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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CHO Oct 29. 2021

어른이 되어가는 혹독한 시간들(2)

지옥같은 사춘기. 스포츠로 버텨내다_2

source: https://freesvg.org/img/Ice-Skating-Woman-Silhouette.png

스케이트를 신게 된 것은 킨더떄였다.

킨더에 들어가자 여자아이들은 너나할것 없이 피겨 스케이트를 배웠고, 우리 딸 또한 네 살 때 우연히 처음 신게 된 스케이트에 대해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었다. 아이는 친구들과 함께 스케이트 레슨을 받고 싶어했지만 바로 레슨을 시키지 않았다.이미 발레, 피아노를 배우고 싶다고 해서 시작했다가 얼마 되지 않아 그만둔 전적이 있었다. 그 경험들을 통해 깨달았다. 우리 아이는 호기심이 많아, 해보고 싶은 것은 많으나 지속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는 것을. 큰 아이는 하고 싶은 것이 많은 아이는 아니지만, 한 번 시작하면 4-5년은 꾸준히 하는 성격이다. 이 점에서 우리 딸은 정반대다. 그러므로 우리 아이의 지속 시간을 늘리기 위해 내가 선택한 전략은 간절함을 가르치는 것이었다.


간절함을 배우는 법. 기다리기

엄마로서 그동안 관찰한 바에 따르면 우리 아이의 성향에 스케이트가 잘 맞을것 같았다. 왠지 느낌이 그랬다. 그래서 배우고 싶다는 다른 것들은  무조건 최소한의 장비로 일단 시작하게 했지만, 스케이트는 조금 다르게 접근했다. 시간이 조금 걸리더라도 간절함을 가르치고 싶었다. 그래서 아이에게 이렇게 말했다.


1년 후에도 여전히 스케이트가 배우고 싶으면 그 때 시작하자. 그 동안 생각해 봐. 네가 진짜 스케이트가 배우고 싶은건지, 친구들과 링크에서 놀고 싶은건지.


킨더 여학생들 사이에서 유행처럼 번졌던 피겨 스케이팅 열품은 1학년으로 올라가면서 차츰 가라앉았다. 하지만 딱 1년이 되던 시점에 우리 딸은 나에게 말했다.


 아직도 스케이트를 배우고 싶어요! 나 1년동안 기다렸어요!


그렇게 해서 시작하게 된 피겨 스케이트. 이미 기계체조를 배우고 있었던 참이었는데, 처음엔  함께 배웠다. 점차 둘 다 함께 하기는 무리라는 생각이 들자 딸내미는 기계체조는 혼자서 해도 된다며 그렇게 좋아했던 기계체조를 스스로 정리했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어 플룻을 시작했는데, 그때가 유일하게 피겨를 그만두고 싶어했었지만 내가 주2회 레슨을 1회로 줄이고 일단은 함께 병행하자고 설득했다. 내가 보기엔 플룻에 대한 열정이 오래 지속될 것 같지는 않았다. 결국 아이는 플룻을 한동안 배우다 피겨를 택했다.


처음엔 단순히 좋아서 시작한 피겨였다. 그런데 아이가 커 가면서 아이의 일상에서 피겨 스케이팅의 의미가 바뀌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지금의 High Tech High 캠퍼스에 있는 초등학교로 옮겼다. 다양한 인종들의 학생들이 다녔던 전 학교와는 달리 이 학교 학생의 반은 백인, 40%는 히스패닉, 나머지 10%의 대부분은 흑인이었고 아시안들은 거의 없었다. 한 학년에 우리 딸을 제외하면 1-2명이 전부였다. (이러한 비율은 중학생이 된 지금도 큰 차이가 없다) 다른 인종의 아이들과 어울리기엔 문화적 차이가 꽤 컸다. 그리고 우리 딸의 성격은 자신을 여기에 타협시키기엔 너무 완고했다. 우리 아이는  점점 외로워졌다. 중학교에 가기 전 어느 날, 우리 딸이 새벽 연습가는 차에서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엄마, 나 스케이트 타는게 너무 좋아요. 일단 링크 위에 스케이트를 신고 서면, 머릿 속이 깨끗하게 비워져요. 그냥 스케이트 타는 것만 생각하게 되요. 그 시간이 너무 좋아요.


