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에게 미안한 마음
30대 때는 결혼하고 싶은 사람과
결혼하지 못해서 상처의 연속이었고
그 상처의 트라우마는 생각보다 오래 갔다
더 이상 상처받는 일은 만들고 싶지않아
만남이 조심스럽고 신중해졌다
주변 가까운 친구들은 하나둘씩 돌싱이 생기고
가정을 유지해도 배우자와의 갈등이나
육아로 힘든 친구들이 많았다
그래서 30대까지만 해도 나는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일이
너무 어렵고 체력적으로 정신적으로
버거운 일이라는 차원에서만 생각했다.
이렇게 가능성이 희박하고 어려운 삶은
아예 시작을 안 하는 게 낫겠다고.
40대 중반이 된
지금은 생각이 달라졌다.
친구들의 아이들이 예쁘게 자라고
남동생이 뒤늦게 아빠가 되며 성숙해지고
조카들이 자라며 기쁨을 주는 모습을 보니
난 죽었다 깨어나도
나를 육아했던 엄마의 마음과 현실,
사랑을 바탕으로 한 희생을
백 분의 일도 느낄 수 없겠다는 생각에
엄마에 대한 미안함이 커진다.
물론 세상 어떤 쾌락과도 바꿀 수 없는
아이가 주는 행복감도 못 느낄 것이다.
내가 열정적으로 일하고 다양한 세상 경험을 했던
시기에 엄마는 두 아이를 낳아 최선을 다해
키웠다. 찬란한 이삼십대를 그렇게 보냈다.
당신께서 그 옛날
부모님의 이혼으로 입은 상처 때문에
아빠가 아무리 힘들게 하고
주변에서 이혼 안 하냐고 할 정도로
어렵게 살 때조차 가정을 지키려고
참고 또 참으셨다.
다른 무엇보다 우선시 되었던 건
가정과 자식을 지키려는
책임감이었다.
애를 안 낳아도 성숙해지는 방법이 많겠지만
생명을 책임지는 일은
세상 일과 비교할 수 없는 책임과 헌신을 요구한다.
아이들이 성인이 되기 전까지는
중간에 쉴 수도 없고 멈출 수도 없다.
나는 평생 그 희생과 책임감을
느끼지 못하는 이상
성숙한 어른이 되는데 한계가 있다.
아무리 많은 책을 읽고
자아성찰을 한다해도
이기심과 자기중심성은 남을 것이다.
옛날 어르신들의
애를 낳아봐야 진짜 어른이 된다는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세상 모든 엄마들은 위대하다.
요즘 다시 보이는 워킹맘들
어릴 땐 자주 깜박하고
애 때문에 자주 지각조퇴하는
아줌마 선배들 뒤치닥거리 하느라
내가 힘든 것만 생각했다.
지금은 퇴근 후에도 못 쉬고 가족들 밥 차리고
새벽부터 일어나 빨래 돌리고 널고
애들 밥 차리고 챙겨 학교 보내고
본인은 머리도 제대로 못 말리고 물이
뚝뚝 떨어지는 채로 급하게 출근하는 엄마들이 보인다. 그래서 워킹맘들은 훨씬 더 존경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