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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CHO Oct 26. 2021

어른이 되어 가는 혹독한 시간들(1)

올 2021년 4월 초, 봄방학이 끝나면서 중학생 작은 아이는 주 2회 학교에 등교했고, 올 9월부터는 정상 등교로 8학년을 시작했다. 코로나가 아직 끝나지 않아 일상으로 완벽하게 복귀했다고 하긴 어렵지만 표면상으로는 그런 것 같아 보인다. 대신 조금이라도 재치기를 하거나 감기 증상을 보이면 무조건 귀가 조치가 되며, 몸상태가 나아져 학교에 돌아올 때는 PCR 음성 결과를 제출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은 정상 등교이다.


우리 딸내미의 가장 최악이었던 시기는 6학년이었다. 

우리 가족에게 2019년 12월 크리스마스는 정말이지 기억하고 싶지 않은 최악의 크리스마스다. 초등학교 때 부터 누적된 스트레스 때문에 6학년이 되면서 이런 저런 자잘한 사고를 치더니, 연말 겨울 휴가 시즌에는 그야말로 대형사고를 친 것. 

학교 선생님들에게 급한대로 도움을 요청하는 미팅으로 2020년을 시작했고, 아이에게 필요한 도움들을 알아보느라 정신없었던 2020년 봄. 이런 상황에서 코로나가 터졌다.


Creator: Justin Lewis | Credit: Getty ImagesCopyright: Justin Lewis

지옥같은 사춘기. 

어른이 되어가는 길목에서 나름 혹독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아이들. 이 아이들의 소위 말하는 ‘못되어 지는’ 수법은 나날이 교묘해지고, 서로의 가슴에 낸 생채기가 아물기 무섭게 또 할퀴어서 상처가 아물 날이 없다. 증거를 남기거나, 대놓고 하는 왕따를 하면 가해자인 자신들이 불리해질 것을  잘 아는 아이들은 교묘하게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 언제든 피해자 행세를 할 수 있게 상황을 조종하는데, 애들 수준이라고 해도 이거 은근 무섭다. 방송국 드라마 작가들도 아닌 6학년짜리들이 매일 매일 적어도 한 편의 '드라마'를 쓴다. 그것도 막장 드라마를.


특히나 아시안이 거의 전무한 우리 학교에서 한 사람의 아시안으로 당당하게 제 목소리를 내고 싶은 우리 아이는 다른 아이에겐  피곤한 존재였다. 전 세계적으로 BTS가 팝 음악의 아이콘이 되고, K-Culture가 대세가 되어도, 자기들의 문화에 갇혀 있는 사춘기 아이들 눈에는 그저 지나가는 하나의 바람일 뿐이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다. '오징어 게임'이 전 세계를 휩쓴 지금이야 다른 양상이지만.


게다가 성격적으로 워낙 외향적이고 활발해 보이는 아이라 선생님도, 친구들도, 심지어 부모인 나조차도 이 아이가 얼마나 상처받고 있는지에 크게 관심이 없었다. 실은 이 아이가 얼마나 마음이 여리고 상처를 잘 받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으면서도, 그러려니 혹은 잘 버텨주겠지..했던 것이 엄마로서 내가 한 가장 큰 실수이다.

방과 후 집으로 오는 길에 내 옆에 앉아 학교에서 있었던 온갖 시시콜콜한 일들을 쉴새없이 조잘거리는 우리 딸. 그런만큼 나는 울 아이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착각했고, 내가 주는 사랑과 관심이 '이 정도면 충분하다'라고 생각했었던 것 같다. 가끔 친구들과 문제가 있어 선생님에게 불려가도 나는 '왜 우리 아이가 이렇게 행동했어야만 했는지'를 설명할 수 있는 설득력있는 정황들을 다 알고 있는 엄마다. 나는 그렇게 우리 아이가 왜 힘들어하는지를 그들에게 이해시키는 것이 부모로서 내 역할이라고 생각했고, 선생님들도 '미처 이런 상황까지는 몰랐었다'며 수긍하는 것에서 나아가, 이렇게까지 세세하게 아이에 대해 알고 있는 것에 대해 놀라워하는 것을 보며, 적어도 나는 애한테 무관심한 엄마는 아니다..라고 스스로 생각했다. 

그렇게 잘 안다고 자부했던 내 아이가, 그렇게 모든 것은 나와 공유하는 듯 했었던 아이가 실은 속으로 곪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8학년이 된 현재, 가장 어렵고 힘든 시기는 지나갔다.

정말 다행이다.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친구도 생겼고, 함께 할로윈 공포 체험을 하러 나갈 친구들도 생겼다. 같은 학교 인기남들이 자기에게 관심 갖고는 연락한다고 한다. 나아가 자신의 문제가 무엇인지 알 것 같다고 한다. 스스로 자신을 객관화하는 법을  깨달은 것이다. 그리고.. 힘들었던 시간을 버텨낸 딱 그만큼 자신감이 생겼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 어렵다는 사춘기의 한 고비를 어떻게 버텨낸 것일까? 이제부터 그 이야기를 해 보려 한다.


원인이 없는 문제는 없는 법.

우리 아이가 무엇때문에 그렇게 힘들어했는지, 그 원인부터 따져봐야 한다.

그런데 아이에게 문제가 생기면 부모로서 이성적으로 접근하기가 참 힘들다.

부모로서 제일 먼저 드는 생각은 '내가 뭘 잘못했나' 자책이다. 아이가 치는 사고가 크면 클수록 자책의 강도는 점점 커지고, 이는 점차 분노로 변한다.

