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 다른 세상에

미래 전쟁 1

by 이글파파


1. 아내


눈을 떴다. 혼란한 잠에서 이제 막 깨어난 듯한 느낌이다. 아니, 마치 온몸이 비 오듯 땀을 흘리며 가위에 눌렸던 지난밤을 겨우 이겨내고 힘들게 눈꺼풀을 억지로 들어 올리는 기분이라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수한 씨, 이제 깨어났어요?”


아직 내 눈에는 주변의 환경으로 인해 눈동자의 초점을 정확히 맞추지 못하고 있지만, 그 정겨운 목소리만은 확실히 기억이 났다. 아내였다.


“끄응.... 여기가 어디지?”

“그저께까지 당신은 병원에 있다가 이틀 전부터 여기 누웠어요. 당신 교통사고 나는 바람에 얼마나 놀랬는지... 다행히 특별히 내상은 없었고, 머리를 약간 부딪쳐서, 1주일간 의식을 못 찾았던 거... 의사가 이틀 후 정도면 의식을 찾을 거라고 얘기하고 병원에서 퇴원을 했었지요.”

얘기를 듣고 있으니 희뿌옇던 초점이 맞춰지면서 주위 환경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뭔가가 이상했다. 내가 알고 있는 집안 모습이 아니다. 그리고, 누워있는 침대에는 요가 깔려 있지 않았다. 마치 가죽 커버를 씌운 것 같은 모양이었는데, 미끄러운 가죽의 감촉임에도 불구하고, 땀이 배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이틀 동안 누워 있었다면 땀이 배어 있을 텐데.


‘머리를 부딪쳤다고?’


뒷머리에 손을 대 봤다. 손가락을 더듬어 보니 후두부쪽에 약간 부어 있는 부분이 있었고, 가운데 부분에는 실로 꿰맸는지 약 2센티가량의 흉이 느껴졌다. 하지만 별로 통증은 없었다.


‘어?’


나는 매일 아침에 샤워를 한다.

지성 머리 덕분에 기름기가 많아 샤워하지 않으면 덕지적지 떡지고는 했기 때문이다. 병원에서부터 1주일 이상을 누워 있었다면... 분명 기름기가 좔좔 흘러야 했는데, 머리카락이 팔랑팔랑 거리는 것이 너무나도 느낌이 좋았다.


‘매일 샤워를 했거나, 머리를 감았을 리가 없을 텐데...’


“당신이 매일 내 머리 손질해 줬어?”

“아니? 당신이 자고 일어나면 머리 신경 쓰인다고 그 침대를 일부러 골랐잖아요?그거 에어서클베드(Air Circle Bed)라고 해서, 잘 때 몸 밖으로 배출된 땀을 모두 말려주는 인체공학 침대라고 너무 좋아했으면서.”

“어.. 그랬었나?”


나는 자존심이 강하다. 특히 기술분야에서는 남들보다 최신 정보를 늘 스크랩했던 사람이었다. 아내가 저렇게 새로운 제품에 대해서 기술적으로 잘 설명한 것을 예전엔 본 적이 없었다.


나는 그런 얘기를 한 기억이 전혀 없었다. 하지만, 더 이상 대꾸하지 않으려고 한다. 혹시 모르는 것은 내가 찾아내면 그만이었다. 침대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나는 원래 잠옷을 잘 안 입고 자는 성격이다. 늘 하얀 팬티만 입으면 잘 잔다. 그런데 내 몸에는 하얀 잠옷도 입혀져 있었다. 그리고 화장실에 가서 거울을 통해 얼굴을 봤다.


‘음... 내 얼굴은 맞는데, 수염은 이틀 정도 자란 것 같은데’

그때부터 나는 집안에 처음 온 사람 마냥 이리저리 둘러보기 시작했다.


‘분명 뭔가 이상한데..’


욕조부터 거실까지 모두 처음 보는 가구와 가전제품들이 배치되어 있다.

나는 국내 굴지의 S그룹의 신사업을 기획하는 일을 하고 있었고 엔지니어 출신의 기획 전문가답게 새로 나온 제품들은 반드시 사서 뜯어보는 버릇이 있었다.


지금 보는 기기들은 분명히 처음 보는 제품들이었지만, 의아심보다는 흥미로웠다. 바로 내 방의 몇몇 기기들의 동작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본래 제품들을 앞뒤로 먼저 살펴보는 버릇이 있었기에, 작은 제품부터 큰 제품까지 찬찬히 살펴봤다. 한참을 들여다보고 있는데 아내의 인기척이 없다.


‘어디 갔지?.. ’


문득 고개를 들어보니, 잠시 전까지 내 주변에 있던 아내는 어딘가 없어졌다. 찾아보니, 거실에서 화상통화를 하고 있었다. 누구와 얘기 중이었는데, 나를 의식해서인지 작은 소리로 얘기를 하는 것을 보면 옆에 내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 않은 모양이다.

