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야의 나의 선생님 (13)
고등학교로 진학한 2019년 9월부터의 이야기는 얼룩소에 이어 연재하였다. 블로그 플랫폼인 얼룩소가 현재 서비스 중지되어 이후의 글들은 현재 찾아볼 수 없으므로 여기에 다듬어 다시 올린다.
적재적소에 우리가 필요로 하는 선생님들을 만났고, 그들을 통해 우리 부부도 많은 것을 함께 배워나갔다. 이를 테면 아무리 좌절스러운 상황이더라도 감정을 배제하고 틴에이저 아이와 이성적으로 대화하는 법, 어리고 미성숙해도 하나의 완전한 인격체로 존중하는 태도 등이 바로 그것들인데, 부모인 우리보다 선생님들이 이런 면에서 훨씬 뛰어나다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선생님들이 자신의 입장을 충분히 들어주고, 받아주고, 위로해 준 후에 아이를 훈육하니 훈육을 받아들이는 아이의 태도도 우리가 감정적으로 대할 때와는 확실히 달랐다. 우리는 이런 부분들을 계속 관찰하고, 반성하고, 또 고쳐 나갔다.
6학년을 마칠 당시, 나는 호야에게 문장 혹은 상황을 해석하는 능력이 떨어지는 것이 자폐적 성향 때문인지, 아니면 comprehension 이슈 때문에 아이가 언어 구사 능력이 떨어지고, 그 결과 자폐적 행동을 보이는 것인지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다시 말해 자폐적 성향과 문해력/이해력이 어떤 것이 원인이고, 어떤 것이 결과인지에 대해 의심하고 있었다. 그래서 관련 단체를 찾던 중, San Diego에서 가장 큰 교육대학원을 가지고 있는 San Diego State University 산하에 읽기 능력에 문제가 있는 아이들 대상으로 연구하고 서포트하는 기관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힘들게 예약을 잡아 호야의 테스트를 진행했다.
원인과 결과의 선후 관계에 대해 의심을 했으나 인과관계 변화는 없었다. 허나 그 과정에서 소중한 인연을 얻었다.
테스트 결과 ‘아이의 독해 능력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이의 자폐 성향 때문’이라는 기존에 우리가 알고 있었던 사실이 재확인되었다. 검사 결과를 설명해 주던 센터 소장님은 다음과 같이 우리에게 말했다.
우리 기관에서 호야를 위해 해 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요. 헌데 샌디에고 내 다른 곳에는 있네요.
네? 그 사람이 누구죠?
바로 호야의 특수반 선생님이었던 Phyllis Perlroth입니다. 필리스는 내 오랜 친구예요. 호야가 테스트를 받으려고 함께 제출된 서류를 보던 중, 아이의 IEP(Individual Education Plan)이 특히 인상적이었어요. 어떤 선생님이 이렇게 공들여 아이의 IEP를 썼나 싶어 작성자의 이름을 보았는데, 바로 내 친구더군요!
나와 필리스가 호야에 대해 서로 이야기하려면 당신의 동의가 필요하기 때문에 필리스와 호야 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지는 못했지만, 지금으로선 그녀가 호야의 문장/상황 해독력을 높일 수 있는 사람이라고 여겨지네요.
https://brunch.co.kr/@cbeta02/128
선생님과 개인 튜터링을 시작하기 전 우리는 호야의 독해력에 대해 테스트를 보았는데, 7학년 학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문장을 읽고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은 2학년 레벨로 측정되었다. 선생님이 아이에게 가르치시는 것은 Visualization & Verbalization 방식이었다. 자폐아들은 책을 읽으며 작은 디테일에는 상당히 집착하지만, 정작 그 내용들을 이해하고 큰 맥락을 파악하는 것에는 상당히 애를 먹는다. 글을 읽으며 머릿속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을 선생님께서 호야와 함께 책을 읽으며 중점적으로 반복적으로 연습시키셨는데, 놀랍게도 약 6개월 만에 호야의 읽기 능력이 5학년 레벨까지 뛰어올랐다! 필리스 선생님은 학습적인 측면에서 호야의 가능성을 이끌어 내기 시작했다. 선생님도 호야의 케이스를 맡은 이후로 학교를 은퇴하시고 호야와 같은 아이들을 서포트하는 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셨다. 호야는 선생님의 1호 클라이언트였다.
인생의 봄은 자폐인에게도 예외가 없는 법. 헌데 이 사춘기를 별 탈없이 넘기는 것 또한 쉬운 일이 아니다. 일반 아이들도 사고뭉치가 되는 질풍노도의 시기인데, 하물며 자폐아들이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아이인 아들이 남자가 되는 과정은 비록 엄마일지라도 당혹스러운 경우가 종종 있다. 엄마도 준비가 안 되어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이 시기에 자폐 학생 포함 남학생들이 성과 관련된 사고를 친다는 것을 다년간의 경험을 통해 미리 알고 있었던 필리스 선생님은 어느 날, 조용히 나를 불렀다. 그리고는 물으셨다. 성인 남자의 성욕을 푸는 방법에 대해 엄마인 내가 어디까지 허용할 수 있는지를 말이다.
나는 "호야도 남자인 이상 성적인 욕망을 스스로 해결하는 것은 괜찮다고 생각한다’고 대답했다. 내 답을 들은 선생님은 호야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사적인 공간에서는 네가 어떤 행동이나 행위를 해도 상관이 없다.
여기서 말하는 ‘사적인 공간’은 네 방이나, 샤워실을 의미한다.
그러면서 이 ‘사적인 공간’에 대한 정의를 제대로 해 주지 않아 학교 화장실에서 일을 벌인 남학생의 예를 나에게 설명하며, 호야에게 재차 학교 화장실이 ‘프라이빗한 공간’이 맞는지 물으셨다. 호야가 바로 대답을 못 하자, 그곳은 너희들 모두가 쓰는 공간인 만큼, 칸막이가 있어도 사적 공간이 될 수 없으니, 그곳은 피해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 짚어주셨다.
선생님이 말씀해 주셨던 여러 사고들 중 하나를 우리 아들도 학교에서 저질렀다. 아들의 프라이버시 때문에 무엇이었는지 여기에 풀어놓을 수는 없지만, 사전에 많은 아이들이 이런 종류의 사고를 친다는 것을 미리 알고 있었던 것은 내가 이 사건을 좀 더 이성적으로 처리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모르는 상태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면, 당황하고, 좌절하고, 속상해하고, 아이를 원망하게 된다. 이러한 과정은 아이의 훈육에 있어 절대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선생님의 도움으로 나는 이 사건도 아이와 감정적으로 나빠지지 않으면서, 현명하게 잘 처리할 수 있었다..
선생님의 경험이 빛나는 순간, 바로 이럴 때, 나는 선생님에게 감탄한다. 20년이 넘는 선생님의 경력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학부모가 아이와 직접 이야기하지 못하거나, 이야기해야 한다는 사실조차 모를 때, 먼저 다가가 적재적소에 필요한 교육을 먼저 하시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필리스 선생님은 호야에게 최고의 선생님이기도 하시지만, 나에게도 최고의 상담가이며 멘토이시다. 그리고 그녀는 이제 우리 가족의 일부이다.
2023년 8월 30일
ECH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