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포니아의 새로운 발달 장애 서비스
2025년이 단 3일 남았다.
우리 가족에게 2025년은 다시 기억하고 싶지 않은 최악의 한 해였다. 2025년이 지나가는 것이 하나도 아쉽지 않을 정도다. 그렇지만 호야에게는 상당히 의미 있었던 한 해였다.
나는 2023년부터 발달 장애인들이 자신의 장점을 중심으로 미래 계획을 세우고(Person Centered Plan; 사람 중심 계획), 이 계획에 따라 장차 자신의 삶의 목표를 달성해 나가는 데 있어 자신에게 요구되는 니즈에 맞추어 발달 장애 서비스를 구성하는 Self Determination Program (자기 결정 프로그램)의 독립 협력자 교육을 2년 동안 받아왔고, 2025년 2월에 본격적으로 ECHO Labs, designed for ME라는 LLC 회사를 설립해 샌디에고 리저널 센터의 정식 벤더로 등록하여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호야는 나의 첫 번째 고객으로 지난 6월부터 자기 결정 프로그램에 따라 기존의 전통 서비스에서 벗어나 새롭게 구성된 서비스를 제공받고 있다. 발달 장애인의 니즈에 초점을 맞춘 기존의 전통 서비스는 고기능성 발달 장애인인 호야에게는 적합하지 않은 서비스들이 많았다. 호야는 자기 결정 프로그램으로 전환하면서 기존의 전통 서비스에서 받지 못한 개별화된 서비스로 '자립'이라는 자신의 목표를 향해 힘차게 첫 발을 뗀 것이다. 우리 가족에게는 최악의 해였던 2025년에 말이다.
캘리포니아의 리저널 센터에 등록된 발달 장애인 고객이라면 누구나 Respite Service를 받는다. 일종의 베이비 시팅 서비스로 발달 장애인 아이를 돌보느라 지친 부모님에게 휴식 시간을 주기 위해 마련된 서비스이다. 우리는 이 서비스를 매번 제대로 받지 못했다. 시간 맞추기도 어려웠고, 서비스 제공자인 Respite Worker가 너무 자주 바뀌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서비스에 호야의 베프인 마테오 엄마를 등록시켰다. 마테오 엄마는 호야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임금을 받는다는 사실에 연거푸 서비스 제공자로 등록하는 것을 거절했지만, 우리 부부는 '그래야 당신도 호야 케어에 더 진정성을 가지고 임할 수 있다'는 논리로 그녀의 고집을 꺾었다.
호야는 주말에 종종 마테오네 가서 마테오네 개 츄로도 돌보며 마테오 엄마와 함께 놀다 온다. 호야의 친구들도 또래 멘토 (Peer Mentor)로 등록시켜 함께 저녁에 밥도 먹고 영화도 보고 온다. 이들은 호야와 가장 가까운 곳에서 호야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다.
'자립'에 있어 필수인 '경제적 자립'은 취업으로 달성된다. 그런 면에서 호야의 레고랜드 인턴십 프로그램에 대한 서포트는 호야에게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호야는 직장에서 자신을 코칭하는 Job Coaching 서비스뿐 아니라, 직장 밖에서도 자신을 코칭하고 자신의 적성을 지속적으로 탐색하는 서비스인 Employment Support도 받고 있다. 그리고 집에서 직장까지 통근 서비스도 우버/리프트를 통해 받고 있다. 호야가 시간당 최저 임금을 받으며 일을 하는데 파생된 직종들이 이렇게 많은 것이다.
발달 장애인의 건강 관리 및 취미 생활도 중요하게 여겨진다. 호야는 SDSU에 설치된 adaptive gym에서 일주일에 두 번 개인 PT를 받는다. 호야는 비록 세 번째 수업에 부상을 당하기는 했지만 서핑 개인 레슨도 이 서비스를 통해 받았고, 앞으로 서핑 대신 요리 수업과 가드닝 수업을 함께 받으려고 준비 중이다. 스키캠프도 웨이팅 리스트에 걸어두었지만 발목이 다친 호야에게는 아직 무리일 것 같아 다른 캠프도 알아보고 있다. 호야가 노래 부르고 춤추며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Theator 수업도 준비 중이다.
이러한 서비스를 지난 6개월 동안 받은 호야는 올해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그 내용을 간단하게 정리하면
1. 이메일 및 글 쓰는 실력이 일취월장했다.
호야의 글쓰기는 중구난방이었다.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인지 알아내기가 어려울 정도로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들을 의미 없이 늘어놓는 것이 호야의 글쓰기 특징이었다. 업무용 글쓰기라고 볼 수 있는 이메일도 다르지 않았다. 본인만이 알 수 있는 알고리즘으로 연결된 사실들을 나열하는 것에 그치지 않았던 호야의 글쓰기가 올해 집중적으로 회사에서 트레이닝을 받은 탓인지 현저하게 좋아졌다. 올해 호야에게 받은 크리스마스 카드는 깜놀 그 자체였다. 호야는 2025년 한 해 동안 자신을 헌신적으로 서포트한 나와 남편에 대해 감사하는 것에 대해서만 카드를 썼다. 전에 없는 일이었다.
