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 프렌드 만들지 마!

딸이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부터 나는 계속 말해왔다.

by 연담

딸이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부터

나는 계속 말해왔다.

"베스트 프렌드를 만들지 마."


친구라는 이름의 상처들

내가 그렇게 말한 이유는 단순했다.

친구가 주는 영향이 적지 않음을 몸소 경험하며 자랐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의 나는 친구 때문에 많이 울었다.

어제까지 가장 친했던 친구가 갑자기 다른 아이와 손을 잡고 가버렸을 때의 그 배신감.

비밀을 털어놓았던 친구가 그 비밀을 다른 아이들에게 퍼뜨렸을 때의 그 상처.

그런 경험들이 쌓이면서 나는 깨달았다.

친구라는 존재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아니, 오히려 때로는 독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그래서 딸에게는 다른 길을 제시하고 싶었다.


5학년이 된 딸의 마음

하지만 5학년이 된 우리 딸은 베스트 프렌드를 만들고 싶어 한다.

"엄마, 다른 애들은 다 베스트 프렌드가 있는데 나만 없어."

"나도 누군가와 특별한 친구가 되고 싶어."

그런 말을 할 때마다 마음 한편이 불편했다.

내가 너무 성급하게 내 경험을 딸에게 강요한 건 아닐까?


학습된 거리두기

오랜 기간 나에게 학습이 된 터라, 딸은 마음으로는 원하지만 실행에 옮기지는 못하고 있다.

친구들과 어울리긴 하지만 적당한 선을 유지한다.

너무 가까워지면 어색해한다.

누군가 자신에게 다가오려 하면 한 발짝 뒤로 물러선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복잡한 마음이 들었다.

내가 원했던 대로 딸이 친구 관계에서 상처받지 않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딸이 진정한 우정의 기쁨도 경험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침의 작은 소동

그런 딸에게 얼마 전 이런 일이 있었다.

아침에 갑자기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 친구가 학교에 같이 가자고 한 것이다.

아직 학교 갈 준비를 마무리하지 못한 상황에서 딸이 부산을 떨기 시작했다.

친구가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에 서둘러 가방을 챙기고, 머리도 대충 묶고, 아침도 제대로 먹지 못한 채 허겁지겁 움직였다.

그런 딸에게 나는 차분히 말했다.

"이미 네가 같이 가겠다고 했으니 오늘은 같이 가. 하지만 다음부터는 각자 가는 게 좋겠다."

그리고 딸의 전화를 건네준 남편에게도 얘기했다.

아침에 울리는 아이 전화는 그냥 전달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


설명하지 않아도 아는 마음

그 이유를 내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딸은 충분히 느꼈을 것이다.

친구에게 연락이 와서 기쁜 마음도 잠시, 조바심으로 제대로 준비하지 못하고 헐레벌떡 집을 나서는 내내 불편함이 올라왔을 것이다.

평소 여유롭게 준비하던 아침 루틴이 깨지면서 느꼈을 하루 종일의 어수선함.

누군가의 스케줄에 맞춰야 한다는 부담감.

딸은 그날 학교에서 돌아와 말했다. "엄마 말이 맞는 것 같아. 같이 가니까 너무 바빴어."


경험으로 배우는 지혜

나는 일일이 설명하지 않았다.

"친구 때문에 네 페이스가 깨진다", "다른 사람에게 맞추느라 네가 힘들어진다" 같은 말들을.

대신 딸이 직접 경험하도록 했다.

그리고 딸은 스스로 느꼈다. 나의 말이 잔소리가 아니라 경험에서 우러나온 조언이었다는 것을.

때로는 백 번의 설명보다 한 번의 경험이 더 큰 깨달음을 준다.


때로는 힘들어하는 딸

물론 딸도 친구 관계로 힘들어하는 경우가 있다.

"오늘 ○○이가 나를 무시했어." "△△이가 내 말을 안 들어줬어."

그럴 때마다 나는 습관적으로 말한다.

"그래서 엄마가 베스트 프렌드 만들지 말라고 한거야."

하지만 다행인 것은 딸이 깊게 빠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상처를 받긴 하지만 금세 회복한다.

친구 때문에 밤새 울거나 식음을 전폐하는 일은 없다.


내 상처와 딸의 인생

명상을 하면서 문득 깨달았다.

