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어느 작가가 글쓰기 강의에서 ㄱ, ㄴ,ㄷ,... 초성을 가지고 각 초성으로 한 줄씩 문장을 만들어 보라고 했다.
나는 ㄱ 초성에 꽂혔다. 한 문장을 쓰니 줄줄이 그다음도 흘러 내려갔다. 그래서 ㄴ, ㄷ, ㄹ...로 시작하는 문장을 전혀 시작도 못했다.
ㄱ. 결혼 ㅡ 결혼은 베팅(betting)이다.
베팅(betting)? 도박? 내기? 돈을 거는 것? 20대 때, 나는 결혼할 배우자를 결정한다는 것은 베팅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나 자신과 '내기'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결정한 배우자와 살게 될 미래에 대해서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므로 '내기'를 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그 당시 나는 다음과 같이 생각했다.
평균적으로 대략 25~30년 이상 서로 모르는 사람으로서, 전혀 서로 다른 생활환경과 전혀 다른 경험을 가진 낯선 남녀가 만나 살아가려면,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이 필요하죠! 그 과정에서 서로 애정, 갈등과 이해, 대립, 애증, 그리고 사랑의 과정을 여러 번 거치겠죠! '내기(베팅)'를 하되 좋은 결혼 생활 결과를 바란다면, 선남선녀가 1미터 정도 앞에 한 점을 그려 놓고 서로 같이 그 점을 바라보며, 배우자와 어떤 것이든 서로 의사소통하며 협의하고 같이 결정을 내리는 것이 필요하겠죠!
대학 졸업 후 3년간 겨우 서 너 번 미팅(소개팅)을 해 봤으나, 미팅마다 50~70분 즈음 지나면 상대방과 얘기할 만한 소재가 다 떨어져서, "오늘 만나서 즐거웠어요~. 안녕히 가세요~. 먼저 일어날게요." 하며 소개팅 만남이 그것으로 끝나곤 했다.
그러다 보니 내 배우자는 어디에 있을까? 언제 그런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라는 것이 내 마음속에 늘 따라다녔다.
그러던 중, 엄마는 가정주부로 알뜰살뜰 사시다가 사 남매 중 약사 언니와 교사인 나, 의대생인 큰 남동생, 그리고 막내 남동생이 서울 법대에 두 다리 쭉 뻗고 합격하니, 그때부터 바깥일을 무척 하고 싶어 하셨다.
1980년대 당시 가정주부가 취업한다면 보험 영업직이 보편화돼 있다고 할 수 있었다. 엄마가 보험 영업직에 바지런히 다니신 지 약 1년 지났을 때, 엄마는 내게,
"회사 팀장의 조카라는 사람이 박사 과정을 하러 미국 유학을 곧 가게 되어 있다고 하더라. 너, 공부하는 사람이면 좋다고 했잖니? 한 번 만나봐라."
"엄마, 난 싫어. 미국 유학으로 곧 먼 타국에 떠나갈 사람을 뭐 하러 만나요?"
그 당시 나는 교통이 매우 불편한 ㅇㅇㅇ고 교사로 3월부터 재직 중이었다. 그곳의 자취방에서 생활하고 토요일마다 1시 퇴근하여, 버스 ㅡ 무궁화호 기차 ㅡ 1호선 전철 ㅡ 20분 도보, 총 2시간 30여 분씩 걸려서 서울 본가로 돌아가는 생활을 했다. 5월 어느 주말, 엄마는 내게 그 지인의 조카를 만나 보라고 다시 두 번째 권유하셨다. 나는 똑같은 대답을 반복했다.
"엄마, 난 싫어요. 멀리 미국 유학 갈 사람이면 나는 같이 미국 가서 살아야 하고 그러면 나는 교사 생활을 그만둬야 해서 싫어요."
그런데, 6월 초순 주말, 엄마는 또, 그 조카를 만나 보라고 세 번째 말을 꺼내셨다. 세 번째 엄마 권유에, "그래요? 세 번씩이나 엄마의 권유를 받았는데, 그럼 한 번 미팅 나가 볼까? 그래요. 엄마, 시간과 장소를 알아봐 주세요."
결국, 그 해 ㅇ월 ㅇㅇ일, 무궁화호 타고 지금은 사라진 교외선 ㅁㅁ 기차역에서 2시 20분 이전에 내렸다. 근처 ㅇㅇ호프(레스토랑을 겸한 나의 추억 속의 그 호프집은 2019년 즈음 사라지고 없음)에 들어가 엄마를 만났다.
그곳 서비스하시는 분께 남자 이름을 알려 주고 엄마 이름도 알려 주며, 남자를 마이크로 불러 달라고 했다. 그 남자는 미리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서비스하시는 분의 안내를 받고 그 남자가 앉은 곳으로 엄마와 나는 다가갔다.
짧은 밤톨 머리에 흰색 반팔 Y셔츠, 파란색 양복바지에 피부가 흰 그 남자는 첫눈에 보기에도 약간 통통해 보였다. 엄마는 몇 가지 질문을 그 남자에게 묻고, 우리들끼리 시간을 가지라고 하시며 집으로 가셨다.
남녀 소개팅으로 처음 보는 사람을 만나서 1시간 정도 얘기한다는 건 얼마나 불편하고 어색한 것인가? 대화를 이어 간다는 것은 쉽지 않은 법!