‘어... 화상통화를 하고 있네, 근데 TV의 화질이 장난 아니네, 저 사람은 누구지?’


“박사님, 좀 이상해요. 본인이 다루던 기기들을 잘 알아보지 못하는 것 같아요. 내색은 안 하지만, 예전에 모습을 생각해 보면, 마치 처음 보는 기기들을 대하는 표정이에요..”

“내 생각에 아직 좀 더 지켜봐야 할 필요가 있어요. 치료는 끝났지만, 시간을 두고 어느 부분에서 문제가 생겼는지를 살펴보도록 합시다.”

“그럼 저는 문제가 있을 때 연락을 드리면 되나요?”

“그렇게 하세요. 특별한 문제는 없을 겁니다. 그럼 이만.. ”

‘이상하다. 그럼 지금 아내는 나를 죽 지켜보고 있었다는 건데, 왜 내색을 하지 않았지? 그리고, 화면에 나오는 저 사람은 내 주치의였나 보군... 혹시 내가 단기 기억상실증이라도 걸린 걸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문명의 이기라는 것이 이렇게 금방 바뀔 수 있는 걸까?..’


모든 것이 의문투성이다. 지금 주변에 있는 기기들은 내가 알고 있는 상식으로는 10~15년 뒤에나 나올만한 기기들이었다. 몇 가지 예가 그렇다. 전자기기들의 선이 없었다. 그렇다면, 예전부터 논의되고 있는 와이어리스 파워가 현실이 되었다는 건가?


“여보, 지금 몇 년도지?”

“왜 그래? 새삼스럽게... 2023년이쟎아.”

‘헉, 진짜 15년 뒤쟎아... 난 2008년에 있었는데.. 어떻게 된 거지? 아냐... 아까 거울 속의 내 모습은 분명 더 이상 나이를 먹지 않았는데...’


‘그러고 보니, 이제 이해가 가는군, 지금 집안의 모든 물건들은 2008년도에 봤던 물건들 대비 훨씬 진보가 되어 있어. 내가 살던 집안 구조의 모습은 맞지만... 제품들이 이렇게 다르니, 정말 헷갈리는 군. 음 지금의 기기들을 연구해 봐도 평생 시간을 보내도 되겠다.’

“아무래도 내가 머리를 부딪혀서 그런지 단기 기억상실증? 뭐 그런 거 있잖아... 그게 있나 봐... 지금 모든 기기들이 생소해. 그리고, 내가 뭘 하고 있던 사람인지도 모르겠고.”


우선 아내가 안심할 수 있도록 생각 끝에 단기 기억상실증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다행히 환자로 보는 듯한 걱정의 눈빛은 약간 줄어들어가는 것 같았다.


“그래? 정말 이상하네... 하긴 아까 당신 주치의 박사도 좀 더 기다려보자고 했거든? 근데 단기 기억상실증이라도 요즘 의학기술로는 다 치료가 되는데.. 그럼.. 우선 내가 앨범을 가져올게 그걸 보면 좀 기억이 날까? 내일 같이 병원하고 화상 통화해 보자고”

“어... 그래...”


잠시 뒤 아내는 내 앞에 있는 테이블에 “앨범!”하고 소리를 냈다. 테이블의 찻잔이 놓여있던 자리 주변으로 갑자기 컴퓨터 화면처럼 바뀌더니, 약 10인치짜리 디지털액자가 나타났다.

그러더니, “수한 씨의 사진으로!” 하니, 내 사진이 죽 폴더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음 시간대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

“무슨 말이지?”

“보고싶은 기간이나 시간대를 얘기하거나, 장소를 얘기하거나, 뭐... 우리 연애기간을 얘기하면 알아서 소팅(Sorting)을 해 주잖아.”

“아하... 흠 그럼 우선 내 일대기부터 보면 좋겠는데? 1970년도부터 하지 뭐.”

“응?? 당신은 1990년생인데”

“뭐라고?”

“이제 33살인데, 갑자기 없던 세상에서 나온 사람처럼 왜 그래?”


‘아.... 뭐가 뭔지 모르겠네... 아니.. 우선 침착하게 넘겨보자...’


“참... 말이 헛 나왔나 보네. 그래 내가 태어난 때부터 1년에 몇 번 있는 하이라이트 위주로 보자고.”


역시 순간을 모면하고 아내가 어떻게 하는지 유심히 살펴봤다.

곧이어 화면 속 액자에 있던 사진들이 동영상과 함께 간간히 섞여 나오면서 내 일대기가 나오고 있었다. 나는 부모님의 모습과, 학창 시절과, 내 아내의 모습을 처음 만났던 순간이 나올 때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때의 감동이 마치 지금인 마냥..


