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그녀는 아들의 졸업식장에 있었다. 직장의 무게를 잠시 내려놓고, 이제 막 성인이 된 아들의 앞날을 축복하며 보낸 꿈같은 휴가였다. 하지만 오늘 아침, 사무실 문을 열자마자 마주한 건 그 따스한 여운을 단칼에 베어버리는 B팀장의 목소리였다.
"어제 전화 민원이 얼마나 많았는지 알아? 옆 팀에서도 한소리 하더라고."
그녀는 말문이 막혔다. 정당하게 연가를 쓰고 자리를 비운 팀원에게, 그것도 일생에 한 번뿐인 자식의 졸업식을 치르고 온 동료에게 건네는 첫마디가 '민원'과 '눈치'라니. 연가보상비를 포기해 가며 겨우 낸 휴식의 대가는 이토록 비릿했다.
B팀장은 '개인 볼일'을 '출장'이라 불렀다. 사무실을 비우고 사적인 용무를 보면서도 그는 당당히 출장비를 달고, 연가보상비를 꽉 채워 챙겼다. 그녀를 포함한 팀원 모두는 그 사실을 알면서도 묵인했다. 조직이라는 거대한 톱니바퀴 속에서 조용히 굴러가기 위해, 그들은 눈을 감고 입을 닫는 법을 먼저 배웠으니까.
떠나간 A과장은 달랐다. 그는 그런 B팀장을 집요하게 갈구며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연가보상비를 쟁취했다. A과장은 그녀를 약자로 보고 괴롭혔던 악질적인 빌런이었지만, 어쩌면 모두를 대신해 B팀장의 기만을 응징하던 '괴물 잡는 괴물'이었을지도 모른다. A과장이 떠난 지금, 그 응징의 방패가 사라진 자리에 남겨진 건 온전히 또 다른 빌런...
조직에는 '빌런 총량의 법칙'이 존재한다. 한 명의 빌런이 떠나면 평화가 올 것 같지만, 곧 그 자리는 또 다른 빌런으로 채워지거나 숨어있던 빌런이 본색을 드러낸다.
A과장이 그녀를 괴롭혔던 건 그녀가 약해 보여서이기도 했지만, 어쩌면 B팀장과의 싸움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가장 쉬운 배출구가 필요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제 A과장이 사라진 자리, B팀장의 화살은 거침없이 그녀를 향한다. 빌런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그저 형태를 바꿀 뿐이다.
서구의 격언 중에 이런 말이 있다. "포커 판에서 30분 동안 호구가 누구인지 찾지 못했다면, 바로 당신이 그 호구다." 조직도 마찬가지다. 누가 빌런인지 모르겠다면 내가 빌런일 확률이 높지만, 누가 '희생양'인지 명확히 보인다면 그건 대개 성실하고 조용히 자기 자리를 지키는 사람들이다. B팀장의 사적인 출장을 묵인하고, 연가보상비를 포기하면서까지 인간다운 도리를 다하려는 그녀 같은 사람들 말이다.
B팀장의 짜증 섞인 핀잔을 뒤로하고 그녀는 모니터를 켠다. 속이 상하지만, 어제 찍은 아들의 졸업식 사진을 한 번 더 들여다본다.
비겁하게 출장을 달면서 연가보상비를 챙기는 삶과, 떳떳하게 연가를 쓰고 아들의 손을 잡았던 삶. 어느 쪽이 더 공직자다운지, 아니 인간다운지는 굳이 따져 묻지 않기로 했다. 빌런들이 판치는 조직 생리 속에서도 그녀가 지켜야 할 것은 B팀장의 기분이 아니라, 바로 자기 삶의 당당함이기 때문이다.
A과장이 떠난 자리에 또 다른 빌런이 기다리고 있을지라도, 그녀는 자신의 길을 뚜벅뚜벅 걸어갈 것이다. 괴물이 되지 않고도 이 숲을 지나갈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증명하고 싶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