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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게 이런고야

전기

by 최병석

밤을 새워 비가 내리고 바람마저 이곳저곳을 누비며 남의 집 창문을 건드리던 날이 있었다. 자꾸만 흔들어대는 바람의 성화에 잠을 설쳤던 나는 화장실의 근황을 묻기 위해 일어났다. 머리맡에 두었던 핸드폰을 주워 들고 거실에 나와 우선 충전을 해야겠기에 콘센트를 찾아 아사직전의 핸드폰의 머리에 꽂았다. 이제 화장실에 다녀오고 나면 어느 정도 기운을 차리고 앉아있겠지 했는데 웬일인지 핸드폰은 여전히 비실거린다. 아이고 이거 나라도 정신을 차리자고 냉장고문을 열었는데 냉장고가 죽어있다. 냉장고 내부를 밝히던 불빛이 자취를 감추고 사라진 거다.

"자기야! 이거 냉장고 맛이 갔나 봐~아"

호들갑을 떨며 차단기 쪽으로 달려가 보니 차단기는 이미 OFF를 가리키고 있다. 대수롭지 않게 내려간 차단기를 다시 ON으로 올렸더니 불이 들어온다. 괜찮은가 보다! 그랬더니

다시 딸깍 OFF다. '아, 이건 뭔가가 있겠다' 일단 콘센트에 꼽혀있는 가전제품의 코드를 다 뽑았다. 아내는 성화다.

"어멋 냉장고 안에 음식들 저거 저 어떡하지? 어떡해..."

불행 중 다행이었다. 그나마 메인 차단기는 멀쩡했다. 더 정확히 얘기하면 주방 쪽 차단기만 내려가 있었고 안방이나 거실 그리고 서재 쪽은 ON상태였다.

'어라, 그런데 왜 충전기가 안 된 거였지?'

충전기가 물려있던 콘센트는 주방 쪽이었다. 그러고 보니 주방 쪽에 물려있는 가전제품이 상당하다. 냉장고, 전자레인지, 에어플라이어, 식세기, 전기오븐, 인덕션, 전기밥솥, 믹서기, 건조기등 집안에서 사용하는 전기의 대부분이 모두 주방 쪽이다. 그래서 유독 주방 쪽 차단기만 내려간 걸까? 일단 아내의 성화에 못 이겨 무거운 냉장고를 들어내 안방 쪽 콘센트로 응급처치를 완료한 후 관리실에 전화를 걸었다.

"관리실이죠? 갑자기 차단기가 내려갔는데 함 와주실래요?"

관리실에서 진단을 해보더니 원인은 <누전>이란다. 누전은 관리실에서 해 줄 수 있는 게 없고 전문업체에 의뢰해서 해결해야 한단다. 고층아파트의 한가운데 층에 사는데 갑자기 <누전>으로 차단기가 내려갔다는 얘기를 들으니 난감하다. 그렇다면 벽을 통해 간밤에 빗물이?

"여보세요? 대표님이시죠? 집에 갑자기 차단기가 내려가서 그러는데요 급히 와 주실 수 있을까요?"

"에구 오늘은 좀 어려운데요... 낼 오전 중에 갈 수 있어요"


나름 신축 아파트인데 이런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사는 게 불편하다. 그건 그렇고 전기가 다운된 상태에서의 하루는 몸 따로 마음 따로 또 같은 어중간한 상태에서의 버팀이다. 다음날 점심때쯤 도착한 대표님왈 <누전>이 맞고

아마도 건물 신축당시에 전선에 손상을 입은 채로 마무리가 되었고 그 스크래치로 습한 기운이 <누전>으로 바뀐 듯하다는 말씀. 벽속에 숨겨진 <전기공사의 하자>가 원인이라면 원인이었다. 공사를 담당했던 실무자의 완벽하지 못했던 일처리로 자칫 위험할 수도 있었던 해프닝을 겪고 나서 씁쓸함에 혀를 차고야마는 아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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