그리고 나의 직업 부분이 나오면서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내 기억의 나는 분명 S그룹의 기획팀에서 일하고 있었고 나름대로 촉망받는 직원이었다. 그러나, 액자의 기록에 있는 나는 혁신 전문 컨설턴트로 활동하고 있었다. 전 세계를 돌며, 혁신기업들에게 강연하는 모습을 보니, 꽤 유명한 것 같았다. 처음엔 비행기를 타고 다니다가, 온라인 교육을 하고, 이제는 화상강연을 하는 모습이 나타났다. 기술의 발전에 따라 강연 방법이 바뀌고 있는 것이 특이했다.


“어! 내가 혁신전문가였었나 보군.”

“당신은 정말 이상하네.. 하긴 기억력이 회복되면 정상으로 돌아오겠지. 응. 그래 유명한 컬럼니시트이기도 하고..”


그때부터 아내는 나와 연애했던 얘기, 직장생활 얘기, 내가 겪었던 성공스토리 등을 사진을 열어보면서 일일이 설명을 해 줬다. 재잘재잘 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있노라니 자꾸 나와 동떨어진 느낌을 갖게 해 주는 것 같다.


“어... 에바, 내가 좀 피곤한데? 잠깐 방에 가서 쉬고 있을게”

“그래 당신 좀 쉬는 게 좋겠어, 나는 식사 오더를 하고 있을게.. 당신 좋아하는 메뉴로 몇 가지 오더 하려고. 이제 정상적인 식사를 해야지 몸안의 운동이 원활해지지.. “

“고마워.”


그렇게 얼버무리고, 방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아까 그 침대에 몸을 뉘었다.

침대의 아래에서는 미세한 공기가 몸 안을 살짝 걸쳐가며 움직이고 있었고, 덕분에 몸의 땀 성분은 저절로 증발되는 것 같았다. 베개처럼 약간 튀어나온 부분은 머리카락 사이사이에 정말 느껴지지 않을 정도의 미세한 바람이 나오게 하였고, 향기로운 바람을 통한 세정을 하는지... 상쾌함을 계속 유지하도록 조정이 되는 것을 느꼈다.


‘정말 세상은 요지경이군. 나는 정말 이 세상 사람이 맞나? 왜 이렇게 생소한 기기들이 많은 거지? 내 기억 속의 세계와 지금의 세계는 너무나 다른데? 도대체 어디서부터 꼬인 거지?‘


머릿속은 정말로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뭔가 스치는 느낌은 있었다. 지금의 세계의 연도가 2023년이 맞다면 내 기억 속에 존재하는 15년 전에 일부 논의가 되었던 기술들과 지금의 기술이 약간의 조작법만 빼고 분명 이어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도 생생한 내 직장생활과 일상생활이 어느 순간부터 정말로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때부터 내 머리는 부서질 것처럼 아픔이 느껴졌다.


‘ 아~, 부딪힌 머리가 아직 완쾌되지 않은 모양인데? 약간 부어 있는 그 자리가 갑자기 통증이 심해.’


그리곤 다시 잠이 들었다. 아내가 깨우기 전까지...




2. 새로운 세상


아내가 일부러 나를 일으켜 세웠다. 깨어난 후 며칠간 집에 있는 전자기기들의 작동법을 익히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던 나에게 쇼핑을 하자고 제안한다.


가까이 있는 마트에 가자고 해서 따라나섰다. 거리에 나서니 이미 하이브리드카들이 대중화되어 있었고, 앞뒤 차 간격을 센서로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사고가 날 위험이 적었다.


“이렇게 안전장치가 확실한데 나는 어떻게 교통사고가 난거지?”

“응, 당신은 지나가는 강아지를 구한다고 갑자기 뛰어드는 바람에 정속으로 달리던 차가 급브레이크를 밟았던 거야. 사실 차하고 부딪친 게 아니고, 당신이 피하다가 뒤로 넘어져 머리를 부딪친 거야.”


곧이어 마트에 도착한 아내는 장바구니가 아닌, 카드리더기 같은 것을 들고 들어갔다. 그리곤 필요한 물건들을 체크를 하니, 원산지 정보와 가격 등 각종 상품정보가 리더기에 나타났다.


‘RFID!, 이게 이렇게 자연스럽게 현실로 나타나는구나.’


옷의 경우, 지난번 구매했던 기록을 기준으로 아내의 사이즈가 나왔고, 아내는 그냥 사이즈만 체크하고 몇 개 옷을 관심 리스트에만 저장하고 쇼핑을 끝냈다. 우리 부부가 출구 쪽에 나오자, 식품류의 경우 장바구니에 준비되어 인계를 기다리고 있었고, 아내에게 물어보니, 이미 필요한 제품들의 경우 계산은 미리 끝났고, 집에 가서 옷만 잘 맞춰보면 된다고 한다.


