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학교 다닐 때 중간고사나 기말고사를 본 적이 있지요? 시험 볼 때 저는 이런 경험이 있었습니다. 시험 문제를 풀고 난 후 쉬는 시간에 친구들하고 정답을 확인해 보잖아요? 그럴 때 틀린 것을 발견하고 제일 허무했던 순간이 문제의 지문을 거꾸로 읽고 답을 적은 것을 알게 될 때죠. 예를 들면 괄호 안에 들어가는 말과 다른 것은? 아니면 틀린 것은? 이런 식의 질문인데, 아는 문제인데도 불구하고 제일 먼저 눈에 띄는 맞다고 생각하는 것을 재빨리 답지에 적어 넣고 확신에 찬 나머지 다시는 그 문제를 쳐다보지 않습니다. 결과는? 보기 좋게 틀려버리죠.
이것도 유전(遺傳)인가요? 고등학생 아들이 모의고사를 치르고 저녁에 상기된 표정을 하고 있었습니다.
"아들, 오늘 어땠어?"
뭔가 화산이 폭발하기 직전의 위기감을 느낀 제가 먼저 말을 걸어 봅니다.
"아유!.... 너무 억울해요."
드디어 말을 꺼낸 아들. 하지만 목소리에 속상함이 가득합니다.
"뭐가?"
"또 문제 질문을 잘 못 읽어서 틀렸어요."
시험 보기 전에 항상 얘기하죠. '꼭 질문을 잘 읽어봐라.' '질문에 답이 있다.' 하지만 귀에 따갑도록 한 말은 실전에서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아들도 그러고, 저도 그랬습니다. 나중에 시험 답안지를 제출하고 난 뒤에야 겨우 알게 되었죠.
아! 그게 그 질문이었어?
Pixabay로부터 입수된 F1 Digitals님의 이미지 입니다.
최근 허리 디스크 판정을 받고 나니 우울감이 생겼습니다. 뭘 하더라도 힘이 나지 않고 바깥으로 자신 있게 다니지 못하니 의욕도 많이 꺾이게 되었습니다. 다니는 직장에도 원래는 코로나 때문에 재택근무를 주 몇 회씩 하기도 했지만, 요즘은 허리 디스크 핑계로 자주 집에서 업무를 합니다.
집에서 업무를 하지 않을 때는 나쁜 자세를 하지 않기 위해 예전과 달리 소파에 비스듬히 눕지 않고 하늘을 향해 누워 있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그런데 천장을 천천히 살펴보다가 집안에 있는 조명들의 색이 제 각각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거실 한가운데는 하얀색 형광등인데 곳곳에 설치되어 있는 장식등으로 불리는 MR16이 노란색, 하얀색 다르게 달려 있었습니다. 아마 7년 전 이 집에 이사 올 때 가지고 있던 것을 몇 개 달았는데 원래 있던 제품과 다른 색이었던 것을 몰랐었나 봅니다. 사실 집안의 조명을 켤 때마다 알고는 있었는데 그동안 너무 무심했었는지 별로 불편하지 않아서 그랬는지 누구도 관심 갖고 지적하지 않았습니다.
저녁에 아내하고 얘기하면서 형광등을 끄고 전부 MR16 장식등으로 집안을 밝혀보았습니다.
"좀 이상하지 않아?"
"그러네? 왜 이게 지금 보이지?"
"우리가 집을 형광등 색으로만 보니까 세상이 창백해 보이는 것 같은데, 집에 조용히 있을 때만이라도 노란색 불빛으로 집안을 밝히는 것은 어떨까?"
바로 다음날 MR16 장식등을 노란 전구색으로 바꾸고 안방에 있던 스탠드의 조명도 노란색으로 한 뒤에 거실로 가져왔습니다. 그동안 집에는 무조건(!) 형광 등색이었는데, 노란색으로 바꾸니 분위기가 너무 달라지네요.
실제 노란 전구색 조명이 심리적으로도 더 안정된 기분을 가져다준다고 합니다.
아프니까 그제야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Pixabay로부터 입수된 Free-Photos님의 이미지 입니다.
자세를 조금만 바꿔도 또는 평소와 다르게 행동해도 분위기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것이 있습니다. 바쁘게 살다 보니 그냥 지나치는 것도 있고,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예전에 휴대폰 중에 "가로 본능"폰이 있었죠? 저는 그 폰을 만든 분이 참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핸드폰은 귀에 대고 입으로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세로로 길쭉길쭉했는데 그 폰을 통해 시선을 바꾸게 만들었습니다.
그전에 또 다른 가전제품 "명품 TV"라고 있었습니다. 숨겨진 1인치를 찾아주는 바람에(!) 화면 바깥의 장면을 조금 더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실 두 사건은 의미가 있었습니다. 스마트폰의 영상이 가로로 볼 수 있게 바뀌게 되었고, TV 화면의 규격을 깨서 소비자가 더 다양한 화면 크기를 선택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생각하고 하고 싶은 것만 하는 것을 편향(bias)이라고 합니다. 조금 더 넓은 세상은 비단 해외에 나간다고 볼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자세를 바꾸거나 잠시 여유를 갖고 멈춰 서서 뚫어지게 쳐다보기만 해도 편향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계를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왜 평소에는 잘 안 바뀔까요? 꼭 사건이 있어야 사고의 크기를 바꾸는 데 영향을 주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