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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차 전업맘의 특별한 출장길

첫 번째 출장의 기록, 자기 결정 프로그램의 미래

by ECHO

오늘은 조금 전문적인 글이다.


엄마이자 호야의 독립 협력자로 일한 지 이제 5개월 차다.

아들 서포트하느라 20년을 전업으로 살았지만, 아들에게 독립 협력자로 고용되어 일한 지 5개월 차다.

그 사이 아들 말고도 몇몇 케이스도 맡아서 진행했다. 그중 자기 결정 프로그램(SDP)으로 전환이 거의 마무리된 클라이언트도 있다.

독립 협력자로 인증서를 받았지만, 일을 하면 할수록 경험과 함께 끊임없이 공부를 해야 하는 일임을 느낀다. 자기 결정 프로그램은 아직 완성된 단계가 아니기 때문에, 매 해 변화하고 있고, 이러한 변화를 따라가며 전략을 잘 세워야 나의 클라이언트에게 더 좋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내가 공부한 만큼, 내가 맡은 케이스에 시간을 투자하는 만큼 내 클라이언트인 발달 장애인의 인생을 긍정적으로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이 프로그램에 참가하는 많은 발달 장애인과 그 가족이 이 프로그램이 우리의 삶을 바꿨다고 증언한다. 이 증언이 과장이 아니며, 우리 가족의 삶 또한 바뀌었다는 것을 나 또한 증언할 수 있기에 우리의 Team HOYA 멤버들은 호야의 자립과 취업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새로운 것을 시도한다.

비록 발달 장애인이어도 내 삶을 내가 스스로 컨트롤한다는 것. 이것이 바로 자기 결정 과정이 가진 가장 큰 힘이다. 바로 발달 장애 서비스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다는 점에서 더더욱 그렇다.


캘리포니아 발달 장애국과 이 자기 결정 프로그램을 만든 Disability Voices United (이하 DVU)에서 주관한 자기 결정 프로그램 컨퍼런스가 오늘 LA에서 열렸다.

발달 장애인이 공교육을 받고 현재 신경 다양성의 측면에서 존중받기까지 이들의 역사에서 캘리포니아, 특히 남 캘리를 빼놓고 이야기하기는 힘들다. 전반적으로 발달 장애인에 대해 선진적인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고 여겨지는 미국에서, 특히 캘리포니아는 선도적인 위치에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심축으로 여겨지는 남가주에서 열리는 컨퍼런스인만큼 상당히 중요한 행사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나 신참 독립 협력자인 나는 이 행사의 의미도, 취지도 이해하지 못했고, 무슨 핑계를 대고 안 갈까 고민하던 찰나, 나에게 독립 협력자로 길을 열어주신 Korean SDP Network의 설립자이신 최경실 선생님께서 한 마디를 하셨다.

이렇게 줌으로만 만나지 말고 직접 얼굴 좀 봅시다!


오렌지 카운티와 엘에이 일대에서 한국인 발달 장애 커뮤니티를 위해 왕성하게 활동하시는 많은 선생님들과 네트워킹을 할 수 있는 천금 같은 기회다. 남편과 의논을 하니 둘째 라이드는 걱정하지 말고 다녀오라며 뽐뿌질을 해댄다. 가서 컨퍼런스 못지않게 네트워킹도 중요하니 이런 중요한 기회는 놓치지 말라면서.. 그렇게 해서 시작된 출장 여정.

한참 원서를 쓰느라 바쁜 둘째도 엄마가 출장간다니 너무 좋아한다.

이 녀석이 유치원 다닐 때, 다시 공부를 해 볼까 싶어 커뮤니티 컬리지 수업을 들었었는데, 엄마 일하지 말라며, 공부하는 거도 싫다고 징징댔던 것이 어린 마음에 아직도 남아 있었는지, 엄마가 발달 장애인들을 위해 이렇게 일하는 것이 너무 쿨하고 자랑스럽단다. 그러면서 꼭 이 출장도 가라고 신신당부한다. 그렇게 가족들의 응원과 지지를 받으며 아침에 LA행 기차에 올랐다.