집에 온 아내는 재빨리 대형 스크린 Wall에 입력된 자신의 사이즈와 리더기에 입력된 옷의 사이즈를 마치 3D 화면 속에 있는 마네킹 마냥 이리저리 입혀봤다. 직접 입어보지 않아도 뒤태까지 꼼꼼히 확인한 후에야, 아내는 여러 제품 중 한 개를 골랐다. 이 계산 완료된 신호는 쇼핑 마트에 바로 전달되어, 택배로 배달이 된다고 한다.


집에서 화상 통화를 할 때 나의 주치의라고 하는 사람은 한국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분명히 영어로 얘기하고 있었지만, 스크린에 붙어 있는 스피커에서 나오는 소리는 한국어로 들리고 있었다. 여러 가지를 매일매일 체크하는 주치의를 보면서, 내가 마치 시험용 인간인 듯 한 착각이 들기도 했지만, 상당히 꼼꼼히 나를 챙겨주는 것이 고마웠다.


“여보, 밖에서 외국인을 만나도 이렇게 자동으로 통역이 되나?”

“그럼, 이게 트랜스 폰(Trans Phone)이라는 것인데 한번 귀에 꼽아서 써보면 쉽게 알 수 있지.”


아내가 전해준 작은 보청기처럼 생긴 것을 한쪽 귀에 끼우고 일부러 영어방송을 원어 그대로 듣고 있으니, 그 사람의 언어가 내 귀에서 자동으로 한국어로 통역이 되고 있었다. 분명, 다른 쪽 귀에는 영어로 들렸지만, 이어폰이 끼워져 있는 귀로는 한국어가 분명했다. 또한 증폭기가 달려 있는지, 오히려 더 또렷한 목소리로 나에게 말이 전달되어 왔다.


지금의 생활의 모습은 분명 나를 혼란스럽게 하고 있었다.


‘이게 모두 현실이면...’


세상의 발전된 기술들을 보노라면, 예전에 꿈꿔왔던 그런 세상에 내가 있는 것은 확실한데, 어딘가 모르게 나는 지금 내 모습이 누군가에게 감시당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분명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순간부터가 지금 이 순간하고의 연결고리인데,

아.... 왜 그 생각만 하면 두통이 나는 거지?‘


며칠째 같은 생각을 반복하고 있었다.

처음엔 아내를 의심해 봤었지만, 너무나도 순수하고, 평범한 사람이었기에 절대 나를 속일 것 같은 그런 일은 없다고 생각했다.


단 한 사람... 며칠 간격으로 나와 대화하고 있는 주치의라는 그 사람이 조금 의심이 되긴 했다. 너무 꼼꼼하게 나를 체크한다는 것이 예전에 의사를 상대해 봤던 나의 희미한 기억과는 너무나도 달랐기 때문이다.




3. 이상한 전화


집안 스크린에 나오는 인터넷을 통해 최신 뉴스와 원하는 프로를 볼 수 있었다. 항상 스크린에는 “M"이라는 로고가 화면 왼쪽에 박혀있었다. 처음엔 너무나도 당연했지만, 그게 나의 과거 기억을 찾게 될 단서가 될 줄을 몰랐다.


분명 아내는 내가 머리를 부딪쳤다고, 그리고 단기 기억상실이라는 표현을 써 가면서 별 거리낌 없이 내가 하는 과거의 이상한(?) 표현들을 받아주고 있었다.


집안 거실엔 70인치급 되는 Wall 스크린이 있다. 이 스크린은 내가 말을 하면 자동으로 켜지고 꺼지는 음성인식 시스템이 장착되어 있고, 평소에는 벽면과 같은 색깔로, 또는 원하는 사이즈의 액자로 장식이 가능한 멀티 기능형 스크린이었다.


‘마치 카멜레온 같군... 그래 예전에 어느 TV 광고에서 컬러가 변하는 것을 표현하면서 카멜레온을 썼던 기억이 나... 예전 광고가 실제 이렇게 변할 줄은...’


소파에서 스크린을 보다 원하는 화면이나 채널을 돌리고 싶으면, 예전에 TV에 달려있던 리모트 컨트롤러 대신, 리모트 뷰를 통해 다른 곳으로 바꿀 수 있다. 약 10인치 정도의 화면에 손가락 두 개로 사진을 늘렸다 줄였다 할 수 도 있고, 원하는 공개 사이트에 접속을 시도할 수도 있었다.