단순히 좋아서 시작한 운동, 

스트레스 해소의 수단으로 의미가 바뀌다.

엄마에게 자기가 얼마나 스케이트를 좋아하는지 별 생각없이 한 말이었겠지만, 엄마인 나는 피눈물이 났다. 학교에서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지가 기저에 깔려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우리 딸은 힘들었던 시간을 피겨 스케이트를 타며 스트레스를 풀었다. 그리나 결국 우리 딸은 큰 사고를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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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로 인한 락다운으로 큰 아이는 그동안 해오던 수영을, 작은 아이는 피겨를 못하게 되니 아이들의 스트레스가 엄청났다 매일 싸웠고, 그로 인한 우리 부부의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았다. 결국 우리 부부는 조심스럽지만 아이들 운동을 다시 시키기로 결정했다.


사람이 없는 새벽 시간에 데려가 무조건 마스크는 링크에서 쓴다는 약속을 아이와 했다. 매일 5시에 일어나 아이스 링크에 가는 일상이 반복되었지만, 아침잠 많은 우리 딸은 단 한 번의 군소리도 없이 링크장에 갔다. 코치 선생님이랑 테크닉을 배우고, 프로그램을 만들고, 음악에 맞춰 링크 위에서 신나게 춤을 췄다. 


아이의 스트레스를 풀기 위함도 있었지만, 엄마로서 내가 노린 부분이 하나 더 있다. 

그건 바로 피겨 스케이트가 우리 딸이 얼마나 멋진지를 보여줄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이 들었기 때문. 그것은 5학년 때 있었던 아이스 쇼를 통해 알게 되었다.


피겨, 나의 남다름을 보여줄 수 있는 수단.

초등학교에서의 마지막 학년인 5학년, 

성장이 빠른 미국 아이들 사이에서 우리 딸은 2학년짜리처럼 보이는 빼뺴 마른 몸매와 아기같은 얼굴을 가진 스케이트 바지만 입고 다니는 재미없는 아시안 여자아이였다. 우리 아이가 베프라 생각했던 한 아이는 어떨 때는 베프가 되었다, 아니었다하며 제멋대로 굴었다. 우리 딸에게 딱히 친구가 많지 않은 것을 알고 자기가 아쉬울 때만 베프인 척 했고, 우리 아이는 얘마저 없으면 혼자가 될까봐 어쩔 수 없이 베프 놀음에 장단을 맞춰주고 있었지만 그로 인해 스트레스 지수가 매일매일 높아지는 상황.


매년 San Diego Ice Arena에서 열리는 정기 아이스쇼 포스터. (출처: San Diego Ice Arena 공식 홈피)


2017년 12월에 링크장 주관으로 열리는 아이스쇼에 우리 딸은 이 아이를 초대하고 싶어했다. 우리 딸은 가족이 아닌 다른 누구라도 와서 자기를 응원해주기를 바랬고, 그 점을 잘 알고 있었던 나는 티켓을 사서 그 아이 엄마에게 보냈다. 초대장과 함께. 그리고 내키지 않는 마음은 감추고 그 아이와 함께 앉아 핫쵸코와 팝곤을 사주며 아이스쇼를 보았다.


그 아이는 링크장에서 학교에서와는 전혀 다른 화려한 우리 딸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처음 본 아이스쇼에서 우리 딸이 다른 아이들과 화려하게 공연하는 모습을 보고 완전히 압도된 눈치였다. 이 행사 이후로 이 아이가 우리 딸을 대하는 태도가 완전히 바뀌는 것을 보며 한 가지를 배웠다. 미국 아이들 사이에서 친구가 되려면 뭔가 매력을 끌 만한 점들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거구나!


