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나의 첫 번째 전쟁
1986년, 나는 여섯 살이었다.
세상 어딘가에선 진짜 전쟁이 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내게 전쟁은 우리 집 밥상에서 시작됐다. 총성 대신 아버지의 고함이, 포탄 대신 깨진 그릇이 날아다니는 곳. 그곳이 나의 첫 번째 전장이었다.
밥상 위에 쾅쾅 울리는 수저 소리는 언제나 예고 없이 찾아오는 폭풍의 신호였다.
그 소리가 들리면 우리 가족은 숨을 죽이고, 시간은 멈춘다.
아버지의 눈빛 하나에 우리의 운명이 결정되는 순간.
"1986년에 무슨 전쟁이 났다고, 전쟁을 겪은 아이라 표현하느냐?" 누군가는 그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분명히 전쟁을 겪고 있는 아이였다. 내 기억이 시작된 1986년부터, 어쩌면 엄마 뱃속에 있을 때부터.
아버지는 늘 밥을 먹는 도중에 화를 냈다. 언제 날벼락이 떨어질지 모르는 긴장감에 나는 밥을 제대로 씹을 수 없었다. 항상 허겁지겁 삼켰고, 그래서 자주 체했다. 어른이 된 지금도 식사 중 불안이 찾아오면 목이 조여 온다. 몸은 기억한다.
'밥상을 엎으면 잘살지 못한다'는 옛말이 있다. 틀린 말이 아니었다. 아버지가 밥상을 엎는 순간 밥과 국, 반찬이 벽과 바닥에 흩뿌려졌고, 그건 단지 밥상이 아닌 우리 삶이 엎어진 순간이었다.
수저와 그릇이 바닥에 닿는 소리, 엄마의 흐느낌, 우리 세 남매의 굳은 얼굴. 그 모든 것이 하나의 그림처럼 내 기억에 새겨져 있다. 이상하게도 그 순간들은 언제나 슬로우 모션으로 기억된다. 깨진 그릇 사이로 흘러가는 국물처럼, 우리의 시간도 천천히 무너져 내렸다.
밤이 되면 언니와 나는 이불속에서 서로를 껴안았다. 우리의 작은 요새를 만들어, 귀를 막고 눈을 감았다. 문 밖에서는 아버지의 술 취한 고함과 엄마의 울음소리가 뒤엉켰다.
"제발 오늘 밤은 조용히 지나가기를." 매일 밤 같은 기도를 반복했다.
아버지는 엄마가 맞고 또 맞다가 지쳐 집을 나갈 때마다, 엄마의 옷을 태웠다. 그 탄 냄새는 단순한 옷의 소각이 아니었다. 그것은 우리 가족의 희망이 재가 되는 의식이었다. 타오르는 불꽃 속에서 나는 아버지의 눈빛을 보았다. 그 안에는 분노만큼이나 깊은 상처가 있었다.
어쩌면 우리 모두가 희생자였을지도 모른다. 아버지조차도. 그러나 여섯 살의 나에게 그런 이해는 불가능했다. 나에게 그는 그저 우리 집의 폭군이었고, 내가 가진 공포의 원천이었다.
침묵의 폐허 속에서
아버지는 늘 깊은 밤이 되어서야 집에 들어왔다. 소주에 절은 그의 발걸음 소리가 현관에 닿는 순간부터, 우리 집의 시간은 멈추었다.
우리가 어렵게 빠져든 얕은 잠은 허물어지고, 방문 틈새로 스며드는 아버지의 목소리가 이불속까지 파고들었다. 손으로 귀를 막아도 소용없었다. 그의 고함은 벽을 뚫고, 이불을 관통해 우리의 뼈까지 울리는 진동이었다.
"이년이 뭐가 잘났다고!" "그때는 왜 그랬어, 왜!" 아버지는 엄마의 과거를 파헤쳤다. 우리도 몰랐던, 알 필요도 없었던 엄마의 옛날이야기들. 그 이야기들이 무슨 뜻인지도 모른 채, 언니와 나는 귀를 틀어막았다. 울음을 삼키며 서로의 손을 꼭 잡았다.
무서워도, 울고 싶어도 울면 안 됐다. 한 번은 참지 못하고 우리가 "아빠 그만하세요, 잘못했어요"라며 빌면서 울었더니, 아버지의 분노가 우리에게로 향했다.