예전에 사용했던 기억을 더듬어 내 이멜을 확인하는 순간, 나는 계속되는 “M"이라는 로고를 쓰며 나한테 메시지를 보내는 어떤 기록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메시지 안에는 어떤 문자도, 그림도 없었다. 흔히 말하는 스팸이라고 생각하고 어느 순간 그것을 지웠던 것이다. 그런데, 그 “M"이 어느 순간부터 화면의 맨 왼쪽 위에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그게 눈에 띄지 않았던 탓에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 어느 순간에 그 로고가 신경에 거슬리기 시작했다.

“여보, 저 M 이 뭘 뜻하지? “

“응? 글쎄, 저거 예전에 없던 건데... 뭐 없어지겠죠.”


와이프는 저녁거리용 밀 키트를 찾아본다고, 혼자 시장에 나갔고, 나는 혼자 스크린을 보면서 이런저런 생각에 잠겼다. 그러곤 호기심에 “M"을 눌러봤다.


“엇!!~”


순간 집안에 정전이 들었고, 모든 전자 기계 제품들은 동작하지 않았다.


‘아니 전기 없는 세상이 될 수 도 있다는 것을 생각도 못해봤는걸.. 난감하군 요즘에도 정전 때 쓰는 양초가 있으려나?’


어둑어둑해지는 저녁시간이었기에, 외부에서 들어오는 가로등에서 나오는 불빛으로만 집안의 윤곽을 확인해 볼 수 있었다. 순간 당황했지만, 집안 이곳저곳을 찬찬히 뒤져봤다.


‘삐리 리리~’


전혀 디지털음과 다른 과거 어떤 전화기에서 나는 소리 같은 것이 어디에선가 들려오고 있었다.

한참을 소리를 쫓아가 본 나는 이게 침대 아래에서 나오는 소리인 것을 확인했다.


‘어? 이거 예전에 쓰던 모토로라 2G 휴대전화 모델인데?’


순간 전화기를 들고 상대를 확인하려는 순간.


“김수한 씨, 당신은 그냥 내 말을 듣기만 하세요”


아니 무슨 영화도 아니고... 조금 당황했지만, 아무 말도 못 하고 그대로 수화기를 들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톰 스콧이라고 합니다.”

“근데 왜 이런 식으로 나한테 전화를 하는 거요?”

“나한테 말하지 말고 그냥 듣고만 있으세요, 더 이상 얘기하면 그냥 끊어버리겠습니다. 당신한테 어떤 불이익이 가도 책임을 지지 못합니다.”

“아니.. 당신은 날 협·”

“쉬잇, 그건 아니오, 나는 협박을 하는 것이 아니오. 잘 들으시오, 앞으로 10분 뒤엔 당신 집에 전기가 들어올 것이오. 그동안 내가 하는 말을 잘 들으시오. 이미 중앙 전기 통제실에 이곳이 정전이라는 소식이 갔고, 당신 부인에게도 휴대전화로 자동 전달되었소. 아마 이쪽으로 긴급히 돌아오고 있는 중일 거요.”


잠시 숨을 고른 그는 말을 계속 이었다..


“당신은 우리 조직에 없어서는 안 될 인물이오. 내가 전기를 끊은 이유는 외부 도청 가능성으로부터 잠시 떨어뜨리려고 그런 것이오. 조만간 내가 당신 앞에 나타나겠소. 이런 식으로 아날로그 전화로 당신과 통화하는 것은 이게 마지막일 것이오.”


그는 외국사람이었다. 하지만, 통역 프로그램을 사용하지 않고 바로 한국말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억양이 약간 서툴렀지만, 그래도 정말 훌륭히 한국말을 하고 있었다.


“어떤 메시지를 통해 당신을 만날 것인지는 지금 얘기하지 않겠소. 우리는 당신이 약간의 메시지를 통해서도 충분히 분위기를 인식할 수 있는 사람인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오. 그럼 나의 소개는 이 정도로 하고, 부인께는 전혀 내색하지 마시오. 이 전화기는 그대로 무용지물이 될 것이니까 그냥 그 자리에 그대로 두는 것이 좋겠소.”


그리곤 아무 소리가 나지 않았다.

조금 있다 마치 어디 컴퓨터의 팬이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하나씩 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나는 시키는 데로, 휴대폰을 침대 밑에 다시 놓아두고 스크린 앞으로 다가왔다. 스크린이 다시 켜졌고, 중앙컴퓨터를 통해 집안의 곳곳의 전자기기들을 체크하고 있었다. 스크린의 보고에 의하면 집 앞의 갑작스러운 과부하로 순간정전이 들고 있음을 보고하고 있었고, 조금 있다 전기회사 직원 한 명이 화상전화를 통해 사과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었다.


순간 나는 지금까지 뭔가 억눌려 있던 의문점이 머리를 계속 감싸고 있었다. 예전엔 이런 생각을 할 때면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지만, 이제 이것도 익숙해졌는지 약간의 두통 증세만 빼곤 아무렇지도 않았다.

조금 있다 아내가 들어왔다.


