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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글파파 Apr 14. 2022

가족이 돌아왔다

1. 아내가 돌아왔다.


몇 주 전의 일이다. 아내의 목에 뭐가 걸렸는지 켁켁하고 자꾸 매이는 증세가 며칠째 가라앉지 않았다. 지나가는 우스갯소리로 '코로나 걸린 거 아냐?'하고 건넸는데, 아내는 바로 키트 검사를 해 보곤 아니라고 안심했었다. 그리고 다음날 목감기 약을 처방받기 위해서 동네 내과 병원을 갔고, 이내 카톡으로 문자를 보내주었다.


'확진이래~'


비상이다. 본인은 며칠 뒤 입사 면접이 있었고, 대학생이 된 둘째 아들은 매일 전철을 타고 학교에 등하교를 하는데, 만일 아들도 걸렸다고 하면 지난주 같이 놀던 친구들까지도 연락을 해야 할 판이다. 여러 가지 불길한 생각을 하다가 아니 그것보다 우선 집안의 먹을 것이 있는지 검사를 해 봐야 했다. 온 가족이 코로나 걸리게 되면 여간 불편한 일이 생길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아내는 마스크를 하고 상기된 얼굴을 하고 집에 들어왔다. 오자마자 바로 안방으로 들어갔다. 다행히 안방 바로 옆에 화장실이 있어서 우선 스스로 1차 격리를 한 것이다. 그리고 본인은 아들과 함께 내과에 가서 신속항원검사를 받았다. 갑자기 온 나라에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오미크론으로 인해 내과 앞 복도에는 의자가 5개가 1미터 간격으로 놓여 있었고 의사가 나와서 차례차례 코 속으로 면봉을 밀어 넣고 검사를 실시했다.


내과 검사에서 확진된 사람은 그 자리에서 약국으로 직행하고 약국 밖에 대기하면서 약을 받고 집으로 가는 것이었고, 확진이 아닌 사람들을 의사와 면담을 하고 다른 문제는 없는지 확인하는 절차를 가졌다. 아들과 나는 둘 다 걸리지 않았다.


곧바로 대형마트로 향했다. 우선 햇반 세트와 멀티팩 라면봉지 그리고 여러 가지 즉석 레토르트 국물 식품들을 가득 담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온 남자 두 명은 그날부터 안방에서 들려오는 아내의 지시에 따라 밥을 짓기도 하고 국을 만들기도 하면서 식사를 했다. 아내용 식사는 따로 쟁반에 담아 문 앞에 두면, 스윽 손만 나와서 쟁반을 안으로 들고 가고, 한 시간 뒤에 다시 쟁반 나오기를 매 식사 때마다 반복했다.


일주일 동안 불과 1미터도 안 떨어져 있는 안방과 거실에서 카톡으로 대화하고, 노크로 소통하며 보냈다. 매번 똑같은 반찬으로 먹기 힘들 때면 냉장고와 냉동고 구석구석을 찾아보기도 하고, 포장음식으로 식사를 해결했다. 장모님은 아내의 격리된 일주일 동안 두 번이나 현관문 앞에 국과 반찬을 만들어서 놔두고 가시곤 했다. 그럴 땐 오랜만의 즉석식품에서 해방되는 기쁨을 누리기도 했다. 


아내의 빈자리(?)가 절정으로 가는 때에 드디어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흐르고 아내가 문 밖으로 나왔다. 여전히 얼굴은 붉그스레 상기되어 있었지만, 그래도 표정만은 한층 밝아졌다. 다행히 괴롭히던 목의 통증은 가라앉았고, 특별히 고열이 나지도 않았었기 때문에 참 감사했다.


온 가족이 오랜만에 한 식탁에 둘러앉아 따뜻한 밥을 온전히(!) 먹을 수 있었다. 아내의 빈자리는 컸었다. 그리고 아내는 그 자리에 돌아왔다.



2. 아들이 돌아왔다.


2020년 늦가을 논산 훈련소에 입대했었던 첫째 아들의 전역하는 날이 드디어 왔다. 남들과는 조금 다른 선택을 하여 의경(의무경찰)에 자원입대한 아들이었다. 의경은 다른 군인들보다 휴가도, 외출도 자주 나온다고 좋아했었는데 코로나로 인해서 그런 혜택은 거의 누리지 못했다. 대신 만기제대 한 달을 앞두고 미리 제대(!)를 하게 된 것이다.


불과 한 주 전에 엄마의 코로나 완치 소식을 듣고 아들도 환호했다. 


아들은 집에 오자마자 5키로 무게의 아령을 주문했다. 그리고 아침저녁마다 본인 스마트폰과 연결된 블루투스 스피커를 통해  R&B와 힙합 음악을 집안에 퍼트리고 으샤. 으샤 아령을 들고 내리는 소리가 가득하기 시작했다. 20대부터 몸 관리를 해야 건강한 30대를 맞이할 수 있다고, 50대가 되어 골골한 아빠한테 한 소리를 한다.


조용조용한 성격의 둘째 아들과 달리 첫째는 목소리마저 커서 오랜만에 집안이 들썩들썩 해진다. 동생과 팔씨름을 하기도 하고 서로 으르렁거리며 레슬링의 목조르기도 하면서 노는 것이 성인이 되어서도 초등학생 때의 모습과 똑같다.




아내의 코로나 완치와 아들의 제대 복귀로 인해 온 가족이 완전체가 된 느낌이다. 긴장했던 순간들이 지나고 난 후의 편안함이 다가왔다.


오전에 아들과 집 앞에 산책을 하며 얘기를 나누다가 점심으로 '한솥도시락'이 먹고 싶다고 했다. 의경 순찰 근무 나가면 자주 먹던 도시락이라 질려서 앞으로 절대 먹을 일이 없을 것 같았는데, 제대하니 바로 생각난다고 했다. 집으로 오는 길에 한솥도시락에 들러서 각자 취향의 도시락 메뉴를 주문하고 포장해서 들고 왔다. 


집에 와서 곰곰이 생각해 보니 불과 몇 주전, 아내의 코로나 격리기간에 왜 우리는 '도시락' 먹을 생각을 안 했을까 새삼 느끼게 되었다. 밥솥으로 지은 밥이 설익기도 했고, 매일 똑같은 반찬 때문에 고민을 했었는데 그걸 단번에 날려줄 대안에 대한 생각을 전혀 못했던 것이다. 남자들은 역시 단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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