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자 수'1'을 보며
어린 시절, 나는 영리한 아이였다.
조금만 시험공부를 하면 1등을 했고,
조금 노력해서 과제를 하면 A플러스를 받았으며,
대학교에서는 그저 조금 공부했을 뿐인데 장학금도 받았다.
노력하면 원하는 걸 쉽게 얻을 수 있었던 영리함이라는 마법 덕분에,
나는 **‘꾸준함’**을 배우지 못했다.
악기를 배우다 그만두었고,
그림을 배우다 그만두었고,
헬스를 다니다 그만두었고,
유튜브를 시작했다가 그만두었다.
그만두었고, 그만두었고… 또 그만두었다.
어릴 적 이야기인 줄 알았겠지만,
이건 중년이 된 이후의 나의 이야기다.
어릴 적 없던 꾸준함이
나이 들어 갑자기 생길 리 없다.
나는 여전히 꾸준하지 못하다.
무언가에 흥미를 가지는 건 빠르다.
호기심이 많은 성격 덕분이다.
그런데 그 흥미가 오래가지 않는다.
나는 흥미의 사람이지, 지속의 사람은 아니었다.
나와 한집에 살고 있는 사람은 나와 정반대다.
그 사람은 영리하진 않지만,
대신 무섭게 꾸준하다.
그 악명 높은 호주의 sickie를,
정말 아파도 안 쓴다.
때때로 그의 단순함이 지루하다고 투덜대지만,
사실 나는 안다.
마음 깊은 곳에서는 그의 한결같음을 우러러보고 있다는 걸.
하늘이 두 쪽 나지 않는 이상
그는 새벽 다섯 시면 저 문을 나선다.
그의 꾸준함과 한결같은 성실함은
가정에서도, 직장에서도
믿고 계획할 수 있는 든든한 기반이 된다.
그에 반해 나는,
조금만 아파도 회사에 가지 않는다.
바로 드러눕는다.
“Sickie 쓰면 되지, 아픈데 왜 가?”
이게 나의 생각이고,
사실 호주에선 대부분 그렇게 하는 게 정상이다.
그래서 나는 아마도
평균의 회사원일지 모른다.
남들과 똑같이 하면서
남들과 다르길 바랄 순 없지 않은가.
그리고…
유튜브를 말아먹은 이유도 사실 이거였다.
처음엔 흥미를 갖고 시작했다.
근데 좀 하다 보니,
내 본전—시간과 열정이 자꾸 눈에 밟혔다.
구독자 수, 좋아요, 댓글…
그런 수치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자
흥미는 빠르게 식었고, 결국 그만두었다.
그런데, 어제
브런치에 드디어 구독자 1호가 생겼다.
숫자 ‘1’.
별 거 아니지만,
내 글을 또 읽고 싶다고 마음먹은 단 한 사람.
나는 그 구독자 1호님을 보며
조용히 다짐해 본다.
이번에는 좀 천천히, 그리고 꾸준하게 가보자.
그렇게 하고 싶다.
그렇게 살아보고 싶다.
영리함보다 꾸준함이 미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