“여보, 괜찮은 거야? 휴대전화에 갑자기 비상벨이 울리고, 집안의 전화도 안되고 너무 놀라서 급히 돌아왔는데..”

“으응... 조금 놀랬지 뭐.. 근데 집안 가전제품들엔 아무 없다고 연락이 왔고... 안심해도 될 것 같아.”

“정말 다행이네, 난 혹시 당신이 뭘 잘 못 건드려서 불이라도 난 것은 아닌지 놀랬거든. 근데 정말 이상하네 단순 정전이면 곳곳의 이상 유무가 내 휴대폰 대시보드에 상황이 뜨는데 전혀 그렇지도 않았거든?”

“엉.. 내가 좀 피곤해서.. 방에서 쉴게.. 저녁은 안 먹어도 될 것 같아.”

“그래, 들어가서 쉬어. 난 여기서 드라마 보고 있을게.”


내 방에 들어온 나는 안마의자에 앉아 혼란의 머릿속을 정리하고 있었다.


‘톰 스콧, 톰 스콧, 톰 스콧... 미국 사람? 톰... 스콧... 모두 너무 흔한 이름이라 아는 사람인 것 같기도 하고... 도대체 누굴까? 그리고, 전화의 의미는 뭘까?’


생각하면 할수록 미궁에 빠져들었다. 분명 내 기억 단절된 어느 순간부터 그 사람이 존재했을 것 같은 생각이 들긴 하는데 거기까지였다.


‘아까 한 얘기가 아날로그, 도청... 아 그러고 보니 그 모토로라 폰 휴대전화 아날로그 시절 폰이구만, 거의 무전기 수준의... 생각보다 슬림해지긴 했지만, 그때 그 모델이 틀림없어. 그럼 오늘 정전이 되면서 디지털 전파는 모두 해제되었었던 것인가? 그러고 보니, 통역 프로그램도 없이 나한테 한국어로 얘기한 것을 보면 그런 것 같기도 하군.’

도통 알 수 없는 미스터리로 넘어가는 중이었다.


‘근데 왜 나를 도청하지? 나는 비즈니스 컨설턴트였다고 들었는데, 내가 무슨 회사의 기밀을 훔쳤었나? 분명 나는 S그룹의 기획 전문가였는데, 사고 후 깨어나 보니 비즈니스 컨설턴트라고 말한 것은 아내였는데, 아니 그럼 아내가 나한테 거짓말을 하는 것인가? 아, 참 내가 뭘 하는 거지? 왜 아내를 의심하는 거야... 이거 정말 답답하군, 나한테 미칠 그 무엇이 정말 뭘까?’


안마의자의 모터 소리를 들으며, 살짝 눈감고 고민하고 있는 동안 아내는 잠깐 방에 물 한잔과 간단한 과자류를 놓고 나갔지만,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내는 내가 잠을 자는 줄 알았던지 더 이상 묻지 않고 살짝 밖으로 나갔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있었고 나는 현 직장인 “IIC 컨설턴트”의 사장인 Lee 씨로부터 앞으로의 할 일을 지시받고 1주일 뒤 첫 출근을 하기로 했다.


“김이사, 자네가 없는 동안 일이 많이 쌓였네 그려”

“허허... 이제 곧 출근하도록 하겠습니다.”

“아니 어차피 출근은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게 아니니, 그냥 나와서 나와 차나 함께 하지. 그동안 회사 돌아간 얘기도 좀 하고 말이야.”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럼 일주일 뒤에 뵙도록 하지요”

“그러세, 암튼 다시 복귀하게 돼서 정말 다행이야.”

“감사합니다.”


내가 일을 했었던 안 했었던, Lee 사장은 상당히 친절히 나를 대해 주었고, 사고 이후 하루에 한 번씩 꼭 안부를 전해 주었다. 아내의 말 대로 꽤 유명한 컨설턴트였던지, 회사에서 놓치지 않으려는 기색이 만연했고, 어떤 불편한 점도 없도록 생각보다 과분한 배려도 아끼지 않았다.


오후에, 답답한 마음도 달랠 겸, 출근했던 회사의 지리도 익힐 겸 자동차를 끌고 밖으로 나왔다. 바깥의 공기는 비록 나무들에 스치는 산들바람이기보다는 달리는 자동차의 속도에 의한 빌딩 사이 도심의 바람이었지만 일부러 창을 활짝 열고 달렸다.


자동항법장치를 통해서 목적지까지 갈 수도 있겠지만, 나의 목적은 혹시 중간에라도 흥미가 생기는 곳이 있을 수 있으므로 수동으로 운전을 하고 있었다. 그래도 아무래 액셀을 밟더라도 기준 속도 이상 밟을 수 없는 것과 앞차와의 거리는 무조건 지켜지는 것을 보고 어떤 큰 스릴을 느낄 수는 없는 운전이었다.


