死_대들보 인연
어렸을 때부터 엄마는 친구와의 모임에 나를 자주 데려갔다. 나는 그들을 곧잘 '이모'라고 불렀다. 장사를 하는 이모도 있었고, 집에서 살림을 하는 이모도 있었고, 엄마와 같은 직장에 다니는 이모도 있었다. 내가 태어날 때부터 엄마와 친구였던 이모들이 많아 내가 나이를 먹을수록 이모들과의 인연도 점점 길어졌다.
장례식장에서, 이모들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자리를 지켰다. 마지막 가는 길도 함께했다. 정말 고마운 일이었다. 납골이었나 49재였나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이모들은 내게 '언제 같이 밥 한번 먹자'며 인사를 건넨 후 돌아섰다. 그 뒷모습이, 내가 본 이모들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한 이모는 같은 동네에 살고 있었기에 언젠가 한 번 횡단보도 앞에서 기다리던 것을 본 적이 있었는데, 나는 아는 척하지 않고 혹여나 나를 볼까 뒤돌아 다른 횡단보도로 향했다. 아는 체했었으면 분명 반겨줬겠지만, 이모들과 나의 인연은 마지막 인사한 그날, 납골당에서 끝났다.
들보란 기둥과 기둥을 가로질러 둘을 이어주는 수평의 나무로, 벽이나 지붕을 받치기 위해 쓰는 구조물이며, 대들보는 그러한 들보 중 가장 큰 것을 말한다. 그러니까, 대들보가 없으면 그저 떨어져 있는 기둥 두 개일뿐이라는 것이다. 인연도 그와 같다. 엄마로 인해 시작됐고, 엄마로 인해 이어졌으나 이젠 엄마가 없으니 끝나는 것이 맞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이러한 인연을 '대들보 인연'이라 부른다.
카카오톡 프로필 속 이모들의 모습은 행복해 보였다. 나는 그들을 차단했다. 아마 그들도 내가 어떻게 사는지, 더 이상은 알지 못할 것이다. 계속 이렇게 지내기를 바란다. 각자 서있는 기둥으로. 2019년 3월 19일을 영원히 잊지 못할 나와 다르게, 친구의 죽음을 잊고 행복하게, 그저 타인으로 살아가기를. 우연히 길을 걸어가거나, 카카오톡 프로필 목록을 내리다 나를 보고 엄마를 떠올리는 일은 일어나지 않기를. 엄마가 좋아했고, 나 또한 좋아했던 그녀들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