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그런 날이 있다.
아무 일도 잘못된 건 없는데,
모든 게 다 틀어진 것처럼 느껴지는 날.
말 한 마디에 쉽게 상처받고,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이 의미 없어 보이고,
심지어 평소엔 아무렇지 않던 사람들의 시선조차
버겁게 느껴지는 날.
나는 그런 날, 혼자만의 장소를 찾았다.
그곳은 조용한 새벽의 체육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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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들은 잠들어 있는 시간,
나는 체육관에 불을 켰다.
텅 빈 공간에서 들리는 건 내 숨소리뿐.
중량이 바닥에 닿는 소리, 신발 밑창이 바닥을 밀어내는 감각.
그 단순한 소리와 감각이, 복잡한 내 머릿속을 차분하게 정리해줬다.
몸을 움직일수록, 마음이 정리됐다.
생각을 줄이고, 감정을 밀어내고,
오직 동작에만 집중하다 보면
그날 나를 짓누르던 감정들이 조금은 옅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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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들은 카페나 바다를 찾는다지만,
나는 헬스장을 찾았다.
왜냐하면 그곳에서는 누구도 내 감정을 묻지 않았기 때문이다.
체육관은 내게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묵묵히 나를 받아주었다.
‘괜찮냐’고 묻지 않으면서도,
진짜로 괜찮아지게 만드는 곳.
그게 내가 운동을 선택했던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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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을 할수록 느꼈다.
근육이 붙는 만큼,
내 안에 무너졌던 자신감도 조금씩 돌아온다는 것을.
힘이 드는 순간에 밀어붙이는 습관,
끝까지 해보자는 의지,
다시 일어나는 연습.
운동은 단지 몸을 만드는 활동이 아니라,
삶을 단단히 붙잡는 방법이었다.
나는 그 공간에서,
누군가의 응원이 없더라도 스스로를 위로하는 법을 배웠다.
다시 한 발짝 나아가는 법을 익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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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나는,
예전보다 조금은 여유롭게 말하고,
사람을 덜 원망하게 되었고,
자신을 더 믿게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흔들릴 때가 있다.
그럴 땐 예전처럼
조용히 체육관 문을 연다.
어느새 익숙해진 바벨을 잡고, 땀을 흘린다.
무너졌던 날, 내가 향한 곳은
결국 나를 일으켜 세운 곳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그곳에서,
조용히 다시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