도심에서 잠깐 외곽으로 벗어나려는 순간, 앞의 흰 차가 계속 나와 같이 약 10여분을 같은 주행선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도 약 10여 미터의 간격이 있었기에 크게 의심을 하고 있지 않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계속 눈에 뭔가 들어오는 게 있었는데, 그게 번호판이었다.


바로 “M"이었던 것이다.

순간 나는 당황하기 시작했다.




4. M의 정체


앞의 M 번호판을 붙이고 있던 차는 천천히 나와 거리를 좁히더니 곧 신호를 보내오기 시작했다.


깜빡이 등으로 보내는 신호는 분명히 같은 길을 가자는 메시지였다. 어느덧 도심과 도심을 있는 메트로 터널을 지나가고 있었다. 터널의 속에는 고장이 나거나, 응급상황이 일어나는 것을 대비하기 위해 길옆에 약간의 공간을 마련해 둔 곳이 있었다.


흰 차는 그쪽에 세우고, 내가 몰고 있는 차를 유도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한 중년 백인 남성이 내렸고, 약간의 웃음을 흘리며 나의 문 앞에 다가왔다.


“수한 씨?”


그는 어눌한 한국말로 나를 확인하였다.


“어.. 네.. 당신이 스콧?”

“맞아요. 반갑습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갑작스러운 모습으로 저를 보게 되신 거죠?”

“죄송합니다. 여기는 우선 위성으로 잡히지 않는 곳입니다. 그리고, 터널 속의 카메라는 저희가 약간 조작을 해 두었기 때문에 당신과 비교적 프리 하게 얘기를 나눌 수 있습니다.”

“우리? 그럼 당신은 개인적으로 저를 만나러 온 것이 아닌가요?”

“예, 저희는 머신(Machine)이라는 네트워크 조직에 있습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소, 나를 어떻게 알게 되었으며, 당신은 왜 나한테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이오?”

“아, 먼저 우리 조직을 소개하지요. 저희는 세계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어둠에 세력에 대항해서 세워진 다국적 조직이오. 대외적으로는 기술경영 컨설팅의 역할을 하고 있지만, 사실은 거대한 조직에 대항하고 있소. 사실, 그들은 각국 정부와도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몇 가지 단서 몇 개로는 대항이 불가합니다.”


‘뭔가 불길하다... 국제 조직은 뭐고, 정부기관, 어둠의 세력?? 무슨 영화도 아니고... 아니, 내가 지금 2023년에 있다는 것 자체가 영화 같은 일이니 우선 믿어 볼 수밖에...’


“계속 얘기하시오”

“그런데 수한 씨 당신은 명칼럼니스트로 대중적 인기를 얻고 있는 몇 안 되는 컨설턴트요, 계속적으로 당신과의 접촉을 시도했지만, 어떤 정보가 누출되었던지 그 계획이 실패하고 말았었소. 당신은 이미 매일 국제조직의 감시를 당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하게 되었소.”


‘나를 감시하는 것이 누구지? 그 화상 속의 주치의?’


“그래서 우연을 가장하기 위해 조금 위험한 상황을 만들었고, 당신이 잠시 기절한 사이에 우리가 몇 가지 장치를 해 두었던 것이오”

“아니 그럼, 내가 기절한 것이 당신들의 장난으로 된 거란 말이요?”

“아.. 그것은 정말로 사과하겠소, 근데 기절을 몇 주간 계속할 정도로 체력이 약할 사람인 생각은 정말 못했소"




5. 옛 기억


M에 소속된 사람은 'ALBA CASIO' 브랜드의 중저가 시계를 차고 있었다. 계속 나와의 얘기를 나누는 동안 시간을 체크하느라 몇 번이나 시계를 쳐다보는 동안 나도 그의 왼 손목의 시계가 신경 쓰일 수밖에 없었고, 시계의 상표도 유심히 바라보았다.


5분 뒤 그는 나에게 다른 장소를 적은 쪽지를 주면서 헤어질 수밖에 없음을 알려주었다.


'맨해튼 시블링 오피스 지하 1층, Spring이라는 술집'


장소는 맨해튼에 있는 작은 빌딩 이름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수많은 생각을 하였지만, 내 머릿속 기억은 마치 영화 속에 광고 한 장면을 살짝 삽입한 것처럼(Subliminal Advertising) 나의 잠재의식 속에 생각날 듯 말 듯 답답한 마음이 계속 짓누르고 있었다.

집에 다시 돌아온 나는 주치의의 진단을 받았다. 아까의 사건을 겪으면서 주치의와의 대화가 좀 더 거북해졌다.


‘이것은 마치 감시받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별 무리 없다는 진단을 받은 뒤 드디어 나만의 시간을 가지게 되어 조용히 옛 기억을 되살려 보기로 하였다.

