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CHO Nov 16. 2021

공대생의 생명공학 스타트업 생존기, 그 앞 이야기

일개미씨가 창업 후 10년을 버텨온 노하우 풀다

여느 미국 유학생의 그러하듯, 남편은 교수나 대기업 연구원을 꿈꾸며 나와 6개월 된 아들과 함께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인생은 우리 예상과는 다른 방향으로 흐른다.



미국에 온 첫해부터 남편은 지도 교수를 잡느라 정신이 없었는데, 경험상 UCSD에서 제일 바쁘고 잘 나가는 교수들은 다들 Bio Engineering 분야의 연구자라며, 이 분야의 교수들은 만나는 약속 잡는 것조차도 쉽지 않다고 한숨을 쉬었다. 결국 남편의 박사 과정 어드바이저인 Yuhwa Lo 교수님은 남편을 세 번 바람 맞히셨던 분이다. 이런 수모를 겪으며 힘들게 교수님을 만났고, 그만큼 힘들게 들어간 연구실이었다. 다행히 박사 학위까지 순조롭게 이 연구실에서 받았고, 남편이 학교를 떠난 지 10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지도교수님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여담이지만, 학위수여식장에서 교수님이 나에게 하셨던 말씀이 기억난다.


세계에서 가장 똑똑한 남편과 함께 사는 기분이 어떻냐고.. 하하

이 똑똑한 분은 박사 학위 후, 보스턴의 초일류 연구실의 포닥 대신, 자신의 특허를 가지고 세운 스타트업에 합류하는 것을 선택했다.

말이 그럴싸해 스타트업이지, 현실은 초라했다. 남편과 2명의 공동  창업자가 세운 NanoCellect는 UCSD 연구실에서 나와 한 칸짜리 작은 사무실을 얻었고, 실험실은 다른 사무실들과 공동 사용하거나 학교 연구실을 이용했다. 돈을 허투로 쓰면 안되니 학교 주차권은 야간 이용권만 샀다. 남편은 집에 와 저녁을 먹고 실험하러 다시 학교 실험실로 가는 것이 일과였다. 새로 구한 사무실애 직접 페인트칠을 하고 중고로 나온 집기들을 구하기 위해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남편은 CTO였지만 막힌 연구실 싱크대도 뚫어야만 했다.


그 당시 한국에서는 스타트업에 대한 인식이 거의 전무하던 시절이었다.

UCSD 공대에 적지 않은 한국인들이 있었지만 바이오 엔지니어링을 선택한 사람도, 학위를 따고 스타트업을 선택한 사람은   명도 없었다. 남편은 한국에서 최고 학부 공대 출신이라는 자존심을 내려놓고 자신의 소중한 30대를 실험실 벤치 위에 올려놓았다.  실험이 성공할지, 실패할지는 누구도 장담할  없었다.


한국에 계신 부모님들은 다행히 이런 남편의 선택을 지지해 주셨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선택한 아들을 지지하는 것,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럼에도 그 어려운 일을 아들과 사위에 대한 신뢰 하나로 해 주셨고, 지금까지 싫은 내색은 단 한 번도 없이 지켜봐 주고 계신다.

부모님들이 그러셨기에 나도 달리 무어라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누구보다 치열하게 고민한 남편이 내린 결정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이 결정 또한 믿었지만, 나도 나름대로의 근거는 있었다. 지도 교수를 잡지 못하고 번번이 퇴짜 맞던 시절, 남편이 한 말이 있었기 때문이다.

누구보다 이재에 밝은 미국 학생들이 바이오 엔지니어링에 몰려드는 것은 분명 이유가 있을 거야. 그 이유가 뭔지는 나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도 이 흐름에 합류해야만 해.

 

그 이유가 남편이 가진 특허를 기반으로 한 스타트업일 수도 있겠다는 쪽에 나도 나의 30대, 그리고 아이들의 어린 시절을 함께 걸었다. 이 선택으로 우리는 경제적 어려움에 봉착했다. 이 정도는 여느 포닥 가정들도 겪는 일이니 우리만의 어려움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다만 의료 보험 혜택을 회사에서 지원해 줄 처지가 아니었기 때문에 비싼 개인 의료 보험료를 매달 내야했고, 그마저도 혜택이 적어 애들이 아플 때마다 벌벌 떨어야 했다. VC 들의 투자를 받게 되자 회사에서 의료 보험을 보조받게 된 것은 최근 일이다.


남편이 스타트업에서 일한 지 올 해로 11년째.

그 사이에 회사는 네 번의 이사를 했고, 사세가 확장이되며 규모도 계속 커졌다.

5년 전 새 집을 샀을 때 회사 직원들을 모두 초대하여 비빔밥으로 집들이 파티를 했었는데, 이제는 그렇게 하기에는 직원 수가 너무 많다.

나노 셀렉트 꼬꼬마 시절, 연말에 직원 가족들이 각자 음식을 한 가지씩 해와 나눠먹는 팟락 Potluck파티는 이제 추억 속 이야기이다. 무엇보다 이제는 아는 이들보다 모르는 얼굴들이 더 많아졌다.


남편은 말한다. 자기는 '어쩌다' 창업자라고.

어쩌다 보니 전자레인지보다 작은 사이즈의 세포 분석기를 만들 수 있는 혁신적인 기술 하나로 회사를 창업해서, 시제품을 만들고, 대량 생산을 할 수 있는 자금을 확보하며 버텨온 것이라고.


그 일련의 과정이 궁금하신 분들을 초대합니다!


https://event-us.kr/startupall/event/39287?fbclid=IwAR2il8tE6h0KTYKsSesV6HXgqsJJiBaA5AcSx1HOOUZCg8SQWlAmL5dc_iI


매거진의 이전글 어른이 되어가는 혹독한 시간들(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