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전 부치는 소리는 마치 비 내리는 소리 같다. 그 소리를 한참 듣고 난 후 먹는 파전은 비 내리는 날의 우울함을 한 번에 날려버릴 만큼 감칠맛이다.
지천명(知天命)을 넘긴 지금은 파전을 먹으면서도 예전에는 떠오르지 않던 일들이 내 마음에 여러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30년도 더 오래전 내가 대학에 들어가고 한 해를 넘겼을 때 일이다.
고향을 떠나 먼 서울에서 대학을 다닐 때였다. 한 해 동안 하숙 겸 머물던 친척 집을 나와 내가 다니던 학교와 가까운 다른 대학을 다니며 근처에서 하숙하던 외사촌 형과 방을 같이 쓰게 되었다. 내가 다니는 학교 앞은 아니었지만 가까운 거리였고 어릴 때부터 자주 교류하고 살갑게 지내던 형이었다. 그래서인지 친척 집에 머물 때보다 공간적으로는 불편했지만, 마음은 더 편하고 즐거운 하숙 생활이었다. 거기다 형은 사람 좋아하고 술 좋아하는 성격이었고 나 또한 그런 형의 성향이 싫지 않아 종종 형의 친구나 선후배와의 술자리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합석하곤 했었다.
그날도 비가 내리는 날이었다. 학교에서 돌아와 저녁을 먹기 전에 잠시 쉬고 있는데 하숙집 전화벨이 울리더니 이내 주인아주머니가 날 부르셨다. 외사촌 형이었다. 학교 근처 파전집이니 와서 형 친구들과 술 한잔하면서 맛있는 해물파전을 먹자는 것이었다.
찾아간 곳은 형이 다니는 학교에서 가까운 곳이었지만 개업한 지는 오래되지 않은 파전집이었다. 들어서니 좁은 공간에 5개 정도의 테이블에 모두 손님들이 앉아서 술잔을 주거니 받거니 하고 있었다. 안쪽으로 보이는 주방엔 내 어머니 또래로 보이는 아주머니가 열심히 음식을 만들고 있었고 키 큰 여자분은 주문도 받고 음식도 나르면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파전집이지만 파전보다는 술이 더 많이 팔리는 곳이었다. 나는 저녁 식사 전이라 술보다는 파전에 먼저 손이 갔다. 오랜만에 먹어보는 해물파전이었다. 멀리 바닷가 남쪽 고향에서 많이 먹던 해물파전. 바지락, 홍합, 오징어와 파가 함께 곁들여져 맛있게 구워진 파전이었다. 어머니가 해주시던 파전의 맛이었다. 파전으로 어느 정도 배가 차고 난 후 이내 술잔에 손이 갔다. 파전엔 막걸리라고 했나. 대학 와서 지긋지긋하게 마셨던 막걸리였지만 오랜만에 고향 맛 나는 해물파전과 함께 마시는 막걸리는 평소보다 더 달콤하고 시원했다. 술이 어느 정도 오르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형이 갑자기 무언가 떠올랐는지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너 혹시 고등학교 동창 중에 김 아무개를 아니?” 같은 반이 된 적은 없었지만 듣던 이름이었고 얼굴도 금방 떠올랐다. “친한 동창은 아니지만 서로 낯은 익은 친구야. 형은 그 친구를 어떻게 알아?” 형은 미소를 지으면서 “걔 이 학교에 다녀. 그리고 저기 주방에 계신 사장님이 그 친구 어머님이고 주문받는 여자분이 누나야. 내가 이 집 단골이거든. 친해지다 보니 그런 얘기들을 해주시네. 세 식구뿐이라서 다들 서울 올라와 파전집 하면서 뒷바라지하고 계신대. 두 분 모두 니 친구를 아주 자랑스러워하시더라.”
고등학교 다닐 때도 얼굴만 알고 있을 뿐 말은 나눠보지 않아서 그 친구에 대해서 내가 아는 건 학교 공부 열심히 하던 모범생이라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그날 그 자리에서 외사촌 형을 통해 듣고 보았던 광경은 그 친구에 대한 그 가족들의 무한한 사랑과 함께 나로서는 부담스럽다고 할 정도의 엄청난 기대를 함께 느끼게 했다.
시간이 흘러 내 나이가 30대에 접어든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친지들 모임에서 마침 외사촌 형과 같이 마주 앉아 식사하게 되었다. 오래전 그때처럼 불쑥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너 혹시 예전에 우리 학교 앞 파전집 아들 김 아무개 어떻게 지내는지 아니?” 10년 전 그때가 떠올랐다. “아니, 전혀” 그 이후로는 전혀 생각지 못했고 교류도 없던 동창이라 내 대답은 짧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문득 궁금증이 일어났다. “형은 들은 얘기가 있어?” 사촌 형이 내 궁금증을 풀어주고 싶은 듯 이어서 말했다. “난 졸업하고도 친구들 모임이 많아 자주 그 집에 가곤 했었어. 가면 가끔 네 동창 근황도 듣곤 했지. 졸업하고 일류 대기업에 취직해서 잘 지낸다고 사장님 자랑이 대단하셨지. 근대 얼마 전에 사장님이 장사 그만두고 딸이랑 고향으로 내려가셨어. 근대 그 이유가 자기와 결혼할 여자를 사장님이 못마땅해했다고 연락을 끊어버렸다는 거야. 뒷바라지한다고 엄마랑 누나가 서울까지 와서 고생했는데 여자 때문에 가족을 외면해 버린 거야.” 형을 통해 들은 그의 근황은 다소 충격적이었다. 그에게로 향했던 어머님의 사랑과 기대가 완전히 무너져 버렸을 거란 생각에 나는 씁쓸함과 큰 서글픔을 느꼈다.
그로부터 또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 아내가 부쳐주는 맛있는 해물파전과 막걸리 한잔이 오래전 그때 일들을 떠올리게 한다. 지금 그는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20여 년 전 큰 상심을 안고 고향으로 돌아간 그의 어머님은 또 어떤 마음으로 노년을 보내고 계실까? 내 나이도 지금은 그 때 열심히 파전을 부치시던 그 어머님의 나이가 되었다. 그리고 그 어머님의 마음이 되어본다. 자식을 키우면서 부모는 인생의 희노애락(喜怒哀樂)을 맛본다. 자식이 노(怒)와 애(哀)를 맛보게 한다고 해서 부모님의 사랑이 실망과 절망으로 바뀌지는 않을 것이리라. 부모가 되어보지 못했을 때 내가 느꼈던 씁쓸함과 서글픔이 부모가 된 지금의 나에게는 솟아나지 않는다. 자신이 정성을 들였던 아들이 행복하게 살기만을 바라고 고향으로 가셨으리라. 지금 그 어머님의 아름다운 사랑의 마음이 느껴진다. 분명히 그랬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