내가 딸에게 "베스트 프렌드를 만들지 마라"라고 한 것은,

사실 딸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내가 친구 때문에 상처받았으니, 딸도 그럴 거라고 미리 차단해 버린 것은 아닐까?

내 경험이 딸의 경험과 반드시 같을 거라고 단정해버린 것은 아닐까?


균형을 찾아가는 중

지금의 딸을 보면 나름 균형을 잘 잡고 있는 것 같다.

친구들과 즐겁게 어울리면서도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다.

상처를 받아도 그 안에서 깊이 빠져나오지 못하는 일은 없다.

어쩌면 이것이 내가 원했던 모습일지도 모른다.

친구의 소중함을 알면서도, 친구가 전부는 아니라는 것을 아는 아이.


엄마의 반성

하지만 가끔은 미안하다.

혹시 내가 딸에게서 진정한 우정의 기쁨을 빼앗은 것은 아닐까?

혹시 딸이 더 풍부한 인간관계를 경험할 기회를 막은 것은 아닐까?

내 상처가 딸의 가능성을 제한하는 것은 아닐까?


지켜보며 배우기

지금은 그냥 지켜보기로 했다.

딸이 스스로 친구 관계의 방법을 찾아가도록.

내 경험이 아닌 딸만의 경험을 쌓아가도록.

때로는 상처받을 수도 있고, 때로는 기쁨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그것이 딸만의 인생이니까.

그리고 나는 옆에서 조용히 지켜보며, 딸이 정말 힘들어할 때만 따뜻하게 안아주기로 했다.

내 경험이 정답은 아니니까.


모든 사람이 친구는 아니다

그리고 나는 딸에게 또 다른 것도 가르쳤다.

"같은 학교, 같은 반이라고 해서 모두 친구로 받아들이지 마라."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은 가끔 놀란다.

너무 차갑다고, 아이에게 그런 걸 가르치면 안 된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확신한다.

모든 사람과 잘 지내는 건 모순이다.


착한 아이 콤플렉스

어린 시절 나는 '착한 아이'가 되려고 노력했다.

모든 친구들과 잘 지내려고 애썼다.

누군가 나를 싫어하면 그 이유를 찾아 고치려고 했다.

그 결과는 어땠을까?

나는 내가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아이가 되었다.

모든 사람에게 맞추다 보니 정작 내 모습은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노력했는데도 모든 사람이 나를 좋아하지는 않았다.


선택적 관계의 지혜

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사람이 있다.

나와 잘 맞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나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사람도 있고, 나의 에너지를 빼앗아가는 사람도 있다.

모든 사람과 친구가 될 필요는 없다.

아니, 모든 사람과 친구가 되려고 하면 오히려 진짜 좋은 관계를 놓칠 수 있다.


딸에게 전하고 싶은 것

그래서 나는 딸에게 말한다.

"네가 편안하게 느끼는 사람들과 가까이 지내라."

"너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사람들을 소중히 여겨라."

"너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과는 적당한 거리를 두어라."

물론 예의는 지켜야 한다. 모든 사람을 존중해야 한다.

하지만 모든 사람과 깊은 관계를 맺을 필요는 없다.

아직은 받아들이기 어렵겠지만, 나는 우리 딸을 믿는다.


경계의 필요성

건강한 관계를 위해서는 경계가 필요하다.

누군가 계속 나를 불편하게 만든다면, 그 사람과는 거리를 두는 것이 맞다.

누군가 나의 선의를 이용한다면, 그 관계를 재정리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것이 이기적인 것이 아니다.

이것이 나를 지키는 방법이다.


진짜 친구를 찾기 위해

모든 사람과 친구가 되려고 하면 진짜 친구를 놓칠 수 있다.

에너지를 분산시키지 말고, 정말 소중한 몇 명의 사람들과 깊이 있는 관계를 만들어가는 것.

그것이 더 의미 있는 일이다.

딸에게는 그런 지혜를 전해주고 싶다.

모든 사람의 사랑을 받으려 하지 말고, 진짜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을 알아보는 눈을 기르라고.

아이의 인생은 아이의 것이라는 걸 오늘도 배운다.

자식은 스승이다.

A visually appealing, vibrant and colorful landscape painting in the style of impressionism, featuring a sun-drenched field of wildflowers under a bright blue sky, with rolling hills in the background..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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