‘내가 뛰어난 컨설턴트였다면... 분명히 메모하는 습관이나 일을 하는데 계획을 세우는 치밀함이 있을 것 같아.’


우선 내가 해야 할 것은 살짝살짝 비치는 기억 조각들을 모아 보는 것이었다. 그것은 마치 로드무비 영화 속에서 살짝 지나가는 가게의 간판 또는 벽에 있는 낙서를 기억해 내는 것과 같았다.

하나 생각해서 노트에 적은 것이....


‘강단에서 연설하는 장면’

‘어느 회의실에서 논쟁하는 모습’

‘혼자 차를 타고 운전하는 모습’


그런데, 그 장면들이 마치 흑백사진 마냥 상당히 예스럽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왜일까?

순간 갑작스럽게 계속 되풀이되는 장면이 떠 계속 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운전하는 내 모습, 운전하는 내 모습....’


그렇다. 오전에 내가 운전하던 그런 차 속 내부구조는 분명 과거 내가 운전하던 차의 구조는 아니었다. 엑셀과 브레이크, 그리고 클러치와 수동식 기어... 나는 지금 시대에 맞지 않는, 진보되지 않은 오래된 옛 차를 타고 있었다.


답답한 것은, 내가 이런 기억을 하고 있어도 컴퓨터로 정보를 찾아 흔적을 남긴다면 분명히 누군가에게 내 생활이 감시당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고민 끝에 내 기억이 담긴 것을 암호화하기로 했다.


문제는 어떻게 암호화하여야 할까?




6. 암 호


다음날 나는 IIC(International Intellectual Company)에 출근했다. 출근해서 자리에 앉자마자, Lee 사장은 자기 자리에 나를 호출했고 차와 함께 담소를 나누었다.


" 김이사, 왜? 좀 더 쉬지 않고? “

“사장님, 사실은 현재 제가 약간의 기억상실에 있습니다.

매일, Tele-clinic으로 원격 진료를 받고 있는 이유가 그런 것입니다. “

“허허, 그 정도의 사고로 인해 잠시 기억상실에 걸릴 수 있는 경우는 있을 수 있지 않은가? 우선 자네는 다른 것들은 기억하는 것 같아 보이고..”

“아.. 예, 곧 회복되리라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장님, 제게 지금까지의 제가 해왔던 업무현황 및 과거의 제 기록을 살펴보면 조금이라도 기억 회복에 도움이 될 듯합니다. 그렇게 허락해 주십시오.”

“어, 그거야 당연한 거 아닌가? 김이사가 그것을 보면 얼마나 당신이 훌륭한 인재였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게 될 것이네, 즉시 기록들을 전달하라고 이르겠네”

“아, 아닙니다. 그냥 제가 기록실에 가서 살펴볼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컴퓨터에 있는 것과 함께 문서보관실도 찾아보겠습니다.”

“그거야.. 내가 허락하지 않아도 김이사 당신 혼자 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는걸? 좋도록 하게”

“감사합니다”


그 즉시 나는 내 사무실로 와서 컴퓨터 내의 내 기록을 살펴보았다. 역시 예상대로 내가 기대하는 수준의 기록들이었다. 나는 약간의 프로그램 작업을 통해 계속 컴퓨터를 열어보게 만들어 두고, 문서실로 향했다.


다행히, 문서보관실에는 큰 보안시설이 없었다. 아니, 아무도 관심이 없는 듯했다.

오랜만에 책들이 잔뜩 있는 책장의 모습과 먼지들을 보면서 새로운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이 모든 것들이 내가 찾아봐야 할 과제들인가?’


찬찬히 서고의 분류표를 살펴보면서, 책들의 상태를 보고 있자니, 수북이 쌓여 있는 먼지 속에서 손을 댄 듯한 흔적이 있는 책들이 곳곳에 있음을 알게 되었다.


‘수십 년이 넘은 이 문서고에 누가 자주 드나들었단 말인가?’


손자국이 있던 책 한 권을 들고, 살살 페이지를 넘기는 순간 몇 가지 낯익은 기호들이 표시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곳곳의 V자 표시는 무언가 가리키는 것이다. 이건 암호다!’


몇 개의 말을 조합해 보았다... 그러나, 아무리 해도 그 답은 찾지 못했다.

한번, 두 번, 세 번, 계속 생각해 보았다.

그러다, 한 권을 집어 들고 집으로 향했다.

컴퓨터를 보는 것보다, 책을 읽고 싶다는 핑계를 대며 아내를 안심시켰다. 어지럼증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던 아내는 나의 말에 긍정적인 입장을 표명했고, 나는 그때부터 어떻게 암호를 풀어 볼 수 있을지에 대해서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일주일이 그렇게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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