그래서 앞서 말한 과거 3년 사이 서 너 번의 미팅(소개팅)에서는, 정말이지, 대화를 잇는 것이 그렇게 어색할 수 없었다. 대화가 뚝뚝 끊기고 어색한 침묵이 길게 이어져서 지루했지만, 그때마다 소개해 준 사람의 입장을 생각해서, 그리고 앞에 앉은 상대방이 첫눈에 전혀 반하지 않았어도 시간을 내서 나온 상대방 입장을 무안하게 하지 않으려고 이런 화제, 저런 화제를 내가 먼저 제시하며 이야기를 억지로 끌고 가다가, 아! 이제 작별 인사 정중히 하고 떠나야겠네 하며 끝을 맺곤 했었다.
그러나, 그날은 완전히 달랐다. 내가 굳이 화제를 꺼내지 않아도, 그 밤톨 머리 통통한 남자는 이런 질문, 저런 대답, 자신의 연구원 생활, 자신의 전공, 미래 준비에 대한 다양한 얘기와 계획을 내게 들려주었다. 시간이 지루했냐고? No, No, Never!
그 레스토랑에서 나온 후 맞은편 와인숍으로 들어가자고 그가 제안해서 그곳에서 다시 이야기를 이어 갔다. 와인이 목적이 아니고 장소를 바꿈으로써 기분 전환하여 대화를 계속하고자 하는 그의 뜻을 짐작할 수 있었다. 1주 후에 나의 직장 근처 레스토랑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정하고 헤어졌다.
두 번째 만남에서 그는 빠알간 장미 100송이를 정성 들여 준비해 가지고 와서 내게 건넸다.
어머나! 나는 이때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까? 그는 내가 자기 마음에 든다고, 그런데 나는 자기를 어떻게 생각하냐고 내게 묻는 것이었다. 나는 겨우 두 번째 보고 사람을 어떻게 판단할 수 있는가? 나는 확신할 수 없다고 했다.
세 번째 만나는 날에는 스릴 넘치는 에버랜드 놀이 기구를 탔다. 그는 그날, 네 번째 만나는 날에는 그의 부모님을 만나러 집으로 가자고 했던 것 같다. 부모님을 뵀을 때 끓여 주신 호박 두부 된장 꽃게탕은 무척 감칠맛이 났다.
다섯 번째 만난 날에는 우리 집으로 가서 부모님의 이런저런 질문에 그 남자가 자연스럽게 대답을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여섯 번째 만남이 있게 되는 날 전까지, 나는 무척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미국 유학을 혈혈단신 떠나는 날짜(약 28일 후)의 비행기 티켓을 이미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나는 그에게 앞으로 내가 그를 계속 만날 것인지, 아니면 여기서 만남 끝이니 유학 잘 가시라고 해야 할지 매우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 했다.
언니와 나의 대학 동창 친구들에게 물었다. 네가 이런 상태라면, 너는 어떻게 하겠니? 친구들이나 언니의 대답은 대체로 "네 생각은 어때? 너에게 달렸지!"였던 것 같다.
"나? 그래. 어차피 이 사람이 떠나려면 28일여 남았으니, 베팅해 보자. 그 사이에 만나면서 서로를 알아보는 과정을 거치면서 베팅해 보자."
"그가 미국으로 유학을 혼자 떠나 미지의 유학 공부 생활에 적응하느라 그는 힘들겠지만, 그리고 그가 언제 박사학위를 따게 될지 막연하지만, 나는 국제 전화와 국제항공 편지로 간접적인 만남을 계속할 수 있으니까, 김포공항 비행기로 그가 한국을 떠나는 날까지, 스물네 번은, 매일 퇴근 후 서로 서울과 경기 북부를 오가며 만나보기로 하지 뭐! 인생은, 아니! 결혼은 뭐, 베팅! 베팅이니까! "
우리나라 사람들이 좋아하는 숫자가 3이라서 그런지, 또는 사자성어 삼고초려(三顧草廬)에 내 마음이 그때 완전히 꽂혀서 인지,
"알았어요. 엄마! 엄마가 세 번씩이나 권유하셨으니, 그 지인(큰 시 이모님)의 조카라는 사람, 한 번! 만ㆍ나 ㆍ 볼ㆍ게ㆍ요!!"
그것이 인연(因緣)이었다.
밤톨 머리 한 오동통했던 그 조카라는 남자랑 견우와 직녀보다도 더 길~게 떨어져 지내다가 그 이듬해 12월, 3주일간 후다닥 나 혼자 결혼식 준비하고 그 남자는 딱 1주일간 한국에 들러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이 결혼식!
결혼 후 미국에서 가난하게 유학 생활하는 견우와 한국에서 교사 생활하는 직녀는 3년 반 동안 따로따로 생이별! 그 기간 동안, 겨울방학엔 직녀가 30일간 견우를 만나러 미국으로 날아가고, 여름방학 18일간은 견우가 직녀를 만나러 한국으로 날아오곤 했으나, 헤어질 때마다 공항 로비에서의 그 눈물과 애잔함이란...
대가족 시댁의 아낌없는 손자 사랑을 듬뿍 받은 큰아들과 함께 시댁에서 직녀는 3년 살다가... 박사학위 마치고 금의환향한 그 '조카'분과 합가 후 둘째 아들까지 낳고 통산(通算) 36년째 오순도순 살고 있으니...
3(三)이라는 숫자의 인연(因緣)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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