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중에 퇴근 후 자취방에 들어가기 전까지, 재래시장을 거닐며 입맛 당기는 식당을 골라 가며 저녁을 사 먹었다. 식사 후, 각종 과일, 야채, 견과류, 치즈 등 태아에게 필요한 8대 영양소도 고루 사서 장바구니에 넣었다.
하루 팔천 원 이상은 음식값이었다. 당시 교사인 내 월급은 오십이삼만 원 남짓, 음식값으로만 절반 이상 썼다.
“그는 멀리 있으니까 나 혼자서라도 태아를 건강하게 만들자. 먹고 죽은 귀신은 때깔도 좋다니까, 태아한테 영양가 있게, 먹고 싶은 것 다 먹어야지.”
자취방에 들어서면 왠지 서글퍼졌다. 가끔 눈물이 났다. 신혼이지만 신혼 같지 않은, 임신했지만 혼자인 그 시간들이 느리게만 느껴졌다.
태아 일기를 썼다. 태아가 들을 수 있도록 헤드폰을 배에 놓고 조용한 음악을 들려주거나, 얼마만큼 자랐을까 산부인과 전문 서적을 보며 태아와 얘기를 나눠보기도 했다.
아빠가 어떤 생각을 할까를 태아에게 아빠 목소리로 말을 걸어 보기도 했다. 매월 태아의 발달 속도를 따라 그에 맞는 이야기를 태아에게 해주었다. 태아 뇌 발달에 맞는 음식을 먹었다. 그에 맞는 운동도 꾸준히 했다.
바닷가 차가운 물이 무척 맑은 상태인데 샤르르르 물결이 가볍게 일렁인다. 그 물결 속으로 들어가니 다양한 모양의 작은 조개들이 가로로는 이 삼 미터 정도, 세로로는 육 칠 십 센티미터 정도로 아주 정갈하고 규칙적으로 줄을 지어 놓여 있었다.
그중에 세로로 늘어선 중간 정도 줄에 아주 선명한 흰색 조개 두 개가 위, 아래로 눈에 띄었다. 잠시 후 물결이 샤르르르 일면서 사라졌다.
이것을 다음날 엄마한테 얘기했더니, 내가 태몽을 꾼 거란다. 그리고 맑은 물과 흰색은 아들을 의미하며, 위, 아래 두 개의 흰색 조개는 앞으로 아들 둘은 낳을 것 같다고 엄마는 빙그레 웃으셨다.
임신 오 개월 즈음, 꿈속에서 냉장고 문을 여니 흰 달걀 몇 개가 문 안쪽에 가지런히 보였다.
유난히 하이얀 큰 알을 꺼내서 프라이팬에 탁! 하고 깨는 순간, 거기서 선명한 하~얀색 커다란 오리가 목덜미를 휘휘 좌우로 저으면서 날개를 푸드덕거리더니 눈 깜빡할 사이에 사라졌다. 또 다른 태몽이었다.
엄마는 그 오리가 흰 색인 것도 아들일 거라는 징조라고 재밌다면서 또 깔깔 웃으셨다.
떨어져 사는 유학생 남편에게 국제전화를 주당 두 번씩 하다시피 할 때였다. 박사과정 연구에 온 정신이 매몰되어 있어서인지, 그는 이런 태몽 얘기를 들으면, 한쪽 귀로 듣고 한쪽 귀로 흘리는 것 같았다.
아, 여기서 중요한 것은, 1990년대 당시 산부인과 의사는 산모가 출산하는 날까지 임산부나 가족에게 태아의 성별을 절대 비밀로 해야 하는 법이 있었다.
아들 선호 사상이 그 당시에도 강하게 남아있어서, 딸이면 강제로 유산시키고 아들이면 낳는 심각한 사회적 문제 때문에 남녀 성비가 116.5~115.3 정도였다.