2. 프레젠테이션 실력도 상당히 성장했다.
호야의 인턴십 프로그램은 매 달 1번씩 취업 계획 미팅을 한다. 매 달 같은 템플릿의 PPT를 작성하기 때문에 처음에는 호야의 직업 코치가 많이 도와주었지만, 최근에는 모두 호야가 작성한다. 매 달 같은 템플릿에 작성하기 때문에 호야의 성장을 비교해 볼 수 있는 자료이다. 호야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리저널 센터의 서비스 코디네이터, 캘리포니아 재활국의 케이스 매니저 등이 앞으로 이 자료를 가지고 호야의 가능성에 대해 논의하게 될 것이다.
글쓰기에 비하면 프레젠테이션 실력은 더 성장시켜야 하겠지만, 스스로 PPT를 작성하는 것은 호야에게 큰 발전이다.
3. 사회성 향상
인간에게 '직업'이 얼마나 중요한지 부모인 우리로 하여금 깨닫게 하는 항목이다.
여전히 호야는 화가 났을 때 스스로 어떻게 컨트롤해야 하는지 좀 더 트레이닝을 받긴 해야 한다. 그럼에도 자신의 기분을 바꾸는데 소요되는 시간이 현저히 줄었다. 화가 났을 때, 부정적인 감정에 휩싸여 충동적으로 욕설을 내뱉거나, 폭력적인 행동을 하면 계속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이미 배웠기 때문이다. 내가 원하는 곳에서 일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컨트롤해야 한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어떻게 행동해야 팀원들이나 주변 사람들이 불편하게 느끼지 않는지에 대해 설명했을 때 호야가 훨씬 쉽게 받아들인다. 그전에는 이런 조언들을 엄마의 잔소리쯤으로 여겼던 호야다. 사회에서 밥벌이하고 살기 위해서는 타인을 어떻게 배려해야 하는지, 직장에서 이성/동성 동료들에게 해야 할 에티켓은 무엇인지,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등을 실전으로 배우고 있으며, 자신을 변호하기 위해 상황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설명해야 하는 것의 중요성 또한 배우고 있다. 결과적으로 호야가 말을 좀 더 조리 있게 한다. 앞으로 이 부분은 계속 연습을 해야 하겠지만 결과적으로 사회적으로 호야가 많이 다듬어졌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거기에 특유의 친화력이 더해져 호야의 팀원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우리에게 2026년에 중요한 일 중 하나는 호야가 레고랜드에서 정직원으로 전환이 되느냐의 여부이다.
4. 가족과의 관계 향상
호야를 서포트하는데 나뿐 아니라 남편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호야와 우리 부부의 관계가 급격히 개선되었다. 남편은 내가 보지 못하는 호야의 장점을 캐치해 내고, 이 부분을 호야의 눈눞이에 맞춰 개발하는데 많은 관심을 쏟고 있다. 호야가 사진에 취미를 갖게 된 것은 아빠가 자신의 팀 경기 사진을 찍게 되면서 자신의 친구들이 아빠와 친구처럼 지내게 된 것을 옆에서 본 것이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아빠가 워터폴로 팀에서 '포토그래퍼'라고 새겨진 후디를 받았는데 호야는 그 후디를 그렇게 탐을 냈다. 이걸 본 남편은 호야에게 '너도 사진을 잘 찍고, 사진 찍는 거 좋아하니 아빠랑 같이 사진 찍으러 나갈래?'라고 제안을 했고, 그렇게 둘 만의 출사가 시작되었다. 남편은 호야의 '시각'이 담긴 사진으로 전시회를 열고 싶어 한다. 이 꿈이 언제 실현될지 모르겠지만, 그 꿈을 향해 함께 달려 나가는 과정 자체도 충분히 의미 있기 때문에 우리는 같은 곳을 바라보며 같은 꿈을 꾸는 중이다.
나 또한 호야의 미래에 대해 6개월 전보다 훨씬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언젠가 호야가 자신의 '가족'을 꾸리게 될 날이 한 걸음씩 다가오는 느낌이다. 하늘에 떠 있는 뜬구름 같았던 나의 목표가 조금씩 우리를 향해 다가오고 있는 것 같아 호야에게 더 자주 웃는 모습을 보이게 되고, 여유 있고 긍정적인 자세로 대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호야의 자존감도 치솟고 있다.
동생이 2026년 9월에 대학에 진학하고 나면 호야는 자신의 미래에 '대학'이라는 카드를 집어넣을 수도 있다. 최근 자동차 정비에 엄청 관심을 보이고 있어서 크리스마스 선물로 정비 관련 책을 사주었다. 시간을 갖고 관련 책을 보면서 직접 배우고 싶다는 말을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때가 바로 호야가 대학에서 공부를 할 타이밍일 것이다. 언젠가 올 그날까지 2026년도도 호야와 함께 차근차근 준비를 해 나갈 참이다.
2025년 12월 29일
E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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