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한 고수의 등장, 폭풍 전야의 사무실

by 루비하루


​폭풍 전야처럼 고요하던 사무실에 서늘한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퇴직을 앞두고 연가를 쓰며 '점심 자유'를 선포했던 과장님이, 부임 일주일 만에 본색을 드러내신 것이다.

​"다음 주 월요일, 팀장 회의 소집합니다. 현안 업무 보고 준비하세요."

​단순한 보고회라고 하기엔 시점이 묘하다. 직원들에게는 한없이 너그러웠던 분이, 조직의 허리인 팀장들을 한자리에 불러 모았다. 이건 단순한 업무 파악이 아니다. 소문으로만 듣던 조직의 생태계를 직접 확인해 보겠다는, 일종의 '무심한 고수의 등장, 폭풍 전야의 사무실팀장 테스트'다.

​과장님은 회의에서 아주 원론적인 이야기를 꺼내셨다.

"앞으로 출장은 반드시 2인 1조로 가세요."

​안전과 효율을 위한 당연한 말처럼 들리지만, 사무실 공기는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특히 우리 팀장의 표정이 묘하게 일그러졌다. 누군가는 독단적으로 행동하고, 누군가는 그 뒤에 숨어있던 우리 팀의 고질적인 문제를 정조준한 발언이었기 때문이다.

​과장님은 정말 아무것도 몰라서 원론적인 이야기를 하시는 걸까, 아니면 이미 모든 것을 간파하고 '모른 척' 칼을 휘두르시는 걸까. 후자라면 과장님은 보통 만만한 분이 아니다. 퇴직을 앞둔 이의 여유 뒤에는, 수십 년간 조직에서 살아남은 고수의 날카로운 촉이 숨어 있었다.

우리 팀장은 본인 타깃이 되었다는 걸 모르는 걸까, 아니면 애써 부정하고 있는 걸까. 지켜보는 이들의 눈에는 선명하게 보이는 그 균열을, 당사자만 외면하고 있는 모습이 씁쓸하면서도 흥미롭다.

앞으로의 6개월은 이제 단순히 '편안한 시간'이 아닐 것 같다.

무심한 고수인 과장님이 우리 조직의 곪은 부분을 어떻게 도려내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그녀가 준비 중인 '추가 공상 신청 프로젝트'가 어떤 탄력을 받게 될지.

​이제 관전 포인트가 생겼다.

과장님, 당신은 아군입니까, 아니면 그저 지나가는 폭풍입니까?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 이 폭풍 속에서도 그녀의 길을 묵묵히 기록해 나갈 뿐이다.


일요일 연재
이전 12화6개월의 방학, 우리 부서에 '여름'이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