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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글파파 May 26. 2021

다리 꼬지 마

"다리 꼬지 마"


악동뮤지션의 노래 제목이 아니다. 그냥 무심코 다리를 꼬았다가 듣게 된 아내의 말이다.

그렇게 아내의 잔소리가 시작되었다.


사람은 이상한 동물이다. 하지 말라는 것이 있으면 더 하고 싶어 진다. 평소에는 엎드려 저서 자는 것을 잘 못했던 사람인데 요즘 부쩍 늘었다. 그렇게 자고 있는 본인을 발견하고 아내는 금방 달려온다.


"엎드려 자지 말라니까!!"


이건 숫제 명령이다. 그러나 그 소리를 들면 고분고분해지고 만다. 아니 그래야 했다. 금방 꼬았던 다리를 풀었고, 잠결에도 불구하고 엎드려 자던 모습에서 다시 하늘을 향해 바로 눕게 된다.


며칠 전 요추 2번과 3번 사이의 디스크가 파열되었다는 진단을 받게 되었다. 오른 다리 허벅지에 마비 증상이 생긴 것은 며칠 되었는데 혹시나 하는 마음에 찾아간 병원이다. 의사는 이리저리 다리를 올렸다 놨다를 반복하더니 MRI를 찍자고 한다. 그리고 MRI 결과는 디스크 파열로 인한 신경이 눌려진 것이라고 결론이 난 것이다.


다리에 마취 풀린 것 같은 감각이 없어지는 현상은 있으나 아직 힘이 빠지는 단계는 아니라서 수술보다는 우선 주사치료를 진행하기로 했다. 신경주사를 맞고 잠시 회복실에 누워 안정을 취한 뒤에 집으로 왔다. 아내에게 진단 결과에 대해 말을 하니 답답해하는 눈 빛을 발사한다.


그리고 한 마디


"오빠! 이제 자세를 똑바로 해야 해. 이제부터 잔소리를 할 거니까 뭐라 하지 마. 내가 꼭 낫게 하겠어!"


아내는 본인보다 먼저 디스크 수술을 한 경험이 있다. 그것도 무려 2번이나... 그래서 더욱 간절했나 보다. 그렇게 나의 동의도 없이 그냥 선언을 한다. 얼떨결에 대답도 없는 동의를 하고 말았다. 그리고 집안에서의 나의 일거수일투족은 감시당하고 있다. 잘못된 자세가 나오면 바로 칼 같은 불호령이 떨어진다.


열심히 살아가려고 아등바등해도 이렇게 브레이크가 걸리는 것은 어쩔 수 없나 보다.


주변에 기도를 부탁했다. 그런데 어떤 기도를 부탁해야 할지 몰랐다. 수술을 하게 하는 것이 맞을지, 수술을 안 하고 이런 상태로 있다가 호전하게 하는 것이 맞을지 판단이 서질 않았다. 할 수 없다. 그것도 그냥 창조주께 맡기자. 불편하더라도 의사가 시키는 데로 하고, 더 불편해지면 수술하는 거다.


그렇게 편하게 생각하려는 데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먼저 병의 원인을 알게 되어서 감사했다. 그리고 이런 얘기를 하니까 모두 염려와 위로를 아끼지 않아 주어 감사했다. 덕분에 평소에 잘 몰랐던 분들을 알게 되어 그것도 감사하다. 그리고 아내가 고맙다.


아프니까 보이는 것은 감사(感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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