生_누구의 탓

by 김평화




生_누구의 탓


엄마는 어느 순간부터 허리 통증을 호소했다. 마침 당시 엄마가 일하던 건물 위층에 척추 전문 병원이 있었고, 그곳에서 협착증을 진단받았다. 의사는 수술을 권했고, 앉아서 일해야 하는 일의 특성상 허리가 아픈 것은 큰 고통이었기에, 엄마는 수술을 결정했다.


하지만 이후 통증은 나아지지 않았다. 엄마는 몇 년째 일을 하지 못했고, 나중에는 내가 웹툰을 그려 번 돈의 일부로 생활비를 충당했다. 서울의 물리치료사는 엄마의 등 한가운데에 있는 흉터를 보고, 내시경 수술이라면서 가운데를 갈랐던 것을 보면 수술 중에 문제가 생겼던 게 분명하다고 말했다. 병원에서는 듣지 못한 말이었다.


물론 진득이 앉아서 일할 수 있는 정도는 아니었지만, 엄마는 매일 아침 운동도 했고, 한의원도 다니고, 가끔 놀러도 다니고, 등산도 열심히 했다.


하지만 내가 편입 준비를 할 즈음, 엄마는 두 번째 수술을 결심했다. '더 이상 이러고 살 수는 없다'라는, 그리고 '먹고살아야 한다'는 이유로. 이번에는 서울까지 올라가 척추 전문 병원에서 척추에 핀을 박는 대수술을 했다. 8시간이면 끝난다는 수술은 12시간을 넘어섰고, 내가 깜빡 잠들고 일어났을 때서야 엄마는 입원실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 이후 큰 통증이 찾아왔다. 밤에는 통증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했고, 걷는 것도 힘들어했다. 병원에 물어봐도 시간이 지나면 괜찮다는 말뿐. 세 달이 지나자 결국에는 '지금도 통증이 있으면 문제가 있죠...'라며 말끝을 흐렸다.


허리 통증을 완화하는 방법을 찾기 위해 이런저런 노력을 해 봤는데, 그중 하나가 자궁의 혹을 제거하는 것이었다. 그 무렵 엄마의 아랫배가 부풀기 시작했는데, 알고 보니 자궁에 커다란 염증성 혹이 있었던 것이다. 그 혹이 허리의 신경을 눌러 고통이 더 심해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는 전주에서 자궁 제거 수술을 할지, 서울에서 염증만 빨아내는 시술을 할지 처절하게 고민했고, 결국 자궁을 제거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자궁 적출 수술 후, 통증은 극심해졌다. 버틸 수 없을 정도로. 엄마가 결국 옷을 갈아입고 응급실에 갔을 때, 엄마의 친구가 반찬을 주기 위해 우리 집에 찾아왔다. 응급실에 갔다는 말에 그녀는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고, 수화기 너머의 엄마는 '너무 아파. 죽고 싶어.'라며 울부짖었다. 그녀가 가고, 엄마가 집으로 돌아왔을 때, 울고 있을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엄마는 아무 표정도 없었다. 내가 눈물을 흘리자 엄마는 물었다.



"답답해서 그래?"

"아니. 친구 엄마가 돌아가실 것 같대. 그래서..."



답답하지 않았다. 친구 엄마가 돌아가실 수도 있다는 소식에 슬픈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때의 눈물은 그 이유가 아니었다. 무서웠다. 우리 엄마가 정말 죽을까 봐 무서웠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지 못했다. 엄마가 죽음을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눈물을 흘리는 나를, 엄마는 조용히 바라봤다. 나를 달래거나, 같이 울지 않았다. 그저 나를, 우는 나를 바라만 봤다. 그리고 이틀 뒤에 떠났다.


엄마의 죽음은 누구의 탓일까. 처음에 수술을 잘못했던 의사? 두 번째 수술을 잘못했던 의사? 세 번째 수술을 잘못했던 의사? 장례식장에서 외가 식구들은 아빠를 탓했다. 망할 놈 잘못 만나서 그런 것이라고. 그에 동의라도 한 것인지, 고모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 역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안다. 엄마가 죽은 것은 의사의 탓도, 아빠의 탓도 아닌 내 탓이라는 것을. 내가 그날 솔직히 내 마음을 털어놓았더라면, 배의 혹에 대해 말하지 않았더라면, 쓸데없는 자격지심에 시작했던 편입 준비를 하지 않고 바로 취직했더라면, 학비가 싼 대학교에 갔더라면...


6살 때쯤, 극심한 고열을 앓았다. 가족들의 말로는 거의 40도까지, 갑자기 열이 확 오르더니 입에 거품까지 물었다고 했다. 이러다 진짜 죽을까 봐 무서웠단다. 곧바로 응급실로 향했고, 나는 살았다. 그때의 기억을 어느 정도는 가지고 있다. 고모의 구형 아반떼 뒷자리, 병원이 보이는 창문, 내 옆에 앉아있던 가족들... 그때 내가 죽었더라면, 엄마는 지금도 자신의 삶을, 더 나은 삶을 살고 있을까. 아니, 애초에 내가 생기지 않았더라면 외가 가족들이 그토록 미워하는 아빠와 결혼할 일도 없었을 것이다.


가끔 외가 식구들을 만나면 나는 의문이 든다. 왜 이 사람들은 나를 미워하지 않는 것일까. 엄마의 인생을 망치기 시작한 것은 나인데, 왜 나를 아직도 가족으로 받아들이고 아껴주는 것일까.


그 누구도 내 탓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나는 안다. 그 누구의 탓도 아닌, 내 탓이라는 것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살아간다. 염치없이, 미래를 그리며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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