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의 역습
전해씨는 요즘 허전함을 금할 길이 없다. 나이를 먹으니
주변머리는 그나마 자리를 잡고는 있지만 숨겨놓았던
정수리를 순식간에 내어놓고 마는데 소위 말하는 <속알머리>의 본모습을 까 발리기를 주저하지 않고 있으니 문제라면 문제였다. 사실 전해씨는 유전적으로도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다소 훤한 앞이마를 고스란히 물려받을 자격이 있음에 잔뜩 긴장하고 있었던 중이었다. 불과 작년까지만 해도 멀쩡했던 이마의 평수가 올해 들어 갑자기 늘어나는데 그 속도가 시속 200킬로를 육박하는 듯했다. 아침에 출근을 위하여 머리를 샤워기에 맡겨놓기라도 하면 배수구거름망을 넘지 못하고 걸쳐있는 머리카락이 새까맣다. 샴푸거품이 따가워 감았던 눈을 떴다가 시원해졌을 마음이 새까맣게 걸려있는 머리카락처럼 타버리고 말았다. 타들어간 마음이 아프다. 날마다 거울의 타박을 견디다 못해 투덜거리는 아버지를 바라보던 딸내미가 급기야는 선물을 준비했다.
"아빠! 사라진 머리카락, 제가 심어드리면 안 될까요?"
"딸아! 그게 그렇게 심기만 해서 될 일은 아니잖니?"
"그럼 아빠! 여기 이 샴푸로 머리를 감아 보세요, 상황을 보고 나서 결정을 하시는 게 좋을 거 같아요"
"이 샴푸는 뭔데 그랴?"
"아빠! 이 샴푸는 그저 머리만 감기만 해도 빠진 머리카락 수를 현저하게 회복시켜 준다는 요즘 핫한 샴푸예요"
"아니 그런 신박한 샴푸가 다 있어?"
전해씨는 딸내미가 하도 고마워 샴푸 쓰기를 주저하지 않고
따박따박 머리를 감았다. 그러고는 지적질에 열을 올리는 거울의 형편을 살폈다.
"딸! 딸아! 이거 봐라, 이거 여기 머리카락이 풍성해지지 않았니?"
털리지 않는 입을 꼭 다물고 있는 거울보다 금방이라도 출중한 리액션을 방출할 딸내미가 소중한 머리카락의 존재를 확인시켜 준다.
"어머나 아빠! 이러다 방송국에서 촬영섭외 들어오는 거 아녜요? 금방 풍성해지겠어요!"
그래서인가? 입을 다물고 있던 거울도 한마디 거둔다.
'가만 보니 그 허전했던 이마의 평수가 좀 사그라든 것 같네'
딸내미에 이어 지적질만 일삼던 거울까지도 휑했던 <속알머리>의 채워짐을 축하해주니 위축되었던 자존감이 대뜸 기세를 올리며 분위기 탱천한다. 사실 이마와 머리카락이슈가 불거지고 나서 그의 행보는 주춤할 수밖에 없었다. 이게 뭐라고 괜히 사람들의 시선이 따갑고 신경이 쓰이고 하다못해 외출하기도 싫어지더란 말씀이었다. 그런데 이제 그의 행보에 변화가 감지되었다. 이제 나가도 되었다. 일단 딸내미와 거울의 합격점을 받아 놓았으니 안심이다.
오늘은 오랜만에 초등학교 동창들을 만나는 날이다. 다들 나이가 들어 쭈글거리는 상태로 만나지만 그중에서도 남들과 다른 동안의 소유자였던 전해씨가 오늘도 납신다. 친구 놈들보다 최소 5~6세 이하로 봐주던 얼굴이 갑자기 도드라진 이마평수로 기인하여 오히려 4~5세 더 나이 먹은 놈으로 변신할 뻔했던 요 며칠을 특별한 기억으로 삼으며.
머리를 감는다. 딸내미가 사 준 특별한 효험이 있는 그 샴푸로, 머리를 감는다. 지적질만 하던 그 거울의 입에서 그나마 칭찬 비스무리한 소리를 듣게 한 바로 그 샴푸로 머리를 감는다. 휘파람을 불면서~
그런데 앗! 뭔가 이상하다. 냄새가 이게 아니다. 그가 늘 쓰던 샴푸냄새가 아니다. 이건 꼭 진한 향수냄새다. 눈을 떴다. 망했다. 쓰던 샴푸가 아니다. 바디샴푸였다. 딸내미가 쓰던 바디샴푸를 머리에 섞었다. 온통 향수천지다. 클났다.
우려했던 일이 벌어졌다. 딸내미가 사 온 그의 기능성샴푸와
그녀의 바디샴푸의 용기가 똑 닮았기에 헷갈릴까 봐 멀찌감치 떨어트려놨었다. 딸내미가 샤워 후 아무렇게나 놔둔 것이 화근이 되었다.
성이 허가요 이름이 전해씨 <허전해>씨가 허전함을 찐한 향수로 움직일 때마다 채우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