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야의 콩트 (24)

낙하산 끈녀

by 최병석

태자 씨는 아직 총각이다. 총각이라는 의미가 어떨지는 요즘의 분위기가 헷갈린다. 그의 나이가 이제 낼모레면 사십 줄로 들어선다. 누군가 그랬다. 결혼도 다 때가 있다는 것이다. 정말 그랬다. 그렇게 많은 미팅과 소개팅이 서른다섯을 넘길 즈음 그야말로 뚝 끊어졌다. 요즘의 트렌드라고 하는 것이 외모만이 다가 아니고 적당한 직장과 재산의 유무가 필수가결한 조건으로 올라섰다. 그가 총각신분을 벗어나기란 하늘의 별따기다. 일단 그는 외모만 놓고 봐도 출중하질 않다. 바라만 봐도 호감도가 플러스로 포인트가 쌓인다는 보장이 없다. 그렇다고 가지고 있는 재산이 적정 수준 이상을 넘지 못한다는 생각이다. 그의 주머니에는 항상 < 통장지우개>가 들어있다. 진중한 자세로 자리 잡고 앉아있는 월급이라는 숫자의 앞대가리가 그의 움직임에 반응하며 지워져 나가기 일쑤다. 이러다가 그의 일생은 <남자의 일생>에서 <지우개의 일생>으로 고정되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고 그의 생각에서 여자라는 반려자를 지웠다는 건 또 아니다. 결혼은 하고 싶다. 그가 좋다고 느끼는 상대녀가 눈길조차 허락하지 않는 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그의 나이 사십 줄이니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고인 아재냄새>가 사방팔방으로 퍼진다. 고약하다. 입만 열면 라테냄새가 스멀거리고 혀가 운동을 시작하기만 해도 헛헛한 아재개그가 허망함을 자극한다. 그러니 진중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도 결혼이란 걸 해서 가정을 꾸리고 여우 같은 아내와 토끼 같은 자식들을 끌어안은 채 살고 싶다. 오죽하면 그의 소원은 결혼이고 꿈에도 소원은 결혼이다. 그런데 현실은 다르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주제파악이란 걸 하고 있어야 했다. 흐르는 일상이 건조하다. 집에서 회사로 근무가 끝나면 술 한잔 후 다시 집으로 집에서 다시 회사다. 그의 생각과 행동이 피앙새 찾기를 포기하고 있었다. 그런데 웬일로 그의 무미건조, 무색무취 일색이던 일상에 반전이 일어났다. 앞을 봐도 뒤나 좌우를 돌아봐도 죄다 시커먼 남자들로 도배가 되다시피 한 그가 속한 사무실에 상냥한 목소리가 더해졌다. 낙하산이 투하된 현실이었다. 남자들이 깔아놓은 멍석 위에서 그야말로 툭 떨어진 사장의 먼 <친척 끈녀>가 데뷔란 걸 하고 있는 꼴이 구현되고 있었다. 물론 나이도 제법 있었다. 그리고 하필 태자 씨와 동갑이다. 결정적으로 태자 씨를 보고 웃었다. 그런데 태자 씨는 흔들리지 않기로 했다. 사실 가당찮은 상대가 아니든가? 낙하산을 타고 내려온 대표님의 끈자락이 생겨먹은 것보다 휘황한 눈부심으로 퍼져 반짝이는데 그의 눈빛은 그저 꼬랑지를 내리는 게 합당했다. 어찌 되었든 그는 신입 여직원이 감당해야 할 업무를 잘 소화해 낼 수 있도록 측면지원에만 전념하기로 했다. 그렇게 석 달이란 시간을 보내고 난 이후부터 태자 씨의 책상서랍 속에 임자 없는 간식이 하나둘씩 생겨나기 시작했다. 사실 태자 씨는 군것질을 그다지 좋아하질 않기 때문에 서랍을 열다가 눈에 보이는 간식을 주변사람들에게 건네는 게 다수였다. 그래서일까? 거의 날마다 생겨나던 간식이 보이질 않는다. 누가 넣어놨는지 모르겠지만 있으니까 그저 먹었는 데 있다가 없으니 그것도 허전하고 이쯤에서 서랍에 간식을 넣어 놓은 사람이 누군지 궁금해졌다.


"내 서랍 안에 간식 넣어 놓은 사람 누군지 손들어봐!"


아무도 없다. 그저 웃기만 한다. 그러려니 했다.

다음날 서랍 속에 못 보던 쪽지가 보인다. 뭔 남자가 그렇게 눈치가 없느냐는 핀잔과 함께 회사에서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 위치한 베이커리카페에서 차라도 한잔 하자는 얘기가 들어 있었다.


'이건 뭐지? 혹시 설마?'


<낙하산 끈녀>가 태자 씨에게 커피 마시며 대화를 해 보자는 제안을 해 왔다는 가정을 해 본다.


'에이 아닐 텐데... 그럴 리가 없는데...'


그렇지만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다른 사람의 냄새를 확인할 길이 없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일단 나가보자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녀를 확인했다. <낙하산 끈녀>가 태자 씨가 좋다고 한다. 사귀면 안 되겠냐고 한다. 그래서 태자 씨가 그랬다.


"Why not?" 그 어렵다는 사내연애의 길로 들어섰다. 스릴과 긴장감이 다이내믹하게 엄습하는 회사 안에서의 일상이 무기력으로 무너져 내리던 태자 씨의 표정을 살려냈다. 그가 <낙하산 끈녀 >와 연애란 걸 이어가는 방식은 순전한 눈치였다. 말이 필요 없었다. 척하면 꿀이었고 꿈벅하면 웃음이었다. 이게 아마도 그녀의 끈녀라는 속성에서 기인한 것이 아닐까?라는 추측을 조심스럽게 해 보는 중이다. 태자 씨의 신경이 온통 주고받는 문자에 쏠렸다. 회사에서도 집에서도 말보다 문자다. 밖으로 튀어나오는 말은 여차하다가는 둘의 정체를 드러내게 하는 까닭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어지간하면 사랑이 화면 가득 눌러앉은 문자다. 태자 씨에게 새로운 루틴이 생겼다. 하루를 마감하기 전, 하루를 시작하기 전에 그녀에게 사랑을 날려주는 일이다.

그렇게 날려주는 멘트는 그녀의 낙하산을 가볍게 해 줄 일이 되었다. 둘의 사내연애가 감쪽같은 2년을 먹어치웠다. 그러다가 일이 생겼다. 전사적으로 연애가 들통이 나버렸다.


어제저녁 모처럼의 회식으로 거나한 술이 태자 씨의 안에 깊숙이 들어왔다는 신호가 뇌벽을 타고 감지가 되었다. 그의 뇌가 강한 휘발성의 알코올에 흔들리더니 가라앉았던 잠을 끄집어 올렸다. 침대에 널브러졌던 생각이 잠결에 묻혔다가 <루틴의 수행>을 위해 손가락을 움직이더니 임무를 완수했다.


"쟈갸! 잘 들어갔지? 울 자기 많이 사랑해"

"쟈갸의 사랑이 내 안에 가득하네~♡"


이 멘트를 끝으로 비밀 사내연애가 옷을 벗고 밖으로 나오게 되었다. 태자 씨가 글쎄 이 멘트를 그녀에게만 보낸다는 것이 회사 단톡방에 사정없이 날려주는 일을 해 내고야 말았다.


둘의 비밀사랑이 단톡방에서 점프! 낙하산을 타고 온 사내로 철커덩 철커덩 흔들리며 착지할 곳을 찾고 있었고 이 시간 그는 여태 자고 있었다. 그것도 모른 채 <여태자>고 있었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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