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해피엔딩~
수개월 전에 어느 유명한 교수님의 새로운 신간 광고를 본 기억으로 도서관에서 혹시 책이 있는지 대여가 가능한지 검색용 컴퓨터에 제목을 넣고 찾아봤더니 도서관에 해당 책이 무려 세 권이나 있음에도 불구하고 모두 "대출 불가 - 대여중"이라는 표시가 되어 있었다. 게다가 3~4명씩 예약이 되어 있어서 무척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도서관을 나온 기억이 있다.
며칠 전, 도서관에 간 김에 다시 그 교수님의 책을 검색해 봤다.
아니 그런데 한 권이 "대출 가능"으로 초록색 표시가 되어있던 것이다. 정말 기쁜 마음에 한 달음에 책꽂이에서 책을 접수(!)하고 그 책 바로 옆에 있던 다른 교수님의 책도 같이 빌리게 되었다. 다른 교수님의 책은 15년이 넘은 오래된 책이었고 책의 표지도 너덜 너덜해져가고 있었다.
책도 장유유서(長幼有序)가 있을까? 읽고 싶던 신간 책을 뒤로하고 오래된 책을 먼저 들고 읽기 시작했다. 별로 기대하지 않았는데 좋은 말씀과 지혜가 가득한 내용으로 3~4시간 천천히 곱씹으며 또 좋은 글귀는 옮겨적으며 읽기를 마무리했다.
그리고 다음날, 설레는 마음으로 신간 책을 들었다. 그런데 마음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책 목차는 마음에 들었지만 하나둘씩 챕터를 읽어 내려가는데 점점 내용이 지루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아마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컸나 보다. 이상하게 책이라는 것이 요즘 100페이지까지 쉬지 않고 읽으면 다음이 너무 궁금해지는데, 그 유명한 교수님의 책은 100페이지 도달하기가 너무 힘들었다.
집에서 1킬로미터쯤 떨어져 있는 도서관에 두 권의 책을 반납하고 이런저런 책들의 제목을 구경하는데, 노후에 하는 재테크와 관련한 주제가 눈에 들어와 훑어보았다. 평소에 재테크에 별 관심이 없었던 사람이 그 내용을 보니 생각보다 쓸모 있는 지식들이 많이 눈에 들어왔다.
순간 깨달았다. 나의 관심과 시선만 생각하고 바라보면 내 눈높이에서 별로 올라가지 않는데, 전혀 엉뚱한 곳에서 지혜를 발견하기도 하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지난번 원하던 책에서 감동을 얻지 못한 분풀이라도 하듯, 전혀 모르는 재테크 분야 책을 그냥 막무가내로 5권 집어 들었다. 읽다 보면 또 나의 삶에 도움이 될 만한 것들을 건져내리라.
세상 살아가면서 계획했던 데로 되는 것은 의외로 많이 없다. 그러나 성격상 계획 없이는 어떤 일도 하려고 하지 않는 부류에게는 단 몇 번의 성공이라도 해내면 그 성취감은 말로 못한다. 반면에 한 번의 실패에도 많은 상처를 입기도 한다.
그러나 나의 관심과 나의 지식수준이 세상 모든 것을 전부 담을 수는 없다. 그렇다면 모르는 분야와 그 분야 전문가의 이야기에도 귀를 기울일 줄 아는 유연함이 필요하다. 의외의 시너지를 통해서 서로 윈윈 하는 결과를 얻기도 하기 때문이다.
과거 필자는 반도체 회사에서 시너지 기획을 주도한 적이 있었다. 반도체는 지금도 메모리와 비메모리 분야로 나누는데, 스마트폰과 같은 기기들이 점점 얇아지고 그 안의 부속품과 기판을 넣을 공간이 부족해지니 어쩔 수 없이 서로 다른 목적을 가진 두 종류의 반도체를 붙일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메모리 전문가와 비메모리 전문가가 모여서 얘기를 하니 처음에는 안 되는 부정적인 이야기만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런데 수많은 시간 동안 서로의 전문 지식과 관심을 공유하다 드디어 한 제품으로 만들어지게 되고, 결과적으로 많은 부품들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을 개발할 수 있게 되었다.
자기 전문분야가 아니더라도 다양한 분야에 넓은 관심을 갖다 보면 좋은 결과로 이어질 때가 있다. 물론 반드시 그런 결과가 나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곳으로부터의 보상에서 얻는 그 기쁨이 훨씬 크다는 것을 우리는 익히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