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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야의 콩트

늦둥이

by 최병석

운찬 씨는 딸만 둘인 소위 말해 금메달감으로 손색이 없는

딸바보 아빠였다. 딸이면 좋았다. 그리고 두 딸들 때문에 시간 가는 줄 몰랐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들의 재롱에 손짓에 몸놀림에 애교까지 게다가 주변에서 금메달까지 걸어주기까지 하니 더할 나위 없었다. 두 딸들은 어여쁘고 곱게 사랑스럽게 잘 자라주어 어엿한 초등생 고학년이 되었다. 이제 딸들에게 아빠는 슈퍼맨이자 박사이고 해결사로 등극하였다.


그러다가 덜컥 불량콘돔의 영향력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제품의 완전성에 철석 같은 믿음으로 기대었다가 예상치 못한

늦둥이를 잉태하게 된 것이다. 정녕 그럴 리가 없었다. 아니 그럴 수가 없었다. 다른 것도 아니고 별다른 이유도 아닌 불량콘돔 때문에 아이를? 이럴 확률이 몇 프로나 될까나?


처음엔 괜스레 죄 없는 아내를 의심했었다. 설마 밖에서 외도를? 펄쩍 뛰는 아내를 취조하듯 찔러댔지만 그야말로 그럴 수는 없었다. 사랑으로 둘둘 말아 뚝뚝 떨어지는 가정이라고 자부하던 운찬 씨 주변에서 결코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사실 운찬 씨의 잘못으로 기인한 사건(?)인데 아내한테만 닦달을 하고 있는 형국이 아니런가? 운찬 씨가 재빠른 사과의 손길을 내밀었고 아내도 덥석 그 손을 잡아주었다.


결국 이런 엉터리 같은 이유로 태아명 <불콘>이라 불리는 늦둥이가 세상에 얼굴을 내밀었다. <불콘>은 아들이다. 딸바보로 굳어진 그의 행적이 순식간에 늦둥이를 끌어안은 모양새다. 두 딸들도 한참이나 어린 늦은 동생에 열광하는 분위기다. 나이 먹은(?) 엄마를 도와 이리저리 손을 돕는다. 주변의 어르신들도 늦둥이가 더 예쁘다며 <불콘>에 대한 열광에 가세한다. 딸바보였던 운찬 씨가 보니 딸도 딸이지만 뒤늦게 아들로 태어나준 <불콘>이 귀엽기까지 하다. 하여

<불콘> 보기가 심히 좋았더라. 이리도 보고 저리도 보고 날마다 늦둥이를 보는 재미에 시간 가는 줄도 모르더라. 시간은 잠깐이라 그 <불콘>이 제 어미 품을 떠나 엉금엉금 기더니 제법 앉기까지 하였다.


운찬 씨의 퇴근시간이 빨라졌다. 가는 길에 <불콘>이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을 한 보따리 장만했다. 녀석이 좋아할 모습에 웃음까지 지어진다. 집에 들어서니 아들의 환영이 대단하다. 그 환영이 본인인지 아이스크림인지 잠시 헷갈리기도 했지만 어쨌든 기분최고다. 운찬 씨는 아들 <불콘>을 번쩍 안아 들었다. 그리고 아내가 저녁식탁을 꾸리는 동안 소파에 앉아 TV를 켰다. 아들 <불콘>을 으스러지도록 끌어안은 채 활발하게 움직이는 손흥민의 발놀림을 쫒던 차였다.


"뻐~뻑! 에쿠"


이런 사달이 났다. 갑갑함에 순간 아들 녀석이 몸부림을 쳤다. 솟구치는 아들 녀석의 머리가 운찬 씨의 턱을 제대로 강타했다.


성이 기가요 이름이 운찬인 <기운찬>씨는 넘쳐나는 에너지를 발산하는 기운찬 아들 녀석의 몸부림 때문에 입안에 간직하고 있던 대문짝만 한 옥수수 두 개와 송곳니 하나를 털어내고야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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