生_불효

by 김평화





生_불효



나는 어릴 적부터 그림을 잘 그렸다. 또한 좋아했다. 학교를 마치고는 거의 미술실에서 살았고, 수업 시간에도 늘상 만화를 그리고 있었다. 그러니 당연히 꿈도 이를 따라갔다. 초등학교부터 중학교까지, 9년 내내 나의 꿈은 '만화가'였다.


하지만 열일곱이 되니 상황이 달라졌다. 여전히 나는 그림을 잘 그렸고, 꿈도 여전했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나는 미대에 갈 수 없다. 겨우 200만 원도 안 되는 돈으로 한 달을 버텨가는 가정에서 2년의 학원비와 재료비, 특강비를 낼 수 없다는 것을. 그래서 포기했다. 손에서 연필을 놓고, 만화책을 덮었다. 대신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명작이라 불리는 것들부터, 도저히 끝까지 보기 힘든 졸작들까지. 시간만 나면 컴퓨터 앞에 앉아 영화를 봤다. 그 덕에 새로운 꿈이 생겼는데, 그게 영화감독이었다. 영화감독도 돈깨나 깨지는 직업이라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그저 카메라 하나만 손에 덜렁 쥐면 되는 직업인줄 알았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술에 대한 마음을 완전히 없애지는 못했다. 야자 시간에 곧장 미술학원으로 향하는 아이들이 부러웠다. 등에 크게 학원 로고가 그려진 점퍼가 부러웠고, 빠르게 발전하는 실력이 부러웠다. 무엇보다 그 아이들의 미래가 부러웠다. 그리고 질투가 났다. 열등감이 나를 감쌌다. 나보다 못 그리던 애들이었는데, 겨우 돈이 있다는 이유로, 나는 재능을 접어야 하고 저들은 재능을 펼칠 수 있다니.


그리고 그 열등감은 곧 엄마에 대한 원망으로 번졌다. 왜 우리 집은 나 미술학원 하나 보내줄 수 없을 정도로 가난한가. 왜 돈 때문에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것을 못 해야 하는가. 그렇다고 해서 엄마에게 모진 말을 할 성격은 못 되었다. 그래서 지나가듯 말했다. "나 미술 하고 싶은데, 돈 많이 들어서 안 하려고. 포기했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투정이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나는 영화는 아니지만 영상 관련 학과에 들어가게 되었다. 방학 내내 서투른 솜씨로 그린 만화가 신생 웹툰 회사의 눈에 띄어 웹툰작가 생활도 했다. 여전히 미술에 대한 아쉬움은 남아있지만, 그것을 업으로 삼으며 살아가지 않는다고 해서 고통스러운 것은 아니었다.


어느 날부터 냉장고에 고등학교 시절 내가 그린 그림이 붙어있었다. 학교를 그린 수채화 그림. 그것을 보고 미술 선생님이 나를 미대 입시 준비생으로 착각했던 그림. 이제는 그냥 추억이 된 그런 그림이었다. 엄마의 친구 중엔 딸이 중앙대 미대를 다니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분이 우리 집에 와선 그 그림을 보고 "잘 그렸다~ 애 미술 시키지." 하고 별생각 없이 말했다. 그리고 그 말에 엄마는 대답했다.



"미술 하고 싶었는데, 돈 많이 들어서 안 했대. 포기했대."



엄마는 계속 되뇌고 있었던 것이다. 그림을 그리지 못하는 나를 보며, 딸의 바람도 이루어주지 못하는 자신의 능력을 탓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 짧은 투정조차 지나치지 못하고 몇 년이 지난 그때까지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애초에 불효를 저지른 채 태어났다. 나의 재능은 불효였다. 부디 엄마가 마지막까지 그것을 미안해하며 가지 않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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