死_나를 세상에서 제일 미워하는 사람
남자 한 명을 만났다. 메신저로 연락했을 때 말도 잘 통했고, 실제로 처음 만났을 때도 꽤 괜찮은 사람이었다. 외모는 전혀 내 스타일이 아니었지만, 그것을 넘어설 정도로 다정하고 따뜻한 사람이었다. 그는 술을 좋아함에도 불구하고 나를 집에 데려다 주기 위해 술집에서 술 한 모금 마시지 않았고, 자신이 일하는 분야에서는 반짝반짝 눈을 빛낼 줄도 아는 그런 사람이었다. 이 사람과 연애를 한다면 어떨까. 왠지 내가 그의 따뜻함에 조금이나마 기댈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우리는 사귀지 않았다. 나는 연애를 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그와 친구가 되고 싶었다. 그런 나에게 그는 솔직하게 말했다. 나는 친구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너를 알아가고 싶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친구 이상의 관계를 거절했다. 우리의 연은 조용히, 미지근하게 마무리되었다.
왜 나는 그와 친구가 하고 싶었을까. 그는 아마 모르겠지만 나는 자신이 없었다. 누군가를 사랑할 자신이. 나는 늘 그랬다. 애초에 마음이 끌리는 사람도 별로 없었거니와, 혹여 그런 사람이 있다 해도 그 사람과 함께 사랑을 나누는 것은 선택지에 두지도 않았다. 그저 좋은 사람임을 알기에 친구로서 곁에라도 두고 싶다는, 그런 마음이었다.
이유는 명확하다. 엄마. 나를 세상에서 제일 사랑해 주었던 사람. 나는 그 사람이 마지막에 나를 사랑하지 않았기를 바란다. 나를 제일 사랑해 주었던 사람이 나를 사랑하지 않기를 바라는 내가, 나를 사랑할 수 있을 리 없다. 그래. 나는 나를 사랑할 자신이 없다. 세상에서 나를 제일 미워하는 사람은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나다. 그러니 당연하게도, 누군가를 사랑할 자신 또한 없다.
그래서 나는 나를 미워하지 않는 연습을 시작했다. 어렵고 지긋한 시간이겠지만 그리해야 내가 살 수 있음을 알고 있다. 나를 미워하지 않고, 나를 사랑하는 것. 그리고 남을 사랑하는 것.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누군가에게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