生_이방인
어릴 때부터 나는 조금 유별났다. 아니, 가족 구성원 속에서 유별났다는 게 정확한 말이다. 공무원, 교사, 사무직만 가득한 가족들 사이에서, 나의 어렸을 적 꿈은 '만화가'였다. 늘 수업시간에 노트에 만화를 그리고, 만화방에서 한 권에 300원짜리 만화책을 빌려 보고, TV는 무조건 만화 채널이었다.
이후에는 영화감독을 꿈꿨고, 방송 관련 예술 대학교에 진학하게 되었다. 그 기간 동안 내 또래의 가족들은 직업이 보장된 학과로 향했다. 작은 도시에 불만을 가지고 있었던 나는 스무 살이 되자마자 다른 곳으로 떠났고, 다른 가족들은 고향에 남았다. 반복되는 일은 진절머리가 나 애써 붙은 대기업 계약직을 일주일 만에 박차고 나간 나와 달리 가족들은 안정적인 곳에 자리를 잡았다.
그러다 보니 그들에게 나는 아직 철이 덜 든, 방황하는, 나잇값 못하는 그런 사람으로 보이고는 했다. 가족들이 만나는 자리에서는 반드시 한 번은 직업에 관련된 잔소리를 들었다. 가족들은 공무원, 군무원, 사무원을 질색하는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다들 착실히 앞으로 나아가는데, 나만 삐뚤대며 반도 따라잡지 못하고 있으니 그럴 만도 했다. 그러다 보니 결국 나는 가족들 사이에서 유별난, 섞이지 못하는, 그야말로 이방인이 되었다.
하지만 엄마는 달랐다. 어렸을 때 나에게 72색 마카펜을 사줬고, 펜태블릿을 사줬고, 미술 수업에 보내줬다. 나를 미술 학원에 보내주지 못하는 본인의 형편에 안타까워했고, 내가 그린 웹툰을 어떻게든 찾아내 주변 사람들에게 자랑했다. 그것 때문에 나중에 조금 부끄럽기는 했지만, 어쨌든 엄마는 내 재능을 이해하고 자랑스러워했던 것이다.
가끔 가족이 나를 애써 이해하려는 느낌을 받고는 한다. 왜 이 놈은 아직도 이러고 있지, 왜 그 좋은 자리를 뛰쳐나왔지, 왜 이렇게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으면서도 겉으로는 나의 방향과 속도를 인정하는 척하는 것이다. 고마운 일이지만 이것은 나를 이해하는 것과는 다르다.
오로지 엄마만이, 가족 중에 유일하게 나를 완전히 이해하는 사람이었다. 이제 엄마가 없으니, 가족들 사이에서 나는 그저 섞이지 못하는 이방인이다. 어쩌면 영원히 그럴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