것들이 단지 이야기라면 왜 하필 여자인가? 우리가 지금부터 새로 각색해 나간다면 후대엔 인식이 달라질 수 있는가?


  작년쯤에 '슬릭'이라는 페미니스트 래퍼를 방송으로 접했었다. 본인이 페미니스트로서 하고 싶은 말들을 가사로 써 내려가고 퍼포먼스를 하는 방송이었다. 모든 출연자들은 여자 가수였으며 그들조차도 처음엔 슬릭을 낯설어하는 게 보였다. '하고 싶은 말을 하는 멋진 가수지만 나와 어울릴지 모르겠다'가 대부분의 반응이었다. 슬릭은 페미니즘 중에서도 교차 페미니즘을 공부했다고 말한다. 교차 페미니즘은 성별을 포함한 성 소수자, 장애인, 동물권 등을 모두 포함하는 페미니즘의 한 종류이다. 초기 페미니즘이 백인이면서 비장애인, 중산층의 여성 중심으로 흘러가던 것을 자기 성찰하던 사람들 사이에서 교차 페미니즘이 생겼다고 한다. 난 성소수자들을 지지하는 편이다. 호주에서 오래 살았던 경험이 한몫한 것 같다. 내 친구들, 학교 선생님은 동성애자였다. 공부하기 위해 주립 도서관에 갈 때면 앞에 넓은 잔디에 앉아서 애정 행각을 하던 많은 "연인"들. 성 소수자를 지지한다고 해서 내가 교차 페미니스트라는 건 아니다. 그만큼 페미니즘을 이해하려면 많은 것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단지 여자가 남자를 혐오하고 그런 여자를 혐오하는 남자들의 분쟁으로 정의되기엔 굉장히 깊은 학문이라고 생각한다.


  예전 직장 상사는 밖에서 흡연을 하는 여자 손님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며 얘기한 적이 있다. 그때 내 머리는 바빠지기 시작한다. 여자라서 이해를 못하는 걸까 흡연하는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는 걸까. 그는 분명 '여자가' 피는 걸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내 기억에 그는 흡연자였다. 내 뇌는 결괏값을 냈다. 아 이게 말로만 듣던 여성 차별인가.


"여자가 왜요?"

"그냥 뭔가 옛날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는데 요즘은 너무 많이 피니까"

"에이 요즘은 안 그래요~~"


마지막 내 말을 끝으로 그는 뒷문으로 사라졌던 기억이 난다.


  난 결혼을 한 지 1년이 되었고 종갓집 장남의 며느리인 나는 막중한 임무를 맡고 있다. 명절은 물론이며 기일에도 꼬박꼬박 제사 음식을 차리러 간다. 어르신들은 여자는 일찍 와서 음식을 차려야 하고 제사하는 곳에 들어와서는 안되며 제사가 끝나면 남자들이 먼저 밥을 먹어야 하며 등등.. 이유는 딱히 없고 그렇게 살아왔으니 해야 한다는 식인 것 같다.


  내가 전 직장 상사에게 쏟아내고 회사를 뛰쳐나왔다면 조금은 달라졌을까? 내가 그 엄중한 제사상 앞에서 왜 여자만 일을 해야 됩니까!! 했다면 조금은 달라졌을까? 아마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오히려 여성에 대한 인식을 더 안 좋게 만드는 일일 것이다. 페미니스트로서 UN 연설을 했던 배우 엠마 왓슨은 평등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남자와 여자 모두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저 다른 개체로 서로를 대하기보다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같이 움직여야 한다고 말이다. 그녀는 페미니스트임을 '결정했다'라고 말한다. 페미니스트가 되는 것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닌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다. 난 페미니스트는 아니지만 모든 사람들의 의견을 존중하고 싶고 존중되었으면 하는 바람은 있다. 그런 면에서 이번 책은 정말 신기하고 새로운 세상에 들어온 것 같다. 난 성경을 좋아함에도 불구하고 이브가 차별의 대상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감상문을 쓰기 위해 나름대로 연설 영상과 인터뷰도 많이 찾아보았다. 이러한 영향으로 내가 후에 페미니스트가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일 것이다. 이것을 결정하는 데에는 살면서 마주칠 수 있는 어떤 한 '경험'이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할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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