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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글파파 May 22. 2021

친구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제 나이 오십. 요즘 사람들은 반 백 살이라고 부릅니다. 많지 않은 나이의 우리 또래들은 한 가정을 책임지기 위해 일터의 전선에서 물불을 가리지 않고 일을 하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절을 보내고 있습니다. 위로는 연로한 부모님이 계시고, 자식들은 고등학생이나 대학생들이 주를 이루기 때문에 유난히 집안에 들어가는 재정적 비용이 많습니다. 다른 것을 생각할 수도 생각할 겨를도 없이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에 그저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엊그제, 친구들 사이의 카톡 메시지에 갑자기 부고가 떴습니다. 모임의 회장을 하는 친구의 메시지였습니다.

"나도 이 얘기 듣고 정신이 없는 데, OO이가 죽었다는구나. 좀 더 확인해 보고 알려줄게."

그 카톡에는 15명의 고등학교 동기 친구들이 있는데 처음엔 아무도 답변을 안 하고 있었습니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그러다가 상황이 거짓이 아닌 것을 알게 되고, 하나둘씩 고인에 대한 글을 남기기 시작하였습니다. 조금 있다가 다시 전체 공지가 올라왔습니다. 가족들이 따로 장례식을 진행하지 않기로 했다는 말이 전달되었습니다.

'아...! 스스로 선택했구나....'

더 마음이 괴로웠습니다.

가까운 고등학교 친구 중에 세상을 떠난 친구가 이번이 3번째입니다. 1987년 고등학교에 입학한 사람들은 한 학급에 70~80명의 반 친구들이 함께 했고, 한 학년에 15반이 있었습니다. 900명이 넘는 동기들을 모두 다 아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고등학교 3년 동안 같은 반을 했던 친구들 중 몇 명은 계속 연락을 주고받으며 친하게 지냅니다.

첫 번째 친구는 대학 졸업 후 직장생활 시작 한지 몇 년 지나지 않은 시점에 교통사고로 사망했습니다. 워낙 활발했고, 입에서 나오는 말이 조금 거칠기는 했어도 그와 안 친한 사람이 없었을 정도로 사교성도 좋았습니다. 대학 졸업 후에 증권과 관련한 공공기관에 들어갔는데, 다른 대기업에 들어간 친구들보다 임금도 높게 잘 받아서 가장 먼저 자기 차를 사 모두의 부러움을 받은 친구였습니다.

돈을 벌면 자기가 원하는 것에 다 쓴다라는 평소의 신조를 얘기하던 친구, 그 친구와 동네에서 만나 가끔 당구도 치던 기억이 있습니다. 제가 결혼하고 집들이 때에도 다른 친구들하고 같이 와서 식사하고 포커 카드게임도 하면서 왁자지껄 분위기를 다 잡았던 친구였습니다. 그러던 그가 저의 집들이를 한 지 몇 개월이 지나지 않아 갑작스러운 부고를 알려왔습니다. 그의 애마였던 검은색 세단 차를 몰고 가다가 전복된 사고를 당한 것이었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친구들 모두 허탈해했습니다. 자기 자신을 참 사랑했던 친구였는데.....

두 번째 친구는 남대문에서 장사하던 가게 사장님이었습니다. 동기 모임에 회장도 하던 친구였습니다. 세상을 열심히 살았고 많은 경험을 한 만큼 다른 친구들에게 많은 위로도 해 주던 친구였습니다. 이 친구의 문제점은 몸이 너무 무거웠던 것입니다. 몸무게로 인해 각종 성인병을 달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가끔 입원했다는 소식을 전하곤 했습니다. 그래도 그때그때 잘 회복해서 나오던 친구였습니다. 한 번은 패혈증으로 인해 오랜 기간 입원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후론 절대 술을 입에 대지 않았습니다. 그 친구가 식사 자리에서 한 말이 있었습니다.

"패혈증 앓았을 때는 진짜 아팠다. 정말 그때 죽는 줄 알았어!"

몇 년 전, 그 패혈증 후유증 때문이었는지 결국 간경화로 세상을 떴습니다. 오랜 기간 좋지 않은 건강 때문에 고생을 하였었는데, 그때마다 "죽을 뻔했다" 고 무용담처럼 웃으면서 우리에게 얘기하던 그 친구의 모습이 생각납니다. 그 말을 할 때에 그는 오늘도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줬던 친구였기 때문입니다.

엊그제 세상을 떠난 친구는 가깝게 지내던 고등학교 동창 중에 번째 부음을 듣게 만들었네요.
이 친구를 고등학교 졸업 후 오랜만에 만난 것은 10년쯤 전이었습니다. 20년 동안 서로의 소식을 몰랐었는데, 고등학교 선생님과의 모임에 불쑥 나타났고 오랜만에 회포를 푼 기억이 있었습니다.

고등학교 때에는 작은 체구의 몸이어서 비교적 앞자리에 앉곤 했는데 오랜만에 보니 180센티가 훌쩍 넘는 건장한 중년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와 오랜만에 인사하면서 한 가지 이상한 점을 발견했습니다. 인사를 하는 데 눈을 마주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자꾸 뒤로 숨는 듯한 행동을 합니다.

나중에 그와 따로 식사도 하고 여러 얘기를 하면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당시 그는 결혼하고 인천에 살면서 자영업을 했는데, 외국의 반도체 장비를 수입해서 한국의 연구기관에 파는 무역업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업을 하게 된 이유 십 수년을 근무한 외국계 회사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으며 퇴사를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여전히 계속 전 직장 사람들이 자신을 괴롭힌다는 생각에 억울함과 분노가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는 친구들을 만나면 늘 "쎈"척을 했습니다. 어느 날은 진짜 몸에 식스팩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눈에는 언제나 허전함이 가득했습니다. 친구들한테 수시로 전화해서 혼잣말만 하고 전화를 끊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술 취한 상태에서 전화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저는 그때마다 따끔하게 야단을 했습니다. 최소한 술 먹고 전화는 하지 말라고 야단을 했습니다. 그러면 한동안 뜸 하다가 다시 전화를 합니다. 어느 날은 괴로워 죽겠다는 소리를 했습니다. 사업도 안되고 삶도 힘들고....

"야! 너는 천주교니까 하느님, 나는 기독교니까 하나님께 기도하자고. 같은 분이니까 너를 위로해 주실 거야. 나는 힘들면 목사님하고 상담을 하는데, 너도 신부님 붙들고 상담해 달라고 해!"

그때마다 알았다고는 했지만 그가 어떻게 했는지는 몰랐습니다. 모임에 오랜만에 나가면 가끔 그 친구 얘기를 하게 되는데 아니나 다를까 저뿐만 아니라 다른 친구들에게도 전화를 하였었나 봅니다. 모두 같은 반응인 것 같았습니다.

카톡에 많은 친구들이, 그때 좀 더 잘해 줄걸 하고 후회하 있습니다. 저 역시 같은 마음니다. 같이 숨 쉬고 있을 때 위로가 되어 주는 것이 친구인데 그러지 못한 안타까움이 남습니다.

그러나 그가 느꼈을 엄청난 고통을 모르고 있었기에 이런 말을 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세상은 그를 밀어내려고만 했던 것 같습니다. 그의 선택은 잘못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이제 편하게 쉬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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