生_전하지 못한 편지
스물네 살. 가을, 코스모스가 필 무렵 대학을 졸업한 나는곧바로 편입을 준비했다. 겨우 6개월이었지만 집, 학원, 도서관만을 오가는 삶은 내게 나름의 스트레스였다. 전주, 광주, 인천, 용인을 돌며 '나름 열심히 했다'라고 생각했지만, 결과는 족족 '탈락'혹은 '예비 합격'이었고, 그마저도 터무니없는 번호였다. 나는 당장 상경해 집과 직장을 구해야 하는 상황이 되어 버렸으며 애써 웃었지만 아쉬움과 절망감이 자리 잡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제주 여행이었다. 홀로 바다를 보고, 한라봉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책을 읽으며 6개월 간의 노력이 날아갔다는 현실을 머릿속에서 지우고 싶었다. 비행기를 예약하고 며칠 후에 추가 합격을 해버려 목적이 사라졌지만, 이왕 예약한 김에 혼자 제주도를 즐기기로 결심했다.
제주 바다 중에서 가장 좋았던 것은 월정리 해수욕장이었다. 맑고 푸른 바다에 드문드문 보이는 검은 돌이 매력적이었다. 마침 날씨도 좋았고, 가고 싶었던 소품샵에서 제주가 담긴 예쁜 엽서도 샀기에,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 앉아 펜을 잡았다.
나는 무뚝뚝한 딸이었다. 타고나길 독립적인 성향이었고, 누군가의 도움을 받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 당연히 엄마에게도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았는데, 어느 날 우연히 발견한 엄마의 글에서는 '딸이 가끔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몰라서 무섭다'는 문장이 적혀있었다. 그만큼 엄마에게 의지도, 애정표현도 하지 않는 그런, 무뚝뚝한 딸이었다.
편지를 써본 지 얼마나 됐었나. 아마 학창 시절 친구에게 사과 편지를 보낸 것이 가장 최근이었던 것 같았다. 그래서 어색하고 어설프지만, 볼펜을 꾹 눌러 한 자 한 자 엄마를 향한 내 마음을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지금은 많이 힘들 테지만 언젠간 좋은 날이 올 테니, 조금만 더 버텨보자고. 엽서 한 장을 글씨로 한가득 채운 후, 구겨지지 않게 조심스럽게 가방에 넣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엄마에게 전해주지 못했다. 어색하기도 했고, 쑥스럽고 민망하기도 했다. 내일 주자, 내일 주자, 내일은 정말로... 이렇게 하루하루 미루다 보니 결국 한 달이 지날 때까지 편지는 문제집 사이 어딘가에 꽂혀 있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영원히 전하지 못할 것이 되었다.
그 편지를 전해줬다면 뭔가 달라졌을까. 엄마의 마음에 조금이나마 희망이 될 수 있었을까. 혹시, 만약에, 그랬다면... 다 의미 없는 말이지만 그렇게 생각하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