LA 유니언 스테이션까지 가는 기차가 그다지 쾌적하지 않았던 기억이 있어서 이번에는 비즈니스석으로 끊었다. 편도에 15불만 더 내면 되니, 부담스러운 가격도 아니라 더더욱 그렇게 했다. 샌디에고-LA 기차 여행은 워낙 아름답기로 소문난 구간이다. 태평양을 끼고 달리기 때문이다. 2시간 10분이라는 운행 시간도 부담 없이 기차 여행을 즐길 수 있는 시간이다. 비즈니스석 구간 승객들에게 주는 커피와 스낵을 먹으며 비록 역주행 좌석이기는 했지만 바닷가를 보며 달리는 기분이 제법 근사했다.

이 행사를 서포트하시는 최경실 선생님과 Being Built Together (BBT)의 백진숙 선생님, 그리고 한국인 최초의 독립 협력자이신 Jaimy Cha 선생님은 호야의 자기 결정 프로그램을 준비하면서 전화로 많은 도움을 주신 분들이다. 그분들에게 직접 감사의 인사도 전하고, 신참내기 독립 협력자로서 고충을 나누고 조언도 들었다. 그리고 오렌지 카운티와 LA를 주로 활동하시는 선배 독립 협력자분들, 그리고 매번 수업 때마다 통역 서비스를 제공해 주시는 헬렌 박 선생님과도 서로 네트워킹을 하며 컨퍼런스에도 참석해 자기 결정 프로그램에 대한 현황과 고민, 최근 수정된 발달 장애국의 새로운 지침에 대해 정보를 얻었다.


최근 발달 장애국에서는 캘리포니아 전역에 있는 21개 리저널 센터에 대한 표준화를 진행 중이다.

리저널 센터의 고객인 발달 장애인들은 모두 개별적인 개인화 계획 (IPP)를 가지고 있는데, 이 양식이 각 리저널 센터마다 다르다. 그로 인해 같은 캘리에서도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가면 이 개별화 계획을 소속된 리저널 센터에서 요구하는 형식으로 바꿔야 하는 불편함을 없애기 위해 이 계획의 양식을 통일하는 일을 해 왔다. 거의 이 일이 마무리가 되어가는 상황에서 발달 장애인들에게 할당된 예산을 직접 집행하는 Finance Management Service (FMS)도 표준화하고, 약 400,000명의 발달 장애인 중 8000명 정도가 현재 사용하고 있는 SDP 서비스의 상당 부분 역시 표준화 작업에 들어갈 것임을 예고했다. 클라이언트인 발달 장애인들에게 제공되는 서비스 요율도 최대 상한선을 정하는 등, 대대적인 개편 작업이 예정되어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2026년 8월부터 새로운 지침에 따라 자기 결정 프로그램도 많은 부분들이 바뀔것이라고 발달 장애국의 부국장인 Yang Lee씨가 보고하였다.


발달 장애인 정책 전반에 관련해서 일반인들도 모두 예상하고 있다시피, 미국 연방 정부의 메디칼 예산 삭감은 발달 장애인들의 지원에 상당한 악영향을 줄 것이라 한다. 현재는 발달 장애인들의 서비스를 그대로 제공하겠다는 개빈 뉴섬 주지사의 노력으로 상당 부분 삭감된 예산을 주정부에서 메꾸고 있어 2026년 서비스까지는 이대로 지속할 수 있을 것이라 예상되지만, 2027년부터가 문제이다. 주지사의 3선 연임이 금지되는 캘리포니아 주 법 때문에 2027년부터 새 임기를 시작하는 주지사가 어떤 사람이 당선되느냐에 따라 발달 장애인 서비스에도 큰 영향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다시 말해 2026년 주지사 산거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경제 상황이 안 좋다고는 하지만, 정작 본격적인 전쟁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다는 것. 그러니 마음 단단히 먹고 서로 연결되어 움직여야 한다는 것이 오늘 컨퍼런스의 결론이었다.