쿨함. 타인에 대해 호감을 느끼게 하는 기본 요소.

아이들은 아직 어리기 때문에 호감 포인트에 대해 속으로 감추기보다는 즉각적으로 반응한다. 피드백이 바로 왔기 때문에 나도 이 점을 캐치할 수 있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매력을 끌만한 요소가 절대로! 성적은 아니다는 점이다. 아시안 부모로서 나도 '공부 잘하는 아이가 최고'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헌데 이 사건을 계기로 이러한 태도를 버렸다. 아이들 사회에서 '완전 쿨하게' 느껴질만한 것들을 가지고 있어야 친구들이 모여든다는 것을 이때 깨달았기 때문이다. 좋은 성적은 자신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해 가지고 있어야 할 기본적인 요소에 불과하다는 점이지, 다른 이들과 교류할 때 상호 작용을 일으킬 수 있는 매력 포인트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 이후로 나는 내가 엄마로서 '우리 딸은 이래야 한다'는 기준 대신 우리 아이가 원하는 것들로 기준을 바꿨다. 또래들에게 유행하는 것들을 허용했다. 내가 관찰한 바에 따르면 우리 아이는 자기 중심이 확고한 아이였다. 고작 이런 점들 때문에 자신의 본질을 바꾸지는 않을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어른처럼 보이게 할 화장을 하도록 허용했고, 함께 화장품을 사러 갔다. 쿠폰 쓴느 법도 가르쳐 주었다.

대신 학교에서 쓰는 마커를 메니큐어나 타투처럼 쓰지 않고 화장 또한 잘 기로 약속했다.


아이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로블락스 게임을 하도록 허용했다. 로벅스로 쓸 돈은 읽은 책들과 비례해서 주기로 약속했다.


Shein.com이라는 Z세대에서 유명한 사이트에서 쇼핑을 허용했다. 무엇을 사든 잔소리 안 하기로 나도 약속했다. 대신 한 달에 정해진 용돈의 버짓 안에서 사야하고, 이 용돈을 받기 위해 집안일 몇 가지 (쌀씻기와 설거지가 다 끝난 디시워셔 속 그릇들 정리하기)를 하기로 약속했다. 그 이외에 내가 요청하는 집안일들은 도울 경우, 돈을 주기로 약속했고, 버짓 이상의 돈을 쓸 경우 우리 딸이 개인적으로 가진 돈으로 리임버스 하기로 했다. 아이의 13살 생일을 맞이하며 아멕스에서 아이 이름으로 카드도 발급해 14k 목걸이와 함께 주었다.

13번째 생일을 맞이하여 내 계정에 아이의 어카운트를 추가해 카드를 발급해 주었다. 아들용으로는 골드색으로, 딸내미용으로는 핑크골드색으로 발급했다.


아이의 카드는 나의 카드 계정에 아이들의 개인 정보를 추가하여 아이들 이름으로 된 '제대로 된' 카드였다. 한 달에 허용한도를 정해 긁을 수 있어 직접 용돈을 주는 것보다 편리하고, 무엇보다 아이들 신용 관리법을 어릴 때 부터 트레이닝 시키는 효과가 있다. 무엇보다 한 살이라도 어릴때부터 크레딧 히스토리를 만들 수 있다는 장점 또한 있다. 등교 전 매일 우리 달은 친구들이랑 학교 앞 그로서리에서 간식을 사서 나눠 먹는다.이때 이 카드를 내밈으로서 쿨해 보이는 것은 부수적인 효과이다. 그래서 이왕이면 뽀대나는 카드로 탁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통해 나와 우리 딸은 어떻게 해야 친구들을 만들 수 있는지 그 방법을 함께 터득했다. 