"이 개 같은 년들아, 자빠져 자!" 우리가 무엇을 잘못했다고 울면서 빌었을까? 그저 평화를 바랐을 뿐인데. 그 고함에 우리는 이불속에서 작은 공처럼 몸을 말았고, 그 밤은 언제나 너무도 길었다.
다음 날 아침, 학교에 가기 위해 일어나면 방 안은 늘 쑥대밭이었다. 깨진 유리잔 조각들이 바닥에 흩어져 있고, 칼이 벽에 박힌 자국, 담배꽁초가 산처럼 쌓인 재떨이, 그리고 비워진 소주병들. 이 모든 것들이 밤사이 벌어진 폭풍의 증거였다. 마치 누군가 이곳에서 전쟁을 치른 것처럼.
방 안은 담배 냄새와 알코올 냄새로 숨 쉬기조차 버거웠다. 그 냄새는 단순한 냄새가 아니었다. 그것은 공포와 절망의 냄새였다. 우리는 창문을 열어 환기시키려 했지만, 그 냄새는 이미 우리 옷과 머리카락, 심지어 피부 속까지 스며들어 있었다.
이런 아침을 몇 번이고, 아니 몇 십 번이고 반복해 겪으면서 우리는 점점 무기력해졌다. 더 이상 놀라지도, 두려워하지도 않게 되었다. 그저 평범한 일상처럼 받아들이며 학교 가방을 챙겼다.
"오늘은 무슨 옷을 입지?" 그런 평범한 고민을 하는 척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에서는 언제든 도망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이미 마음은 도망쳐 있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깨진 그릇 사이를 조심스레 걸어 학교로 향했다. 선생님이 "집에서 무슨 일 있니?"라고 물어도 "아니요, 없어요"라고 대답했다. 그것이 우리가 배운 첫 번째 거짓말이었다.
그리고 지금, 아버지는 80세가 다 되어간다. 세월이 그의 몸은 휘게 했을지언정, 그의 분노만큼은 여전히 젊다. 여전히 화가 나면 "다 불 찔러 버리고 끝내겠다"라고 고함친다. 몇십 년이 흘렀는데도, 그 언어는 한 치도 달라지지 않았다.
가끔은 그가 지켜낸 단 하나의 일관성이 바로 그 분노라는 사실이 아이러니하게 느껴진다. 여전히 파괴로만 감정을 표현하고, 분노로만 존재를 증명한다. 마치 그것만이 자신을 드러내는 유일한 방법인 것처럼.
아버지는 술이 깬 맨 정신일 때면 항상 말이 없었다. 본인에게 꼭 필요한 말만, 그것도 짧고 명령하듯 툭 던졌다. "밥." "신문." "양말." 우리에게 말을 건넨 적도, 눈을 마주친 적도 거의 없었다. 그의 침묵은 또 다른 형태의 폭력이었다. 우리는 그의 자식이었지만, 그의 언어 안에는 단 한 번도 존재한 적이 없었다. 그저 벽이나 가구처럼 집 안의 일부였을 뿐.
따뜻한 말 한마디? 그 흔한 말조차, 우리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고생했다", "괜찮아", "사랑한다." 그런 말들은 텔레비전 속 드라마에서나 존재하는 줄 알았다. 다른 아이들이 "아빠가 이렇게 말해줬어"라고 할 때면,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그들의 이야기는 마치 외국어처럼 들렸다.
어른이 된 지금, 나는 안다. 상처 입은 사람이 또 다른 상처를 만들어낸다는 것을. 하지만 그 이해가 어린 시절의 나를 위로하지는 못한다. 그 작은 아이는 여전히 이불속에서 떨고 있다.
전쟁은 끝났다. 그러나 그 흔적은 내 안에 남아있다. 때로는 식당에서 들리는 그릇 부딪히는 소리에, 때로는 누군가의 갑작스러운 분노에 나는 다시 그 여섯 살의 아이가 된다.
이것이 내가 배운 첫 번째 교훈이다. 전쟁은 멀리서 오는 것이 아니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시작된다는 것. 그리고 그 가해자는 이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이름, '부모'라는 이름으로 늘 우리 곁에 있었다.
어쩌면 나는 아직도 그를 모르는지도 모른다. 그의 분노 뒤에, 그의 침묵 속에 진짜 아버지가 있었는지, 아니면 그저 분노와 침묵만이 그의 전부였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