生_17평

by 김평화





生_17평



처음에는 24평의 집에서 무려 여섯 명이 살았다고 했다. 그 뒤로 작은 아파트로 이사를 갔으나 하도 어렸을 때라 잘 기억나지 않는다. 기억나는 것은 어린이집에 다닐 때 빌라에 살았었다는 것인데, 방 두 개에 작은 주방이 딸린, 좁은 빌라였다. 그래도 더울 때는 콘크리트 마당에 고무 풀장을 놓고 근처에 사는 사촌오빠들과 물놀이를 하기도 했고, 집 앞에 구멍가게가 있어 어린이집 다녀오는 길에 과자를 두어 개 사 먹을 수 있었던, 나에게는 꽤 만족스러운 곳이었다. 하지만 집주인이 바로 옆에 살고, 말할 수 없는 이런저런 일들이 있는 바람에 우리 가족은 또다시 이사를 갔다.


17평의 작은 집이었다. 거실과 주방, 작은 방 하나가 있는. 처음 그곳에 이사 갔을 때가 생생히 기억난다. 산이 보이는 아파트. 큰 베란다 창으로는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고, 초등학교에서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사다리차가 큰 가구들을 옮기느라 쉼 없이 올라갔다 내려갔다를 반복했고, 엄마는 이삿짐센터 직원들에게 짜장면을 사주었다. 그리고 모두가 돌아가고 가족들만 남은 집에서, 욕조에 물을 한가득 받아놓고 꽃게 장난감을 가지고 놀았다. 그게 그 집에서의 처음이었다. 행복하고 따뜻한 기억.


그 집에서 무려 10년을 넘게 살았다. 초, 중, 고를 모두 그곳에서 나왔고, 대학에 가서는 한 달에 한 번이나 방학 두 달을 그곳에서 보냈다. 바로 앞에 초등학교가 있어질 나쁜 아이들의 임시 거처가 됐던 적도 있었고, 친구들과 거실에서 삼겹살을 구워 먹다 온갖 데에 기름을 튀겨 엄마에게 크게 혼난 적도 있었고, 태풍에 베란다 밑이 터진 적도 있었고, 바퀴벌레가 창궐한 적도 있었지만 그래도 나와 엄마에게는 그곳이 안식처였다.


내가 고등학교 2학년쯤 되었을 때, 엄마가 '이사 가고 싶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아파트가 아니라 빌라라도, 새로운 집에서 살아보는 게 어떻겠냐고. 나는 동의했다. 매일 들어오는 벌레에 스트레스를 받았었으니까. 하지만 곧 생각이 바뀌었는지 우리는 계속 그 집에 살았다. 나중에는 이 집을 나에게 물려주겠다는 이야기도 했다. 무슨 이유에선지는 모르겠지만, 엄마는 그곳을 평생 우리의 집, 평생 우리의 안식처로 삼기로 결정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그 좁은 집에서 삶이 끝나리라고는, 누가 알았을까. 우리가 함께 일어나고, 함께 먹고, 함께 자고, 함께 웃고, 함께 울고, 함께 화냈던 그 집의 방범창을 뜯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엄마가 달에 160 정도 되는 돈을 모으고 모아 마침내 대출을 다 갚았던 그 집을, 영원히 우리의 집일 줄로만 알았던 집을, 다른 사람에게 헐값에 팔게 될 줄, 그 누가 알았을까.


짐을 다 비운 집은, 생각보다 넓었다. 17평의 집은 지금까지 엄마와 나, 두 사람이 차곡차곡 쌓아 놓은 시간과 기억, 추억으로 가득했던 것이다. 그것을 빼내니, 집은 생각보다 넓었다. 나는 그것을 보고 급하게 집을 판 것을 후회했다. 10년이 넘는 시간을, 기억을, 추억을, 사랑을, 우리의 집을, 몇 주 만에 없애 버리다니.






이전 13화死_씨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