솔루션을 찾으니 스트레스 받을 일이 적어지고, 대신 학교 공부와 프로젝트로 그 공간을 채우는 중이다. 

https://www.etsy.com/shop/P0P4RT1LL?ref=profile_header

디지털 아트 선생님께서 우리 아이에게 일러스트한 작품을 etsy에 팔아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하셔서 Etsy에 우리 아이의 샵도 열었다. 학생이자 entrepreneur로서도 작지만 한 발을 내딛은 것이다. 최근 Dabate의 즐거움을 알게 되었는데, 아직 학교 내에 관련 클럽팀이 없다. 우리 부부는 아이에게 이제 클럽 리더로서도 새로운 시작을 해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권하는 중이다. 남편 친구의 아이를 보는 베이비시터로서 돈을 버는 즐거움 또한 배우고 있다.

이제는 학교에 있는 시간이 너무 즐겁고 행복하다고 한다. 정말이지.. 다행이다.


더 나은 '우리'가 되기 위하여

이 모든 해결의 시작이 되어 준 피겨 스케이트를 아직도 우리 딸은 너무나 사랑하기에 매일 새벽 4시반에 일어나 스트레칭을 하고 링크로 연습하러 간다. 아침잠 많은 우리 딸에게 이것은 기적에 가깝다. 이제는 더블 점프들을 만들어가는 동시에, movement test와 새로운 시즌 프로그램도 준비하고 있다. 피겨 스케이터로서 더 높은 단계로 한 발자국씩 나아가고 있는 중이다.

이런 우리에게 1등, 2등이라는 경기의 결과는 그닥 중요하지 않다. 아니다. 우리 딸에겐 중요하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만약 우리 딸이 최소한 캘리포니아 스테이트 급의 스케이터가 된다면, 아마 나의 자세가 달라질지도 모른다)

나는 우리 아이를 프로페셔널한 스케이터로 키우고 싶은 생각도 없고, 친구들과 경쟁시키고 싶지도 않다. 그럼에도 적지 않은 돈을 우리 딸의 피겨 스케이팅 레슨과 장비에 투자한다. 솔직히 살림에 부담이 된다. 어느 정도 수준에 오른 운동하는 아이들을 둔 엄마들은 아마도 공감할 것이다.

우리아이게에 있어 피겨는 더 이상 스트레스 해소 수단도 아니고, 쿨함을 나타낼 수단도 아니지만 그럼에도 내가 1000불이 넘는 스케이트를 사고 새벽잠을 포기해 가며 아이를 아이스링크로 데려가는 이유는 이젠 우리 아이가 다음 단계로 나아갈 준비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https://image.shutterstock.com/image-vector/maslows-hierarchy-needs-scalable-vector-260nw-603660668.

우리 딸은 안전의 욕구와 사회적 욕구, 그리고 존경의 욕구 실현 달계를 지나 자아 실현의 욕구를 실현하기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꾸준한 연습을 통해 매일 매일 더 나은 자신을 만들어 나가는 법을 배우고 있다. 자랑스럽게도 친구들과 선의의 경쟁을 하는 법, 그리고 그 경쟁에서 이겼을 때 진 친구들을 배려하는 법등의 스포츠맨쉽은 이미 배웠다. 더 높은 레벨의 기술을 구사하는 친구들을 보며 질투하기 보다는 그들의 성실함에 존경을 표하고, 자신도 그 아이들을 따라가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물론 그 아이들의 장점을 배우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자세 또한 배웠다. 우리 부부는 우리 아이의 피겨 스케이트 실력에 투자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아이가 그 과정에서 배울 인생의 경험과 자세에 투자 중인 것이고, 이러한 자세는 평생의 자산이 될 것이라고 굳게 믿는다.


우리 아이의 이런 모습을 보며 나 또한 더 나은 어른의 모습이 되야 한다는 자극을 받는다. 그렇기에 우리에게 피겨 스케이팅은 특별하다. 


2021년 10월 28일

E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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