도대체 뭐가 문제야! 도대체 내가 뭘 잘못했는데!

하지만 이러한 감정은 이 상황을 해결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더 상황이 악화된다. 분노하기 보다는 더 나빠지기 전에 알게된 것을 감사하는 쪽이 더 낫다. 그러고 나면 이제 이 문제를 풀기 위해 무엇을 해야할 지가 보인다.


1. 무조건 분리;

일단은 문제의 근원을 제거해야 한다. 근본적인 제거는 힘들지만 임시로라도 아이들을 문제 원인과 한동안 분리시키는 것은 아이의 안정을 위해 절대 필요하다.  우리는 코로나 덕분에 이 부분이 자동 해결되었다. 눈에서 멀어지면 일단 덜 거슬린다.


2. 문제점 파악 및 해결;

미국에서는 아이에게 문제가 생기면 학부모가 언제든 학교에 도움을 요청할 수 있다. 아이가 겪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교사와 학부모, 그리고 학교 당국이 하나의 팀을 짜서 움직인다. 내 경험에 따르면 이런 경우 교장 선생님(혹은 학생 주임), 담임 선생님, 그리고 상담 선생님과 미팅을 한다. 선생님들과 미팅 전에 아이와 힘들었던 점들을 이야기 나누면서 학교에 요청해야 할 사항들을 정리해야 한다. 우리 아이가 힘들었던 점들 중 두 가지를 여기에 공개한다.


선생님들에게 고민도 털어놓고 조언도 받고 싶은데, 먼저 말을 못하겠어요

- 선생님들과 깊은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들이 참 좋은데, 활발해 보이는 겉모습과 달리 굉장히 내성적인 성격 때문에 먼저 선생님에게 다가갈 수 없다고 한다(문제1) 선생님은 이런 우리 아이의 특성을 몰랐으니 신경 못 쓰시는 것이 당연하다 (문제2). 이런 아이의 특성을 선생님들에게 알리고 정기적으로 아이와 미팅을 해 달라고 부탁했다(해결 방안 제시). 선생님들은 그러겠다고 흔쾌히 대답하셨고, 학생주임 선생님(Student Advisor)과 카운슬러 선생님과 정기적으로 아이와 시간을 가지셨다. 코로나 때문에 학교가 락다운 되었을 때에도 카운슬러 선생님께서 이메일로 아이와 연락을 하셨으며, 부분적으로 학교가 오픈되고 난 이후에는 정기적으로 일주일에 한 번씩 학교 부근 음식점에서 점심을 먹으며 아이와 대화하는 시간을 가져 주셨다(문제 해결). 너무 감사해서 아이랑 점심먹는 데 쓰시라고 레스토랑 기프트 카드를 보내드렸다.

더불어 아이가 엄마, 아빠가 아닌 다른 어른들과 이야기하고 싶어한다는 것을 아이와 대화 중에 눈치했다. 그래서 우리 딸의 소울 메이트인 고모와 가족들, 그리고 친한 미국 선생님에게도 우리에게 생긴 사건을 공유하고 도움을 요청했다. 

옛말에 아이 하나를 제대로 키우는데 온 동네 사람이 필요하다고 한다. 우리는 미국 이민자 1세대라 온 동네에 도움을 요청할 수는 없지만 아이가 꼭 필요한 도움을 줄만한 사람들이 다행히 주위에 있었고, 그들의 도움을 받았다. 이런 점에서 학교 선생님들께 너무나 감사하다.


친구들이 나를 이해 못해요. 나도 인싸가 되고 싶어요

- 친구들과 문화적 차이로 인한 트러블, 이건 참 해결이 어렵다. 당장 해결할 수도 없으니 중장기적으로 풀어가야 할 문제다. 일단 트러블이 있는 아이들과 분리가 되었으니, 그 중 우리 딸과 깊은 관계를 가질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아이들과 일대일로 접촉을 했다. 

일단 아이가 보고싶어 하는 친구들 순서대로 만나게 했는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만나는 것' 자체가 아니라 다른 아이들과 접점, 즉 공감대를 만드는 일이다. 더불어 다른 아이들이 우리 딸과 친구가 되고 싶게 만들 '매력 포인트'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동양 학부모들이 흔히 매력 포인트라 생각하는 '공부 잘하는 아이'는 이미 마이너스 요소이다. 일반적인 미국아이들이 동양인에게 갖는 스테레오 타입이 Nerdy Asian인데 이 점을 어필해 봐야 오히려 역효과만 난다.


그래서 나는 또래 아이들이 하는 것들을 하도록 허용했다. 

Roblox게임에 쏟아 부은 돈이 적지 않았지만 게임을 하며 아이들이 채팅으로 어울리니 못하게 할 수 없었다. 요즘에 아이들에게 핫한 브랜드에서 쇼핑도 허용했다. 내 기준에서는 돈 주고 쓰레기를 사는 것처럼 보였지만, 십대들은 안 그렇다니 존중해 줄 수 밖에. 화장도 허용했다. 미국 아이답게 아이라이너 한 통을 쓰는데 일주일이 채 안 걸렸지만 놔두었다. 단 화장품으로만 화장을 하고, 화장을 잘 지우겠다는 전제를 붙였다. 

여기에 우리 딸=Nerdy Asian이라는 편견을 깨 줄 무엇인가가 필요했다. 그것을 나는 우리 딸이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해 왔던 피겨 스케이팅으로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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