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편
28. 시민 데모 : 버스 안의 남편
그날도 남편은 역시 그 자리에 없었다. 그날 찬거리를 냉장고에 정리한 뒤, 침대에서 잠시 쉴 때, 나는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태아가 돌덩이처럼 딴딴하게 자꾸 뭉치는데도, 의사는 아직 날짜가 2주 이상 남았다고, 아직 멀~엇다고만 해요.”라는 것만 알린 상태에서 나는 잠이 들었던 것이다.
그날, 남편은 저녁 여섯 시 즈음 버스를 탔다. 직장과 집 거리의 중간 지점이 서울시 중구 소공동에 위치한, 지금은 사라진 ‘미도파’ 백화점.
이곳에서 그는 버스를 갈아타고 오는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하필 그날따라 시청과 을지로에서 시민 데모가 크게 있었다. 평소 1시간 정도 걸리던 버스는 세 시간 삼십 분 넘게 걸렸다.
1994년 당시 우리 부부가 ‘삐삐’(무선 호출기)라도 있었더라면!! 버스 안에서 그는 세월아 네월아 앉아 있고... 둘째 아들이 태어난 것을 까맣게 모르고 있을 수밖에!
29. 홑 담요와 깜깜한 창고
그 당시 나와 같은 한국의 1차 베이비부머 세대(1955년생~1963년생)가 신생아를 너무 많이 낳아서 대학병원 분만실과 입원실이 태부족이었나 보다.
출산 직후 잠에 떨어진 나를 홑 담요 하나만 덮어 놓은 체, 간호사는 실내 등이 안 들어오는 깜깜한 창고 같은 곳에 나를 처박아 두었다. 나는 오들오들 추위에 떨며 눈을 떴다.
“누구 없나요? 아무도 없어요? 여보세요?” 여러 번 아무리 소리쳐도 응답이 없었다. 깜깜한 창고 같은 곳에 덩그러니 1인용 간이침대에서 추위에 떨다 정신을 잃고 또 잠이 들었다.
깨어 보니 입원실도 아니고, 한두 평 남짓한 임시 간이 공간에서 다른 산모 옆에 내가 누워 있었다.
아무튼 그 중간 과정이 어떻게 되었었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그 사이에 보호자인 남편은 늦은 밤중에 병원에 들렀으나, “관계자 외 출입 금지”라고 써 놓은 표지 앞에서 30여 분 기다렸단다.
그런데, 면회할 수 없으니 귀가하라는 간호사의 말만 듣고, 산모인 나를 찾을 생각도 전혀 없이 그냥 귀가했단다.
30. 반가웠을까?
다음 날 아침 9시경, 휠체어를 타고 검사를 받으러 나가는데, 입구에서 남편을 만났다. 반가웠을까? Oh! No. No! ... Nonsense!
어젯밤에 깜깜한 창고 같은 외딴곳에서 오들오들 떨며 처박혀 있었다는 사실! 한밤중 면회 왔다가 간호사 말만 듣고 그냥 집으로 무심히 되돌아갔다는 남편이 그렇게도 미울 수가 없었다.
큰아들 태어날 때는 견우와 직녀처럼 살아서 그렇다 치자. 도대체, 작은 아들 태어날 때라도, 첫날 보호자로서 산모와 아기를 한 번 쳐다보기라도 하지!
금쪽이가 아니라, 새로운 우주가 탄생하는 것 같은, 그 귀하디 귀한 시간을 어쩜 두 번씩이나, 남편은 비껴갈까!
셋째 애를 낳게 되면, 그때쯤엔 그런 횡재를 얻을 수 있으려나. 몇 년간 그 공상에 빠지곤 했다.
31. “길에서 애 낳을 뻔하셨네요!”
출산 다음 날 아침, 그 전날 정시 퇴근하여 실제로 내 둘째 아들 분만을 직접 주재하지 않았던 담당 의사(4년 전, 나의 큰아들을 직접 분만시켰던 분)의 진찰을 받았다.
“어유~~, 어제, 길에서 애 낳을 뻔하셨네요! 큰일 날 뻔했네요.”
“선생님이 어제, 아직 멀~엇다고 하셨잖아요. 그래서 철석같이 믿었죠.”
“둘째 아기는 보통 예정일보다 빨리 태어나는 경우가 많지요!”
“... ... ... ... (베테랑은 무슨...)”
*이 글은 총 12편(1번~41번)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각 편마다, 매주 월요일, 목요일 연재할 예정입니다.
제1편(1번~4번) 글이 마지막 제12편(38번~41번)까지, 계속해서 주제를 이끌고 가는 구조입니다. 각 편 순서대로 읽으셔야 내용 연결이 잘 되고 흥미진진합니다.
많은 관심과 성원 바랍니다.
저는 블로그에서 필명 '햇살 든 베란다'로 같은 글을 올리고 있습니다.
제 글벗이 되어 주신 분들께,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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