死_자만
앞에서 나의 못된 생각을 이야기한 적이 있다. 엄마의 죽음을 나만 기억하고 있다는 생각. 죽음에도 귀천이 있다는 생각. 물론 아직도 후자는 동의하지만, 최근 전자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는 일이 있었다.
어느 날 갑자기 이모가 가족 단톡방에 사진을 하나 보내왔다. 나무에 노란 조명을 빙 두른 사진. 하필 연말이라 처음에는 크리스마스트리를 산 줄 알았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나무 밑에 두 개의 비석이 보였다. 하나는 사촌오빠. 또 하나는 엄마.
이모는 이제야 둘 다 밤에도 밝게 지낼 수 있다고 말했다. 사진 속 사촌오빠의 자리에는 여전히 꽃이 한가득이었고, 엄마의 자리는 텅 비어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따뜻해 보였다. 전혀 외롭지 않아 보였다.
나는 생각했다. 어째서 내가 세상에서 엄마를 가장 사랑하고, 유일하게 엄마를 그리워하는 존재라 생각했나. 그간 나는 얼마나 자만스러웠나. 살아생전에는 그리 하지 못했으니, 죽어서는 내가 가장 사랑할 거야. 나만 그리워할 거야. 그저 어린아이가 떼쓰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엄마를 그리워한다. 많은 사람들이 엄마를 보고 싶어 하고, 엄마의 죽음에 아직도 슬퍼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자만은 기어코 엄마를 죽어서도 불쌍한 여자로 만들고야 말았다. 못된 생각을 해서 벌을 받은 것이다. 진짜 불쌍한 것은 엄마가 아니다. 이기심 때문에 못된 생각만 하고야 마는 나. 나 같은 게 불쌍한 인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