이 의견들을 종합해 내 개인적인 생각을 덧붙이자면, 자기 결정 프로그램이 내년 8월부터 예산을 확보하는데 좀 더 엄격한 기준이 적용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예산 증액이나 확보가 쉽지 않을 것이며 이를 시작으로 발달 장애인 전반에 대한 서비스를 받기가 쉽지 않아 질 것이다. 이는 비단 리저널 센터에서 제공하는 서비스뿐 아니라, 저소득층에게 제공되는 메디칼 서비스의 축소 및 카운티에서 제공하는 In-Home Support Service 등의 축소 또한 의미한다. 이러한 서비스들의 축소는 서비스의 수혜자들인 발달 장애인들에게만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다. 발달 장애인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수많은 서비스 제공자들 또한 일거리를 잃을 것임을 의미한다. 호야 1명이 레고랜드에서 일을 하는데, 집에서 레고랜드까지 통근 시키는 우버 운전사, 그리고 레고랜드에서 근무하는 것을 돕는 잡 코치 등 상당한 금액의 서비스가 발생한다. 이 서비스들을 정부에서 지원함으로서 양질의 사회적 일자리들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호야는 사회의 일원으로 도움을 받으며 자신의 몫을 해낼 수 있는 ‘트레이닝’을 받는 것은 덤이다. 그렇지 않다면 호야는 생산성이 0인 상태에서 평생 무의미하게 시간을 보내야 한다. 똑같은 양의 Input을 투입하여 생산성이 +인 상황과 0인 상황. 정부의 입장에서 어떤 선택이 더 경제적인가?


그럼에도 이미 트럼프 대통령이 메디컬 예산을 삭감하는 안에 사인을 한 순간 상황은 바뀌었다. 이에 대한 나의 전략은 다음과 같다;


1. 자기 결정 프로그램을 포함한 리저널 센터에서 서비스를 받고 있는 발달 장애인들은 자신이 받고 있는 서비스 진행 상황과 이로 인한 발달 장애인들의 진행 상황에 대해 최대한 많은 기록을 남겨, 향후 발달 장애국에서 서비스 축소 시 그 원인으로 지목할 증거 기반 주의에 미리 대비한다.

2. 자기 결정 프로그램으로 전환을 생각하고 있다면 내년 8월 전까지는 어떤 식으로든 예산을 확보하고, 프로그램을 시행한다, (프로그램 전환에 최소 6개월 이상이 걸리는 만큼 이 프로그램에 참가할 의향이 있다면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전환을 시작한다), 그리고

3. 예산이 축소될 상황을 미리 예상하고 여기에 맞춰 자녀의 계획을 조정한다. 예를 들어 자녀를 독립 시킬 계획이 있었다면 일정을 조정한다든가 하는 것이다.



로 제안할 수 있겠다. 오늘 컨퍼런스 참가 후, 나도 호야의 자립 계획에 약간 수정을 하는 것으로 방향을 잡았다. 최대한 빨리 독립시키는 쪽으로 최근 마음을 바꾸었는데, 일단은 잠정적으로 보류다.


어딜 가나 경제적으로 힘들고 비관적인 이야기들이 넘치지만, 그럼에도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그나마 마음이 덜 무거운 것은

역시 암트랙 비즈니스 고객들에게 제공하는 와인에 함유된 알코올이 기분 좋게 혈관을 타고 퍼져 나가고 있기 때문이며,

어느 날 갑자기 마른하늘에 날벼락처럼 비관적인 상황을 맞닥뜨리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 안 좋은 상황을 예측하고 구체적으로 대응 전략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비록 내 클라이언트가 많은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내 자식을 위해 최고의 서비스를 하고 있다는 것. 이것 하나 만으로도 엄마로서 뿌듯하고, 왕복 네 시간의 기차 여행도 감수할 만한 가치는 충분히 있었다.

첫 한 걸음을 내딛기가 어렵지, 두 번째 훨씬 쉬운 법.

앞으로 이런 좋은 컨퍼런스는 자주 참석해야겠다. 열심히 한국인 발달 장애 커뮤니티를 위해 일하시는 선생님들께 힘도 드릴 겸 해서 말이다.


2025년 11월 19일

샌디에고로 돌아가는 Amtrak 784 Surfliner 안에서, E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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