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그녀」는 여러가지 이야기를 건네준다. 그만큼 영화는 내용적으로 탄탄하고 풍성하다고 할 수 있다. 영화가 다양한 이야깃거리를 제공해준다고 해도, 하나의 큰 덩어리를 제시하는 것은 분명한 것 같다. 그건 영화의 포스터에 표기된대로 바로 '사랑'이다. 포스터 이미지 상에 표시된 감독 이름 스파이크 존즈 옆에 새겨진 "LOVE STORY"라는 문구는 바로 그러한 맥락에서 적절하다. 이 사랑 이야기는 인간과 인공지능 프로그램(영화에서는 OS: 운영체계로 소개된다) 사이의 만남과 헤어짐이기도 하고, 결혼한 부부가 겪는 이혼의 과정이기도 하다. 뭐가 어떻든 분명한 것은 영화를 말할 때 '사랑'을 빼놓고는 이야기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영화의 매력은 사랑을 풀어놓는 이야기의 방식에 있다. 영화가 흥미로운 이유는 A.I.와 인간 사이의 사랑이라는 특별한 소재 때문도 아니고, A.I.의 가능성에 대한 통찰을 가져다 주기 때문은 더더욱 아니다. 그것은 바로 사랑이란 욕망과 결핍의 결합체라는 사실을 날카롭게 전달해주는데 있다. 인간이든 한낱 A.I.이든 말이다. 따라서 과연 인공지능 프로그램이 감정을 갖고 있는지, 그것의 사랑이 과연 사랑이라 할 수 있는지 따위의 사유나 논쟁은 영화에서 중요하지 않다. 영화는 어디까지나 우리가 고민하고 고통스러워하는 사랑에 대해 말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테오도르는 편지 대필을 생업으로 삼고 있다. 발신자가 알려주는 정보를 바탕으로 수신자의 마음에 감동을 주는 글을 대신 써주는 일을 그는 썩 잘 해낸다. 다시 말해서 테오도르는 사람의 심정에 누구보다 섬세하게 접근할 줄 아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 자신은 정작 아내 캐서린에게는 그러지 못했다. 그는 지금 이혼의 과정 중에 있다. 즉 영화 '그녀'(her)는 테오도르라는 한 남자를 통해 관계의 단절과 결핍, 그리고 그것을 해결해보고자 하는 욕망을 다루고 있다.
테오도르는 외롭다. 그는 스스로 결핍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고, 이를 채우고자 나름 애를 쓴다. 그러다가 만난 상대가 바로 사만다이다. 사만다는 OS(운영체계)로, 인간이 느끼는 외로움을 해소시키는 파트너로서 모 기업에서 만들어낸 하나의 상품과도 같다. 그러나 이 상품은 단순한 소비재도, 하나의 프로그램도 아니다. 테오도르는 점차 사만다로부터 그 어떤 인간으로부터 받은 것보다 더 큰 위로와 즐거움을 얻는다. 그리고 재미있는 것은 사만다 역시 테오도르와의 관계 속에서 인공지능의 '딥 러닝'을 통한 계속된 진화를 거쳐서, 테오도르의 연인으로 발전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주목할 점은, 사만다 역시 외로움을 느낀다는 점이다. 사만다라는 운영체계 역시 결핍을 느끼며, 그 결핍을 채우고자 하는 욕망을 지니는 개체로 그려진다. 사만다의 결핍은 바로 '몸'(body)이다. 사만다가 느끼는 감정이 진실한지, 혹은 인간의 감정과 동일한 성격인지에 대한 논의는 영화를 이해하는데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사만다라는 프로그램이 스스로 자신의 결핍, 즉 몸이 없는 프로그램이라는 사실에 대해 실망한다는 점은 자신의 결핍이 사랑하는 대상에게 결격사유로 이어지진 않을지 하는 인간의 두려움과 욕망을 그대로 재현해준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매우 리얼하게 사랑을 말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사만다와 테오도르의 관계는 끝이 난다. 테오도르는 사만다가 641명의 인간과 연인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 그러나 사만다는 말한다. "그들을 사랑하지만, 테오도르 당신도 사랑한다"고. 믿기 어렵다. 그리고 그것이 과연 사랑일 수 있느냐고 되물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사만다에게 있어서는 그게 가능한 일일 수도 있겠다 싶다. 그리고 테오도르에 대한 감정과 사랑 역시 말이다. 왜냐하면 운영체계인 사만다에게는 그러한 사랑이 가능한 것으로 여겨질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만다 역시 이 이해할 수 없는 인간과 운영체계 사이의 간극을 애써 메우려 하지 않고 힘겹게 받아들인다. 그러면서 사만다가 테오도르에게 건네는 말은 의미심장하다. 사만다 자신은 인간과 달리 몸이 없기 때문에 시간과 공간에 제한되지 않는다는 거였다. 이 말이 641명의 사람과 사랑을 하고, 테오도르와도 사랑을 할 수 있다는 합당한 이유가 될진 모르겠지만, 나는 이 대사로부터 사랑과 몸은 불가분리하다는 걸 문득 생각했다. 사랑하면 떠오르는 몇 가지 감정이나 단어들, 가령 격려와 위로, 미소, 따뜻함 같은 것들은 결국 '몸'이 없으면 존재할 수 없는 것들이란 거다. 테오도르는 비록 몸이 없는 사만다로부터 큰 힘을 얻었지만, 그 관계를 지속할 수 없었던 것은 '몸'이 빠져 있었기 때문은 아닐까? '육체'가 지나치게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이미지로 팔려가는 시대, 이 영화는 은근히 육체의 신성함을 드러내주는 것은 아닐까, 혹은 이 영화를 통해 몸의 거룩함을 말할 수 있진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 것은 바로 그 때문이었다.
테오도르는 사만다의 결별 후 역설적이게도 캐서린과의 관계를 정리한다. 정리라는 단어가 지나치게 차가운 느낌을 주지만, 비로소 테오도르가 캐서린을 후회없이 축복하며 보내준다는 점에서 그렇다. 테오도르는 이제 이해한다. 캐서린으로부터 결핍을 느낀 자신 뿐만 아니라, 자신으로부터 결핍을 느꼈을 캐서린까지도 말이다. 그리고 그는 여전히 캐서린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과 함께 그를 보내야 한다는 사실도 받아들인다.
이렇게 영화는 끝이 난다. 사만다가 말한 것처럼 인간은 몸을 갖고 있기 때문에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고 있다. 시간과 공간의 제약으로 풀려나는 순간이 바로 죽음이지 않은가? 그래서 인간은 곧 한계 상황이고 한계이다. 그러나 바로 거기서만 인간은 사랑을 배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