그해 7월 하순, 미국에서 잠시 귀국한 남편은 표정이 밝지 않았다. 우선 미국 박사과정의 논문을 쓰는 것도 있지만, 가난한 유학생인데 아이도 태어날 것이고, 박사과정 이후 자신의 진로와 거취를 결정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문제가 놓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임신한 내 배가 많이 불러 있는 것도 별로 그렇게 신기하지 않은 것 같았다. 항상 수염이 덥수룩 한데다 표정까지 밝지 않아서 수심이 가득해 보였다.
약 3주가 채 되기도 전인 8월 ㅇㅇ일, 그는 미국으로 떠났다. 지도교수가 있는 연구 실험실을 오래 비울 수가 없다고 했다.
그해 10월 29일에 나는 출산 예정이라서, 산부인과 진료를 9월 하순 받으러, 남산만 하게 부른 배를 한 채 혼자서 병원에 갔다.
산부인과 진료실마다 산모와 보호자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베이비부머 세대들의 출산율이 매우 높았기 때문이었다.
앉을 자리가 없어서 산부인과 진료실 복도 벽에 서 있는데, 맞은편 의자에 초등학교 4학년쯤 나이로 보이는 여자아이와 그녀의 엄마가 나를 보고 있었다.
간호사가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내가 천천히 들어가는데, 그 앳된 여자아이가, “엄마, 저 아줌마는 배가 볼록한 것 보니 딸인 것 같아!!”라고 하는 말소리가 들렸다.
그 아이의 목소리가 조금 커서 내게는 또렷이 들렸다. 내 귀속을 때렸다.
“아니, 저 어린 여자아이는 산모의 배를 보면 뱃속에 태아가 아들인지 딸인지를 잘 맞추곤 했나? 맹랑하네! 아유~~, 저 아이를 한 대 콕 쥐어박고 싶네!”라는 생각을 계속하며 집에 왔다.
출산 전날까지 약 열흘 동안, 시댁에서 두 시간 이상씩 학교로 통근을 했다. 버스를 두 번씩 타고 내려 ㅇㅇ역에서 △△역까지 무궁화호 기차로, 그리고 다시 학교까지 버스를 타고 출퇴근할 때였다.
퇴근하면서 기차 안에서 동료들과 신문에 나온 일산·성남 신도시 200만 호 택지 개발에 따른, 일산아파트 분양 계획 뉴스를 소재로 한참 즐겁게 대화를 나누다 헤어졌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일찍, 출산 예정일보다도 나흘이나 빨리 양수가 터져서 병원으로 직행해야 했다.
양수만 터졌을 뿐, 여섯 시간이 지나도록 산통은 전혀 없었다. 마지막 진료를 봤던 이 주일 전, 의사는, 내가 통뼈인데다 태아가 커서 자연분만은 어려우니, 제왕절개를 하자고 물었다.
열흘간 고민 끝에, 나는 자연분만하기로 마음을 정했다.
하지만 유도 분만 주사를 맞고 출산을 시도하기 전, 허리가 끊어지듯이 너무너무 아파서 제왕절개를 하겠다고 말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가 꾹 참았다.
결국 그 뒤로도 어마 무시무시한 산통을 여섯 시간 정도 겪었다. 하도 통증이 심해 끙끙 앓는 소리를 참지 않고 질렀더니, 간호사들은, 아니 무슨 교사분이 이렇게 소리를 지르냐고 면박을 크게 줬다.
나는 TV 드라마에서 산모가 이를 악물고 아픈 통증을 참다가 이가 다 삭았다거나, 양 손목으로 너무 세게 힘을 주며 침대의 양쪽 핸드 레일을 잡아당기면 내 손목뼈가 다 망가질 것 같았다. 그래서 좌, 우로 몸만 바꿔 누우면서 소리만 지르기로 마음먹었었다.
“아니, 아파서 죽겠는데, 소리도 못 질러요?”
※ 이 글은 총 다섯편(1번~26번)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순서에 따라 읽으시면 몰입감이 느껴지실 거예요. 많은 관심과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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